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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어도 안 쓰고 저축한다” 한국경제, 케인즈의 ‘절약의 역설’에 빠지다
[헤럴드경제=한석희ㆍ원호연 기자]#주부 A씨는 지난해부터 가계부 목록 1순위로 적립식 펀드와 아이들 명의의 예금통장을 올려 놓았다. A씨는 이것도 모자라 CMA 계좌에 매달 40만원 가량은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고 한다. A씨는 “빠듯한 월급에 저축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이러다가는 노후는 커녕 애들 교육도 제대로 마치게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에 저축을 하기 시작했다”며 “불안하다보니 꼭 필요한 생필품 이외 소비는 생각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가 케인즈가 경고한 ’절약의 역설’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경제를 제대로 작동시키는 원동력인 ‘심리’가 무너진 상태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까지 겹치면서 소비는 줄이는 대신 돈을 차곡차곡 쌓아두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애기다. 

특히 최근 한국경제를 엄습하고 있는 ‘절약의 역설’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시점과 맞물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가계 건전성이 고령화에 따른 사회 구조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경제의 선순환 구조’ 마저 무너지는 셈이다.

흔히 소비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가처분소득의 감소, 천정부지로 쌓이기만 하는 가계부채, 소득 불평등의 문제도 여전하지만 더욱 중요한 소비침체의 단초는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인식에 있다는 애기다. 그만큼 현실을 팍팍하게 보고 미래는 불안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안고 살아야 하는 한국인의 슬픈 자화상이 ’절약의 역설‘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 셈이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2012년 이후 3년 연속 소비증가율이 가계 소득 증가율을 밑돌고 있다. 게다가 2010년 77.3%로 정점을 찍었던 가계의 평균소비성향 역시 지난해엔 72.9%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100만원의 돈을 쓸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72만9000원만 쓰고 나머지 돈은 쟁겨 놓고 있다는 애기다.

특히 불과 5년전만 해도 한국경제의 고질적 문제점 중 하나로 꼽혔던 가계저축률이 최근엔 오히려 상승세로 반전해 소비회복의 발목을 잡고 있다. 실제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국민계정)에 따르면 2011년 3.40%로 바닥을 찍었던 가계순저축률은 2013년 4.90% 증가한 데 이어 지난해엔 6.10% 늘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득이 정체된 측면도 있지만 소득이 있어도 노후 불안이나 일자리 불안, 주거불안 등으로 인해 소비를 유예하고 있다”며 “특히 노후 소득이 보장이 안되다 보니 최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앞두고서 이같은 현상이 더 커지고 있고, 향후에도 몇년간은 이같은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는 신뢰가 무너지고,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만 커지는 상황에서 물가마저 하락세를 그리다 보니 소비유예 현상이 더 강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 1000원하던 물건값이 내일이면 800원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라도 소비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임일섭 우리금융경영연구소 금융연구실 실장은 이와 관련 “가계저축률의 상승과 더불어 소비 부진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케인즈가 말한 ‘절약의 역설’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재정과 통화정책의 양 측면에서 수요를 진작하기 위한 경기부양 정책이다”고 지적했다.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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