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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난과학] 우주선 밖 ‘우주유영’ 50년…한국은?
[HOOC=이정아 기자] 1965년 6월 3일 오후 3시 34분. 미국 하와의 태평양 상공에 도착한 에드워드 화이트 2세는 제미니 4호 해치를 조심스럽게 엽니다. 그는 양손에 쥔 산소제트총으로 압축공기를 쏘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죠. 우주선과 우주복을 이어주는 유일한 수단, 7.6m 길이의 생명줄에 의지한 화이트는 23분간 8m 밖까지 나갔습니다.

“백만 달러를 가진 느낌이야.”

아름다운 지구와 침잠한 우주를 바라보며 그가 남긴 한 마디. 미국 항공우주국(NASA) 소속 화이트는 우주유영에 성공한 두 번째 우주비행사입니다.

1965년 제미니 4호를 타고 미국 최초 우주유영에 성공한 우주비행사 에드워드 화이트의 모습. (사진=NASA)

올해는 인간이 우주복만 입고 우주 공간을 헤엄치는데 최초로 성공한지 50년이 되는 해입니다.

사실 화이트 보다 석 달 먼저 우주유영에 성공한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있으니, 소련의 우주비행사 알렉세이 레오노프입니다. 1965년 3월 18일 오전 7시께 역사적인 임무를 부여받은 레이노프는 보스호트 2호를 조종해 차가운 우주로 나아갔죠. 크림반도 상공 177㎞ 지점에서 그는 우주선과 우주복 배꼽에 연결된 한 가닥의 5.35m의 생명선에 의지에 문을 열고 우주선 밖으로 나갑니다. 12분 9초. 무중력 진공 상태의 우주공간에 그가 머문 시간입니다.

최초로 우주유영에 성공한 이후, 미국과 러시아는 우주개발이나 군비 확장과 관련한 과학ㆍ기술 분야는 물론 교육 분야에서도 다양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합니다. 특히 NASA는 이어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을 시작으로 우주왕복선과 우주정거장에 이어 21세기에는 우주를 산업화하려는 노력까지 더했죠. 

인류 최초로 우주유영에 성공한 소련의 우주비행사 알렉세이 레오노프 모습. (사진=엔하위키 미러)

이 과정에서 인터넷이 등장합니다. 소련의 장거리 미사일 공격시 통신망이 파괴되는 경우를 대비한 미국이 무선 데이터 통신망을 활용하는 통신 수단 개발에 박차를 더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 전기차(테슬라)와 스페이스X로 자동차 및 우주 산업계를 흔들어놓은 머스크가 더 작고 저렴한 인공위성으로 전 세계에서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우주과학기술은 어떤 수준은 어떤가요? 한국이 나로호 발사 실패와 연이은 발사 연기로 머뭇거리는 사이 2012년 12월 북한이 은하 3 로켓으로 광명성 3호를 쏘아 올립니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는 “북한이 러시아에서 개발하고 제작한 1단 로켓을 개량해 사용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위키백과에서는 ‘자기 나라의 로켓’으로 우주 발사에 성공한 열 번째 나라’로 북한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외국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우주개발 현실입니다.

우리나라는 로켓 발사 지지대인 발사체 개발에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단계입니다. 지난 3월 발사된 아리랑 3A호를 비롯해 우리 위성들은 모두 러시아나 프랑스, 일본 같은 다른 선진국 발사체의 힘을 빌려왔었죠. 한국형 발사체가 자체 개발되려면 5년 이상을 기다려야 합니다. 중국이 올해만 20차례의 우주비행체 발사를 계획하며 우주개발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우나라가 우주강국으로 가는 길은 아직 조금 멀어 보입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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