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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깝네, 지금 만나”…범죄에 이식된 위치기반서비스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가깝네. 7시에 연락할게 장소 정하고 만나자.”

무심코 한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한 20대 여성 김모씨의 휴대전화에 곧바로 모르는 남성의 메시지를 받고 깜짝 놀랐다. 28세라는 그 남성은 곧장 만나자며 ‘조건만남(일대일 성매매)’을 제시해온 것이다.

위치기반서비스(LBSㆍLocation Based Service)가 성매매나 마약거래와 같은 범죄에 악용되고 있다. 당초 아동이나 노인 실종신고 기능 제공 등을 위해 만들어진 이 서비스가 최근 성매매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된 랜덤채팅 앱에 이식된데 따른 것이다. 위치기반서비스가 ‘유비쿼터스(Ubiquitous) 윤락’을 가능케 한 셈이다.

[사진=123RF]

‘즐톡’, ‘낯선사람’, ‘1km’ 등 최근 주로 이용되는 랜덤채팅 앱들은 위치기반 서비스를 통해 접속자와 다른 이용자 간의 거리를 알려준다.

‘OOO(닉네임) 남 27세 3km’ 하는 식이다. 이를 보고 이용자들 사이에 “가까우니 바로 ㄱㄱ(‘go go’의 인터넷 용어)?”, “지금 만남 가능?” 등의 대화가 이뤄진다. 이어 서로 신원을 전혀 모른채 ‘깜깜이 만남’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위치기반 서비스는 원래 실종 신고시 위치추적이나 사용자 주변의 날씨, 지도, 상점 등 정보를 제공하는 데 쓰였지만 랜덤채팅앱에 사용되며 이 기능이 악용되고 있다.

실제로 랜덤채팅 앱은 사용자의 성인인증이 불필요하고 신원을 숨길 수 있어 청소년 탈선과 범죄의 사각지대로 지적돼 왔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무료 채팅앱 1737개 가운데 성매매를 목적으로 한 앱은 717개에 달한다. 이 중 94.4%가 ‘조건만남’서비스 유형에 해당된다. 성인인증을 요구하는 앱은 35.2%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랜덤채팅 앱을 통한 범죄 양상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달 서울 관악구에서는 채팅앱을 통해 만난 여중생을 모텔에서 살해한 20대 남성이 검거됐으며, 이달에는 서울 등지에서 앱을 통해 필로폰을 거래하고 집단으로 스와핑(상대를 바꿔가며 하는 성행위)을 벌인 일당이 무더기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같은 앱을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랜덤채팅 앱은 겉으로 보기에 유해하지 않은 것처럼 포장하고 있고, 일대일 채팅에서 성매매가 알선되고 이뤄지는지 파악할 수 없어 청소년 유해매체 지정에 난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술이 조건만남 등을 쉽게 만든 측면이 분명히 있다”며 “랜덤채팅 앱이 ‘사회의 시궁창’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수정 경기대 대학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앱 사용자들의 필요에 따라 위치기반 서비스 기능이 보강된 것 같다”며, “요즘 성매매는 전문 업소가 아닌 개인 주택 등 장소를 불문하고 이뤄지기 때문에 지리 정보를 제공하는 앱이 사용자를 많이 끌어모으게 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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