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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아와 아브라함의 고향. 신의 선물 가득한 터키 안탈리아, 물라, 데니즐리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크리스트교에서 중시조(中始祖)로 불리는 노아와 아브라함은 모두 지금의 터키 지역에 살던 성인들이다.

아브라함에 비해 300년 가량 앞서 살던 노아는 세상의 죄악과 타락을 대청소하려는 하느님의 의지와 명령에 따라 방주(方舟)를 만들어 만물의 선(善)한 개체만을 태우고 심판에 임한다. 노아의 방주는 40일간의 대홍수 기간 동안 터키 동부의 해발 5185m 아라라트산에 머물러 있다 물이 빠진 뒤 생명체들을 방생했다.

▶안탈리아주 시데 신전의 석양

이들은 동서남북으로 길을 떠나고, 인간은 신과 자연 그 가운데에서 신이 내린 소명(calling)에 따라 자연의 순리대로 살 것을 맹세한다. 노아의 세 아들 중 한 명인 셈은 이스라엘, 터키, 중동 국가들까지 혈연의 조상으로 여긴다. 아브라함은 대홍수 이후 터키 남동지방인 샨르우르파에서 태어나 신의 복음을 전파한다. 아브라함은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유대교 모두에게서 선지자로 추앙받고 있다.

방주가 머물던 아라라트산은 북쪽 흑해방면으로 폰투스 산맥, 서쪽 지중해 방면으로 토로스산맥, 남서쪽으로 서(西)아나톨리아 산맥을 잉태하며 바다로 줄달음친다. 남동쪽으로는 자신이 품고 있던 성수(聖水)로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두 강을 만들어 젖과 꿀이 넘치는 평원을 빚었다. 두 강의 북동쪽 인근에는 에덴동산(터키-아르메니아 접경지 추정)이 있었다고 성서 학자들은 전한다.
▶안탈리아 구시가지 칼레이치

선사시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문명의 재료인 철기(鐵器)와 인간 소통의 가장 합리적 수단인 알파벳, 모두 이곳을 발원지로 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산물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성인, 성지, 신의 선물 가득한 곳= 터키 지역은 신성을 품은 곳이고, 하느님이 내린 선물로 가득하기에, 지난 8000년간 주인이 수십 번 바뀌었다.

세계 최초의 문자로 알려진 ‘쐐기문자’에 노아의 대홍수 이야기를 적은 수메르 제국에서부터, 바빌론, 아키드, 우르국이 기원전 3500~2000년 연방제 형태의 나라를 벌갈아 경영한다. 기원전 1800년경 세계 최초로 철기시대를 연 히타이트와 알파벳을 창시한 페니키아(기원전 1300년), 아시리아, 그리스, 프리지아, 이오니아, 리키아가 기원전 350년경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 때까지 공생하거나 독점하면서 이곳을 지배했다.

이후 로마. 아랍, 페르시아에 이어,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둔 동서혼혈민족 오스만 투르크 군대가 1453년 배를 둘러메고 산에 올라가 정상에서 타고 내려온 다음, 뒤를 치는 기막힌 전술로 해양 철벽 요새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면서 이 땅의 주인이 된다.
▶바다같은 팔색조 호수 에이디에르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비밀여행현장 시데
= 지난한 쟁투 끝에 이곳을 정복한 지배자들의 일성은 ‘과연 탐나는도다’였다. 오죽했으면 로마제국의 터키지역 입성 이후 이집트 실권자 클레오파트라가 터키 안탈리아주(州)의 시데와 물라주(州) 일대를 정부(情夫)와 여행하며 제 집 드나들 듯 했을까. 로마 동방 통치 사령관이던 안토니우스는 내연녀 클레오파트라의 안락한 지중해, 에게해 휴양을 위해 휘하의 장병을 총동원해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의 부드러운 모래를 퍼날라 터키 백사장의 성질을 바꾸는 ‘핵존심’을 시위한다. 안토니우스의 이 ‘미친 사랑’은 클레오파트라가 아름다운 터키 지중해와 에게 해변을 자신보다 더 미치도록 사랑할까 하는 우려에서 감행됐을지도 모른다.

