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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을 땐 몰랐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그렇게 큰 줄
당신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인가
기다리는 집
가족이 집을 통해 회복되는 모습

아버지는 말하셨지
딸들에게 전한 따뜻한 사랑의 말

아버지의 이메일
세상 떠나기전 남긴 이메일 43통



우리 사회 현 문화 코드 중 하나는 ‘아버지’다. 90년대 IMF 구제금융 시절. 경제의 희생양이 된 ‘아버지’ 가 대중의 정서를 파고들며 신드롬을 일으켰다면, 올 초 ‘국제시장’을 필두로 문화소비시장에서 소비되는 ‘아버지’는 역사인식과 궤를 같이한다. 아버지에 대한 탐구는 역사의 복원을 의미한다. 근대화ㆍ산업화의 소용돌이에 모두 빨려나간 가치와 존재의 건져내기랄까. 어버이날을 앞두고 여느 해보다 아버지를 추억하고 돌아보는 책들이 많이 출간된 것도 그런 연장선상이다. 

“나는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을 합니다. 거기에는 나를 잘 알고 늦어도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살지요. 살구나무가 있고 감나무가 실한 뜰에서 아버지는 망치질을 하고 어머니는 생선을 다듬었습니다.(...) 나무 대문에 겸손하게 매달린 초인종을 누르고 아직 사십대, 혹은 오십대 초반의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마중 나오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나를 기다려 주는 집이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뒷배인지 깨닫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기다리는 집’)

‘마당을 나온 암탉’의 작가 황선미는 신작 어른 동화 ‘기다리는 집’(에스티엠 펴냄)에서 작가의 말을 통해 가난한 시절, 자식들이 무사히 건너도록 스스로 징검돌이 돼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 그가 아버지의 망치를 기억하며 쓴 ‘기다리는 집’은 얼크러지고 깨진 가족과 공동체가 집을 통해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폐가가 된 감나무집에 한 남자가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넝마같은 집을 고치고 세우며 묵묵히 집 고치는 일에만 열중하는 남자는 집이 완성될 무렵, 불이 나고 남자는 그 자리를 피하지 못하고 병원으로 실려간다. 남자는 수년 전 사라진 감나무집 아들, 명길. 불을 지른 소년은 그의 아들 재성이다. 아들을 위해 돌아온 그는 아들을 위해 집을 지었지만 아들이 불을 지르자 다시 떠나려 한다. 그 때 이웃집 영감이 나서 명길에게 어머니가 그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들려준다. 명길의 대답은 절망적이다. “이까짓 집이면 다예요? 식구도 없는 집이 무슨 집이야”. 그 때 재성이 명길을 붙잡는다.“여기 있어요. 나랑. 집에는 아버지가 있어야 되잖아.”

방송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송정연ㆍ 송정림 자매가 얼마 전 아버지를 하늘로 떠나보낸 뒤 아버지를 추억하며 ‘아버지는 말하셨지’(책읽는수요일 펴냄)를 펴냈다.아버지가 가슴 속에 꾹꾹 담아 놓았다가 어렵게 입 밖으로 꺼내 딸들에게 전한 사랑의 말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인생의 고비마다 때로는 회초리가, 때로는 나침반이, 또 따뜻한 손전등이 돼 준 아버지의 조언들은 한마디 한마디가 짧지만 깊고 넓다.

“우리 아버지는 사회적인 성공을 거둔 분이 아니었다. 배움이 많은 분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 시대의 평범한 아버지였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버지는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이었다. 그 누군가의 묘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되어 있다. 그래서 그 마음은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말하셨지’중)

‘어렵게 공부해라’ ‘절대 결석하지 말아라’ ‘그 누구도 널 도와줄 수 없을 때가 온다’ ‘일이든 놀이든 용감해라’ ‘백번하면 된다’ 등 삶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어떤 태도로 임해햐 하는지 들려주는 아버지의 조언은 우직함과 성실함을 강조하고 있다.

‘손해 보는 것 같으면 그게 곧 균형이다’ ‘멀미 날 땐 멀리 봐라’ ‘돈을 벌기보다 사람을 벌어라’ ‘그릇 크기를 보고 물을 부어라’ ‘편견을 갖는 것은 외눈박이로 사는 것이다’ ‘가시가 없으면 생선 맛이 덜하다’ 등의 일침도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

‘멋은 내는 게 아니라 풍기는 거다’ ‘식사는 언제나 잔치처럼 차려라’ ‘비가 오면 집안에 꽃을 꽂아라’ ‘일을 하니까 실수도 있지’ ‘책을 외면하면 제일 바보다’ 등 행복에 이르는 삶의 통찰도 들어있다.

다큐멘터리 감독 홍재희의 ‘아버지의 이메일’(바다출판사 펴냄) 은 2008년 아버지가 75세의 나이로 타계하기 직전, 1년 간 딸에게 보낸 43통의 이메일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75년 간의 삶을 현대사에 비껴 엮어냈다. 딸이 돌아본 아버지 홍성섭은 열다섯에 북에서 남으로 내려온 후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실향민. 이 때문에 빨갱이라면 치를 떠는 아버지의 세계는 빨갱이 대 비빨갱이 대립 구도로만 이뤄져 있다. 취업이민을 가는 게 소원이었던 아버지는 연좌제로 묶이면서 술에 의지해 살아가게 된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대한 한과 분노를 아내와 자식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푼다.

저자는 삼남매 중 아버지가 가장 편애한 자식이었지만 폭력가장이 있는 그 집을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인식한다. 아버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고 경멸했던 그는 아버지와 맞서다 집을 나와 버린다. 그리고 가족과 인연을 끊었다. 이런 딸의 마음을 두드리고 고통스런 과거로 다시 돌아가도록 만든 게 아버지의 이메일이다. 저자는 과거의 상처를 다 극복했다고 여겼지만 그건 착각이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아버지를 용서한 게 아니었다. 아버지 이메일을 읽고 나서야 그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용서는 망각이 아니라 기억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는 것을.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억해야만 한다는 것을”( ‘아버지의 이메일’ 중)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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