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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 바뀌었는데…거꾸로 가는 성범죄 감형 관행
고령법관 보수적 인식+기계적 법해석 원인
신입사원 강제추행, 1심 유죄→2심 무죄
직장내 성희롱도 솜방망이 처벌 다반사
상급심으로 갈수록 가해자엔 감형 지속
양형기준 강화 등 먼길…피해자 피눈물



좋아하는 처자를 ‘보쌈’한뒤 결혼하는 것은 요즘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엄연한 범죄행위이다. 오늘날 성범죄는 국민 법감정상 여러 범죄 중 가장 추악한 것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범죄에 비해 월등히 높은 감형률에서 나타나듯, 판결 마인드가 시대에 뒤처진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는 시류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고령 법관의 판결 마인드, 범죄 정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 법 해석, 직장내 위압 등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구태적 법 조항 방치 등이 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대법원은 최근, 1심에서 신입사원을 강제추행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한 업체 사장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2심판결을 확정했다.

이 사장은 입사한 지 일주일 된 20대 여사원을 사장실로 불러 문을 잠근 뒤 속옷차림으로 자신의 다리를 주무르라고 시키고 “더 위로, 다른 곳도 만져라”라고 요구한 혐의로 기소됐다.

성범죄의 감형 관행이 시류에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고령 법관의 판결 마인드, 범죄 정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 법 해석, 직장내 위압 등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구태적 법 조항 방치 등이 원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판결 이유는 형법 298조에서 정한 강제추행죄의 구성요건 즉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19일 사단법인 여성변호사회에 따르면 2013년 1월부터 2014년 6월까지 판결이 확정된 아동ㆍ청소년 대상 성범죄 1308건의 판례를 분석한 결과, 피고인이 “억울하다”며 항소해 법원이 받아들인 366건 중 81.7%인 299건이 항소심에서 형량이 줄었다.

줄어든 형량은 중형을 선고받았다가 징역 6월~2년 미만으로 감형된 경우가 48.6%로 가장 많았다. 

또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경우도 29.4%에 달했다. 

옥살이를 해야할 범죄자 10명 중 3명이 유죄가 인정되고도 2심에서 풀려난 것이다. 죄질이 나쁜 범죄행위가 징역 2~5년으로 감형된 경우는 29%였다.

이에 대해 강연재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대변인은 “법원에서 물리적 강제성을 필수로 보고 심리적 강제성을 잘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심리적 강제성도 물리적 강제성과 다를 바 없으므로 폭넓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나이 많은 고등법원, 대법원 판사들의 시대에 뒤떨어진, 협소한 법 적용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지적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급심으로 올라갈 수록 법관의 연령이 높아지고 과거의 마인드로 성범죄를 보는 듯 하다”면서 “법관들이 성범죄 관련해 국민 법감정과의 괴리를 막기 위해 다양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경 법원의 한 판사는 “나이 많은 부장판사와 비교적 젊은 배석판사가 합의를 해야 하는데, 합의점을 찾는 과정에서 법 조문을 엄격하고 보수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상급심으로 갈 수록 성범죄 형량이 줄어든다거나, 그 죄질에 비해 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지적은 2008년 조두순 사건, 2010년 김길태 사건을 비롯해 그동안 수차례 지적된 부분이다.

이에 따라 양형기준을 강화한다거나 법관들의 관용적 인식을 버려야 한다거나 하는 입법 논의 및 지적 사항은 그동안 계속해서 있어 왔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2013년 6월 성폭력범죄의 ‘친고죄’ 조항을 삭제한 이후 형법과 아동·청소년 성폭력범죄의 처벌을 강화하고 보호하는 법률을 시행했다. 지난 3월에는 성폭력 범죄자의 연락처를 추가로 공개하는 성폭력범죄 처벌 특례법이 입법예고 됐다.

법무부 등에서도 직장내 성희롱이 상사의 위압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짐에도 분명하고도 강력한 폭행과 강압이 없다는 이유로 솜방망이처벌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이부분 처벌 규정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시류에 맞는 법 개정과 집행은 멀고 가해자에 대한 감형이 지속되는 동안 피해자들의 한숨만 커지고 있다. 

김진원 기자/jin1@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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