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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승의 날 미담>‘학교짱’ 문제아, 예술대로 보낸 장애인 교사
-어릴때 소아마비 앓은 김용세 상산전자공고 교사…면접 때문에 교사 꿈 못 이뤄

-나이 쉰에 임용고시 쳐 뒤늦게 교직 꿈 실현…’학교짱‘ 훈육해 작곡과에 합격시켜

-“정신차리고 공무원된 제자도 있어…쉰 넘어 늘그막에 교사가 됐지만 너무 행복해”



[헤럴드경제=신상윤 기자]경북 상주 상산전자공고에 근무하는 김용세(57ㆍ사진) 교사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장래 희망이 교사였다. 당시 유난히 멋져 보였던 담임교사에게 “나도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한 뒤부터였다.

하지만 김 교사는 생후 6개월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 쪽 다리가 5㎝ 가량 짧다. 걷기도 좀 불편하다.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다. 노력 끝에 대학(한양대 전자공학과)에 들어가 준교사 자격증까지 땄지만, 임용고시 면접 시험이 문제였다.

하는 수 없이교사의 꿈을 포기하고 부산시교육청에 교육공무원 시험을 봤지만 떨어졌다. 결국 교육공무원의 꿈을 접고 일반 회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면접 때마다 듣는 이야기는 ”장애인은 좀…”이었다. 

“1980년대 우리나라 현실은 장애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다”고 김 교사는 말했다. 다행히 일본의 한 반도체 기업의 문을 두드렸고 중견 간부까지 달았지만, 가슴 한 구석 남아있던 교직에 대한 희망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다 2007년 김 교사는 신문에서 한 기사를 봤다. 그해부터 교원 임용고시에서 장애인만 따로 구분해 시험을 본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나이로 쉰. 늦은 나이였지만 과감히 공부해 합격, 경북도교육청 중등 전기전자통신 과목 교사가 됐다.

2008년 처음 발령을 받은 곳은 경북 포항 흥해공고. 김 교사와 ‘학교 짱’ 대성(가명)이와 인연이 시작된 곳이다. 발령을 받은 3학년 교실의 첫 수업 날, 아예 엎드려 자고 있는 학생이 눈에 띄었다. 바로 대성이었다. 김 교사는 “대성이가 일부러 ’기 싸움‘을 걸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완전히 무시당하는 기분이 들었고, ’나는 교사‘라는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김 교사는 대성이를 깨웠다. 대성이의 입에서 ‘아이, 씨X’라는 욕이 살짝 들렸다. 하지만 김 교사는 당황하지 않고 “영어를 하려면 제대로 해라. ‘I see a foot’이 맞겠지”라며 맞받아쳤다. 교실은 웃음바다가 됐고, 대성이는 멋적은듯 팔짱만 낀채 수업을 들었다.

그러다 수업 종료 10분 전. 대성이는 김 교사를 무섭게 응시했다. 김 교사는 “눈이 시커머니, 좀 무서운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면서도 “‘자네는 시커면 눈이 매력적이야. 군인 하면 성공할꺼야‘라고 받아쳤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대성이는 “저 군인 좋아해요”라며 농담을 던졌고,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대성이는 김 교사에게 모든 것을 의존했다. 김 교사는 “생각이 바뀌면 마인드가 바뀌고, 마인드가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고 대성이에게 얘기해 줬고, 수업 시간 틈틈이 아이들에게 인성교육을 시켰다.

대성이는 달라져 갔다. 학교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대성이가 ’선도부장이 되겠다‘며 학교 규정대로 머리를 깎고 교복도 단정하게 입더라고요. 결국 선도부장이 된 다음에는 문제아들을 직접 지도하고, 학교폭력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성적도 올랐다. 학교 시험 평균 점수가 89점까지 올라갔고, 석차도 하위권에서 전교 10위까지 치솟았다. 대성이는 꿈을 갖기 시작했다. “하루는 ’선생님, 저 음악이 하고 싶어요‘ 하는 거예요. 아무도 밴드반을 안 맡으려고 하길래 제가 밴드반 담당 교사가 돼 줬죠.”

그해 대성이는 포항에서 열린 한 청소년가요제에서 대상을 탔고, 서울에 있는 한 예술대학 작곡과에 입학했다. 졸업한 뒤 현재는 작곡가의 길을 걷고 있다.

대성이 외에도 많은 제자들이 김 교사의 가르침을 받고 달라졌다. 문제아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제자도 있고, 직업군인이 된 제자도 있다. “해마다 스승의 날이면 10여 명씩 저를 보러 찾아 와요. 너무 늦게 시작한 일이지만, 저는 교사가 된 것이 무척 행복합니다. 그렇게 제2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지금도 김 교사는 오전 7시면 상산전자공고에 출근한다. 학생들이 피다 버린 담배를 줍고, 담배를 피거나 버릇이 없는 아이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야단친다. 그렇게 제자들을 ‘사랑’을 통해 ‘사람’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김 교사는 자신의 사례를 15일 서울 서초구 더케이서울호텔에서 열린 제34회 스승의 날 기념식에서 발표했다.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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