안탈리아의 중심도시 중 하나인 옛 히타이트 거점지 시데(Side)는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와 첫 번째 밀월여행을 왔던 곳으로 알려져있다. 그녀는 2060여년 전 이곳에서 아폴로신전을 핑크빛을 물들인 석양을 고즈넉이 바라보며 정부(情夫)와 와인을 들이켰다고 한다. 올림푸스 산을 마주보고 있는 항구도시 시데는 기원전 300년부터 시작된 국제무역도시의 전통이 아직도 이어진다. 퓨전이다. 동양적인 둥근기와와 서양식 넓적 기와가 혼재된 건물, 고춧가루에서부터 염소치즈까지 파는 다채로운 식재료 진열대, 심지어 동양식 도자기 기술에 서양식 크리스탈 기술이 접목된 광채나는 옹기까지 지구촌 누구든 “어 저것 우리나라 물건인데” 할 만하다. 로마-뭄바이-자바-광저우-신라,백제로 이어지는 동서 해상 교역로의 간이 휴양지답다. 고대 올림픽이 열리기도 한 곳이다.
▶신이 내린 선물, 건강과 순결의 상징 ‘파묵칼레’

▶안탈리아 최고권위 ‘푸른 깃발’ 인증 해변 20곳
= 시데 바다 건너 보이는 ‘신들의 거처’ 올림푸스산(2365m) 8부능선 위로는 5월초인데도 눈이 덮혀 있다. 관광객들의 촬영 포인트로 이글루까지 지어놓은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면 멜랑꼴리한 빛깔의 아름다운 안탈리아 해변이 한눈에 들어온다. 늦봄까지 눈이 남아있어 1년에 3계절 동안 정상에서 스키 놀이하다가 케이블카로 내려와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지난해 1200만명이 방문했던 안탈리아의 바닷빛은 우리의 늦가을 동해바다의 군청색과 남태평양의 연청록 빛의 중간 정도 되겠다. 군청색은 실연당한 것처럼 시리고, 연청록은 포근한데, 안탈리아의 바다색을 접하면 마음이 묘해진다. 사랑의 절정기 직전 달콤함이라 해두자. 유럽의 권위있는 여행관광 단체는 아름다운 청정해변에 ‘푸른 깃발’의 인증을 해주는데, 안탈리아 해안선 490㎞에서 이 인증을 받은 해변이 20곳으로 유럽 여러 해변을 제쳤다.

올림푸스산과 멀지 않은 미라(Myra)시의 세인트 니콜라스 주교의 교회는 나눔과 청소년인권 보호의 상징이다. 빠르게 발음해보라. 세인트 니콜라스는 바로 산타크로스이다. 3~4세기를 걸쳐 살았던 니콜라스 주교는 어느해 성탄 전야 가난한 세 자매를 도우려고 그 집 지붕위에 올라가 금주머니를 굴뚝으로 떨어뜨렸는데, 우연찮게 벽난로에 걸어준 양말에 금주머니가 쏙 들어갔다고 한다. 동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박한 교회당이지만 누구든 지금도 믿고 싶은 산타크로스의 추억이기에 지구촌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순례한다. 
▶물라주 보르룸의 3색 풍경

▶극장 청년, 수로 청년의 위민(爲民) 경쟁
= 메소포타미아의 선진 농경문화를 이어받은 로마제국 역시 안탈리아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농업 및 생활용수를 적절히 끌어다가 공급하는 수로 개척이 급선무였다. 아울러 “그리스 지배때 보다 못하다”는 시민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문화정치가 필요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황제 재임 중 안탈리아주 아스펜도스 지역 통치를 맡은 군왕은 청년 두 명에게 “시민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을 만드는 자에게 내 딸을 주겠다”고 내기를 건다. 한 청년은 수로를, 다른 청년은 2만명을 수용하는 극장을 짓겠다고 했다. 수로가 일찍 만들어지면서 시민생활이 윤택해지자 지역군왕의 마음은 ‘수로청년’에게 쏠려 사윗감으로 내정된다. 하지만 얼마 후 원형경기장이 완성된 후 다양해진 문화콘텐츠에 시민이 열광하자 임금이 마음이 바뀌어 “내 딸을 둘 다 취하라”는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삼각관계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고, 여인쟁탈전에서 패퇴한 수로청년은 죽은 뒤 자신이 지은 수로 옆에 일편단심 붉은 꽃으로 피어난다. 이 수로는 현재 석축만이 남았고, 주변 공터에서 노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지켜주고 있다.
▶한국 손님을 들었다 놨다했던 터키 아이스크림 총각의 5분 퍼포먼스 [촬영='바앤다이닝' 김은주 포토그래퍼]

