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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징(西京)’, 이렇게 발칙한 상상의 나라를 보았나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동그란 빵으로 만든 헤드폰을 쓰고 과녁을 향해 토마토를 던진다. 사격이다. 병뚜껑을 각각 막대기 끝에 5개씩 매단 기구를 가운데 손가락의 힘을 이용해 들어 올린다. 역도다. 벽에 그려진 골대에 3명의 선수가 수박을 굴려서 넣는다. 예상하다시피 축구다.

이 장난같은 스포츠 경기들이 벌어지는 곳은 가상의 나라 ‘시징(西京ㆍ서경)’이다. 순수한 스포츠 정신은 사라지고 정치, 사회, 문화, 경제 패권경쟁의 각축장이 돼 버린 현실세계의 올림픽 대회를 유머로 비튼 작업이다. 시쳇말로 ‘병맛’ 코드를 접목한 유머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이 작업이 시작됐다. 

시징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시징 올림픽, 2008, 혼합매체,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35분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시징을 만든 건 김홍석(51), 첸 샤오시옹(53), 츠요시 오자와(50) 3명의 한중일 작가다. 이들은 스스로를 ‘시징맨’이라고 부른다. 1990년대 이후 아시아 후기 개념미술 작가로 활동하던 이들이 뭉쳐 2006년 시징맨이라는 아티스트 그룹을 결성했다. 시징맨의 작업은 가상 도시 시징을 건설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들은 따로 또 같이 작업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장르로는 개념미술, 매체로는 퍼포먼스 영상과 설치작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시징맨의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직무대리 김정배) 서울관에서 27일부터 개최됐다. 동시대 아시아 미술 현장을 탐색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들의 전 작품세계를 조망한다. 전시는 총 4개 챕터 속에 6개의 에피소드가 들어가 있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시징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시징 동계 올림픽, 2014, 혼합매체,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1분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 입구부터 시징이 시작된다. 입구에서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를 반드시 해야만 한다. 환하게 미소를 짓거나 호탕하게 웃을 것. 노래를 한 곡조 부를 것. 그리고 매력적인 춤을 출 것. 이른바 ‘시징출입국 관리사무소’의 규칙이다.

광활한(?) 메인 전시장은 마치 이삿짐 빠져 나간 자리처럼 휑해 보인다. 터진 토마토, 수박 한 덩이, 세숫대야, 세 벌의 교복 등 연관성 없는 오브제들이 맥락없이 놓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계와 동계 두 시즌으로 나눠 각종 스포츠를 보여주는 ‘시징올림픽’ 영상을 보고 나면 이 사물들이 왜 놓여져 있는지 이유를 알게 된다.

시징의 나라에는 엉뚱한 상상들이 가득하다. 발칙하기까지 하다. 스포츠 경기 뿐만 아니라 교육방법도 완전히 다르다. 시징학교의 과학시간에는 겨울 들판에서 포대자루를 날리거나, 비닐봉지 끝에 불을 붙여 열기구를 만들어 띄운다. 역사 시간에는 학생들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논다. 선생들은 술과 안주를 채워주느라 바쁘다.

그렇다고 이들의 작업이 급진적이거나 선언적인 것은 아니다. 현실 사회에 대한 해결점을 제시한다거나, 계몽하기 위해 애쓰지도 않는다. 가상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공동체와 삶의 가능성을 모색할 뿐이다. 

시징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시징 출입국 사무소, 2012, 혼합매체,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4분 7초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시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현실사회의 교육체계와 관습에서 습득되고 세뇌된 것들을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착한 사람은 남을 도와야한다던지, 술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해롭다던지 하는, 모든 우리가 당연하다고 배워왔던 것들이 결국은 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우리는 시징이라는 우화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작가 김홍석의 말이다.

전시를 기획한 김장언 국립현대미술관 전시기획팀장은 이들의 작업을 “세상에 대한 말 걸기”라고 명명했다. 그는 “시징맨은 가상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반투명의 레이어를 비춰 보여주고 있다”면서 “자신들을 타자화시키면서 한편으로 주체화하고, 익명화시키면서 구체화시키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들이 추구하는 시징은 뭘까. 있기나 한 걸까.

김 작가는 “중국, 베트남, 심지어 한국에도 서경이라는 곳이 있었다. 서경은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때 존재했지만 잠시 없어졌고,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생길수도 있는 공간을 서경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시징이군요-서쪽으로 떠나는 여행(나고야), 2010, 혼합매체, 싱글 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14분 11초, 우메미 트럭 인형 극장 제작, 사토코 유미다테, 사키코 히라바야시 공연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시징이 있는가에 대한 작가들의 답은 ‘이것이 시징이군요-서쪽으로 떠나는 여행’ 나고야 버전(2010)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퍼포먼스 영상은 작가 그룹이 만든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전문 극단이 만드는 인형극이다. 답은 희미해보이지만 희망적으로 들린다.

“서쪽 나라는 게으름도 없고, 슬픔도 없고, 분노도 없는 곳일까요.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한편 전시 에필로그 형식으로 작가 3명의 개인작업도 볼 수 있다. 8월 2일까지.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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