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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경 맘다방]열통 터지는 응급실
고열 아이 안고 달려간 응급실
접수하고 한참동안 발만 동동
해열주사 맞아도 열 그대로
폐렴 걱정했더니 “집에 가시라”
고열 계속 다음날 병원가니 폐렴
도대체 뭐하자는 응급실인지…


한밤중이나 주말에 아픈 아이를 끌어안고 응급실로 달려갔던 경험, 엄마라면 한 번씩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막상 응급실에 가면 ‘괜히 갔다’ 싶었던 적도 있을 겁니다. 응급실이 이름과 달리 ‘응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름값을 하는 응급실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제가 가본 응급실과 영유아 환자의 경우를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점 양해바랍니다.

얼마 전 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운영하는 일산의 대형병원 응급실에 갔습니다. 아이가 열이 40도까지 오르는데 밤이라 문을 연 소아과가 없어 어쩔 수 없었죠.

그런데 응급실에 들어서자마자 속이 터졌습니다. 아이는 부르르 떨면서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데 아무도 아이의 상태를 체크하지 않은 채 접수를 하고 대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호흡이 곤란하거나 영유아인 환자는 응급실 진료의 우선순위가 있지만 그런 것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접수를 하고 한참을 기다려 진찰실에 들어갔더니 수련 중인 전공의가 세월아 네월아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이를 다뤄보지 않아 허둥대는동안 아이는 더 힘들어졌습니다. 전공의는 진단을 내리지 않고 병상으로 들어가 또 대기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어떻게든 아이를 덜 아프게 해주려고 병원에 데리고 왔는데 오히려 더 힘들게 하니 피가 말랐습니다.

슬슬 화가 날 때쯤 다른 전공의가 왔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같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차트도 제대로 안 본 것 같았습니다. 똑같은 문답을 되풀이하고 진찰을 했지만 역시 확실한 진단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감기인 줄 알았는데 약도 안 듣고 다른 원인이 있는 것 같다는 부모의 말만 듣고 “감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정도로만 애매하게 말했습니다. “열이 계속 높으면 위험한 거 아니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해열 주사를 처방했습니다.

주사를 맞았지만 아이의 열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호흡도 계속 가파서 재차 물었습니다. “폐렴이나 다른 병의 가능성은 없냐, 엑스레이라도 찍어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의사는 “원하면 찍어볼 수는 있다”며 시큰둥했습니다. 저희는 뭐라도 해야겠어서 엑스레이를 찍어달라고 했습니다.

촬영 결과를 보여주면서도 의사는 확진이 없었습니다. 의사가 아닌 제 눈에도 폐가 뿌연 것이 폐렴 같아 물었지만 의사는 폐렴은 아닌 것 같다며 열이 떨어지면 귀가하라고 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 열이 조금 내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불안했지만 의사가 가라니 별 수 없었죠.

그런데 아이는 다시 열이 오르고 숨이 가파졌습니다. 하지만 응급실에 다시 가봤자 소용 없을 것 같아 하루를 기다렸습니다.

다음날 외래 진료를 받았을 때 전문의의 진단은 ‘폐렴’이었고, 입원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응급실을 찾았을 때 이미 폐렴 상태였는데 시간을 허비해 상태가 더 악화된 것이었습니다.

이따위 진료를 받으려고 10만원이 넘는 수당까지 줘가며 응급실을 갔나,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만약 다른 더 큰 병이었으면 어쩔 뻔 했나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정말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가 와도 저렇게 대응한다면 살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전문의가 24시간 진료할 수도 없고 전공의가 수련의 과정을 거쳐 전문의가 된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전공의도 의사로서의 책임은 같습니다. 진단을 내리는 것조차 꺼려 하고 책임을 피하는 모습은 오진보다도 더 실망스럽습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사람을 살리는 병원’이 되기 위해서는 응급실이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삼성의료원 응급실에 전문의를 배치하는 개혁을 단행했다고 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에 갈 때에는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주는, 돈이 아깝지 않은 응급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김현경 기자/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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