▶바다거북과의 아름다운 공생
= 아름다운 안탈리아 칼레이치(Kaleiçi) 구시가지의 정취를 뒤로한 채 동쪽으로 300㎞ 떨어진 해안 도시 물라 주 달얀 일대에 가도 아름다운 풍광 만큼이나 핑크빛 스토리로 넘친다. 달얀 중심부에서 차로 1시간가량 남행하면 만나는 욀루데니즈에는 클레오파트라가 늙지 않은 비결인 비밀 머드배스 욕탕이 있다. 얼굴과 팔에 머드를 칠한 뒤 20여분후 씻어내자 피부가 터질 듯 팽팽한 느낌이다. 달얀 북쪽 60㎞ 지점에 있는 소도시 울라는 안토니우스가 그녀를 위해 사하라사막의 모래를 옮기려고 1000㎞ 바닷길 횡단을 감행했던 곳이다.

달얀의 이즈투주(Iztuzu) 해변에서는 원조 터키인들의 자연 보호, 생명존중의 마음을 읽을수 있다. 붉은바다거북의 산란기인 매년 5월부터 9월까지 이들이 가족사랑 나누는 해질녘부터는 해변 출입이 금지된다. 사람과 거북의 바다 이용시간을 2등분헸다. 신의 ‘물 심판’ 이후 자연과 공생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붉은바다거북은 태어난 곳의 물냄새, 조류, 온도, 파도소리를 기억했다가 명(命)을 다하는 서른살 무렵 낙향한다는 얘기는 사람 마음까지 애잔하게 한다.
▶수작업하는 보드룸의 공예점 주인

▶데니즐리 파묵칼레의 생명수
= 하늘빛 석회층 노천탕인 데니즐리주(州)의 파묵칼레는 아름다운 풍광에 웰빙을 덤으로 선사한다. 삼성 모바일 광고 촬영지로 세계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추한 여성을 아름답게 하고, 죽어가는 목숨을 살린다는 전설과 믿음 때문에 웰빙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옛도시 히에라 폴리스의 고즈넉한 자태와 토로스산맥의 위용 사이로 열기구, 파라슈트 등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들의 힘찬 나래짓이 펼쳐지고 있었다.

물라주 보드룸은 인구 10만이 채 안되는 작은 도시이지만 관광문화의 생태계를 고루 갖춘 도시로 늘 상주인구의 2~3배가 거리를 메운다. 성요한 기사단이 이끄는 십자군이 세운 보드룸 성의 전망은 일품이다. 푸른 빛의 해안, 도시를 호위하는 뒷산에 질서있게 착상한 흰색 주택가, 초록 빛깔의 신록 등 3색 수채화가 절경이다. 무엇보다 크리스트교 교회를 도시 최고의 자랑으로 삼는 무슬림 시민들의 드넓은 포용심이 아름답다.
▶에이디에르호변 고원마을 할아버지와 손자...동서양의 모습이 묘하게 섞였다.

▶십자군 교회 자랑하는 보드룸 무슬림의 포용력= 여러번 치대면서 반죽해 쫀득쫀득한 맛을 내는 터키식 아이스크림 돈두르맘(Dondurmam) 가게 청년은 한국인임을 금새 알아차리고 반색하더니, 손님을 들었다놨다 하는 5분간의 아이스크림 쇼를 벌인 뒤에야 환한 미소와 함께 물건을 준다. 골목에서 간식을 챙겨먹던 40대 남자는 “한 뚝배기 하실래예”라고 말하는 듯, 음식을 관광객에게 내밀면서 적극적으로 우정을 과시한데 비해, 터키 전통 양탄자 가게 청년은 은근한 미소로 여운이 남는 호감을 표했다. 손수 채색하며 뭔가 열심히 만들던 공예품 가게 주인은 사진 촬영을 위해 ‘배 좀 집어 넣어달라’는 한국인의 당돌한 주문에도 너털웃음으로 짐짓 지시 이행하는 포즈를 취해주기도했다.

