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가수를 부르는데 수천만원의 돈을 쓰고, 선정적인 이벤트를 통해 화제를 모으려고 하는 일부 학교의 모습에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경우도 종종 있죠.
최근 서울여대의 축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서울여대 총학생회가 철거한 교내 청소노동자들의 현수막이 담긴 봉투(출처=서울여대 페이스북) |
서울여대 총학생회가 파업 농성 중인 교내 청소노동자들이 설치한 현수막을 철거했기 때문인데요. 이유가 다소 당황스럽습니다.총학생회는 현수막 10여개와 청소노동자들의 소원을 담은 천조각 등을 쓰레기 봉투에 담아 본관 앞에 쌓았는데요. 이 봉투에는“학생들에게 1년에 단 한 번 뿐인 축제를 위해 자진 철거했으니 양해를 부탁한다”는 메모가 남겨져있었습니다.
이어 페이스북을 통해 총학은 “교내 학우와 더불어 지역사회, 그리고 타 학교생들과의 교류의 장이 되는 ‘서랑제’에서 보다 나은 축제 환경조성을 위하여 철거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는데요.
여기에 “(철거는) 학교와 노조 그 어느 측에도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학생들이 더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평하기도 했습니다.
정지우 서울여대 총학생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축제 주제를 ‘전통’으로 잡아서 청사초롱을 달았는데 현수막이 있으니 을씨년스럽고 보기 안 좋다는 의견이 있었다”며 “일 년에 한 번뿐인 축제라서 ‘예쁘게’ 진행하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행동이 알려지자 온라인을 중심으로 비난 여론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21일 서울여대 총학생회 페이스북에는 철거에 대한 비난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는데요. “축제나 미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누군가의 절박한 목소리를 이렇게 철거하는 행동은 폭력이다”는 내용의 글들이 700여개 가까이 등록됐습니다.
여기에 학교와 노조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겠다는 총학의 입장에 대한 비난도 있었는데요. “결과적으로 총학의 행동은 학교 측의 입장을 대변한 꼴이 됐다”며 “적어도 지성인이라는 대학생들의 대표인 총학생회라면 힘없는 이들의 편에서 함께 행동은 못할 망정, 그들의 목소리를 미관을 이유로 막아버리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한편 서울여대 총학생회의 행동은 다른 학교의 사례와 비교되며 더욱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최근 연세대학교 송도캠퍼스 청소노동자들은 지난해 12월 집단 해고됐다 약 5개월 만에 복직하며 자신들에게 지지를 보내준 학생들에 대한 감사의 말을 대자보로 남겼습니다.
23명의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로 서두를 뗀 이 대자보에서 “막막한 우리 청소·경비 노동자들에게 학생들의 연대와 지지는 어두운 동굴 속 등불과 같았고 사막의 오아시스였다”고 적었다. 이어 “공부만 하고 주위를 챙길 줄 모른다는 생각을 했는데 역시나 명문은 학생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고 적어 잔잔한 감동을 남겼습니다.
서울여대 총학생회가 밝힌 철거에 대한 입장 |
더욱 직접적으로 대비되는 학교도 있습니다. 덕성여대는 28일부터 시작되는 축제에서 ‘엄마를 부탁해’라는 연대 주점을 여는데요.
덕성여대 측은 “우리 학교 안 가장 지저분하고 어두운 곳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미화 어머님들, 비정규직인 미화 어머님들의 근로 환경 개선과 최저 임금 1만원 쟁취를 함께 지지하고 연대하는 어머님들과 학생들의 연대 주점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모든 수익은 미화 어머님들 복지 기금과 투쟁 기금으로 쓰입니다”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습니다.
물론 1년에 한 번이라는 축제를 잘 치르고 싶은 것은 누구나 당연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웃고 즐기는 축제의 한 켠에 힘없는 약자들이 울부짖고 있다는 점을 배려할 수는 없었을까요?
한 시민은 서울여대 총학생회의 페이스북에 시 한 구절을 남겼습니다. 이성복 시인의 ‘그날’이라는 시인데요.
“모두가 병들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이 구절을 총학생회 측에서 차분히 되새겨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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