장미로 유명한 내륙지방 으스파르타 할아버지들의 가부장적인 모습은 차라리 우리네 시골 어르신의 모습을 대하는 것 같아 정겹다. 터키가 고구려와 이웃 하던 돌궐의 후예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장미마을 ‘귀네이켄트’ 어르신들은 경로당에 불쑥 침범한 한국인에게 손바닥을 까딱거리면서 “자네, 이리와봐, 댁네 춘부장 함자가 뭐여”라고 말씀하시는 듯 하다. 세계 최고의 꽃 축제 중 하나인 이 곳 장미 축제는 5월부터 6월말까지 열린다.

▶2000년전 최초의 권력분립, 사갈로소스 지방의사당= 으스파르타주(州) 사갈로소스 고대도시는 규모 4㎢ 밖에 되지 않지만 선진 정치체제, 문화유산, 경제시스템의 시험대였다. 시장의 의사결정 과정에 지방의회가 관여하는 권력분립이 이뤄졌다. 교회당을 의사당 건물 바로 옆에 세워 정치인들의 양심을 감시했다. 의사당 동쪽에는 원형경기장이, 남쪽에는 여관과 목욕시설 하맘(Hamam), 시장이 자리했다. 이 경기장은 특이하게 다양한 동물과 인간의 결투가 실험적으로 벌어졌다. 곰까지 인간의 대결파트너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여관에는 검투사와 귀족, 외지에서 온 구경꾼, 빅매치 프로모터 등이 투숙했다. 경기 전날 밤 하맘 온수에 몸을 담근 채 고향에 두고온 가족을 그렸을 2000년전 검투사들의 애환이 해질녘 사갈로소스 여관의 앙상한 잔해와 오버랩된다. 참고로 터키의 하맘 목욕탕은 속옷을 입은 채 남녀공용이다. 아저씨가 맘 편히 있다가 여성의 출현에 깜짝 놀라기도 했다. 부끄러울 것 없는 터키인의 생활문화와 통한다. 1.5㎞ 능선을 가진 도시 뒤편 악다흐산에 100m 단위로 수로를 만들어 공동우물 160개를 만든 기원전 1세기 이곳 주민의 기술력에 혀가 내둘러진다. 의회당 한복판에 악다흐의 물이 폭포처럼 떨어지도록 한 것은 생명수의 소중함을 시민들이 새기도록 하려는 뜻이었을게다.

▶세계 불가사의, 바위산 정상 달얀왕의 동굴무덤= 안탈리아 미라(Myra)처럼 시장과 경기장 옆 잘 보이는 암벽에 굴을 뚫어 가족과 이웃의 묘지를 두고, 달얀에 거점을 두었던 카우노스 민족처럼 아름다운 명승지 한복판, 하늘 높이 솟은 암벽에 왕릉(세계 8대 불가사의)을 모시는 고대 터키인의 문화는 생활공간과 묘지공간의 구분을 두지 않던 선사시대 우리 조상의 풍습을 닮았다. 지금도 완도에 가면 죽은 가족이 살아 있는 것으로 믿고 집 옆에 풀집을 만들어 몇 년간 모셔두는 ‘초분’이 있다.

터키의 자주권을 지켜내고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에 오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는 건국후 제도적 기반을 다지면서 다양성의 존중과 차별 금지를 최우선 가치로 심었다. 그는 국민들을 향해 “이 땅에서 벌어졌던 역사를 알고 문명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다양한 문화와 종교에 대한 포용을 설파한다. 터키는 북대서양조약기구 멤버로 서방을 지키지만, 주변에서 종교적, 민족적 충돌이 있을 때 가장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입장을 가진 쪽을 지지한다. 최근 이스라엘의 폭력을 비난하고 피해자들의 아픔을 함께 한다고 밝히면서 뜻있는 서유럽 국가와 중동 모두의 지지를 받고 있다.

숱한 문화와 종교, 민족이 거쳐간 터키는 문명 충돌의 완충지이다. 신은 터키에 노아와 아브라함을 보내고, 이스탄불, 앙카라, 안탈리아, 으스파르타, 데니즐리, 아이딘, 물라의 아름다운 자연, 건강, 포용심을 선사하면서, 21세기형 ‘평화의 에덴동산’을 재건하라는 미션까지 부여했을지도 모른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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