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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벌과 대학의 만남…잘못된 악연 vs 행복한 동거
[헤럴드경제=신상윤ㆍ이지웅 기자]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재벌’과 학문의 자유를 표방하는 ‘대학’의 동거 사례가 점점 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사뭇 다르다.

가치 충돌로 큰 파열음을 빚는 곳이 있는 반면, 기업의 자본이 ‘상아탑’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며 ‘윈윈’하는 경우도 있다.

2일 검찰과 대학교육연구소 등에 따르면 기업식 ‘상아탑’ 개조에 따른 논란이 가장 큰 곳은 중앙대다.

중앙대가 본ㆍ분교를 통합하고 적십자간호대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는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이 지난달 30일 검찰소환에 이어 내주초 사전구속영장청구가 점쳐진다.
대학가 전경사진.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헤럴드경제DB사진]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도 최근 ‘막말 논란’으로 중앙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 검찰 소환을 앞둔 신세가 됐다.

대학을 또 다른 이익 창출원으로 활용했다는 의혹도 나온다.

대학교육연구소가 2008년 두산의 중앙대 인수 이후 ‘법인 및 학교 재정ㆍ교육 여건(2007~2015년)’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중앙대는 2009~2015년에 식당, 매점, 문구점, 서점 등 각종 편의시설을 임대해주고 203억원이 넘는 임대보증금과 임대료 수입을 거둔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성공사례도 있다. 포스텍과 성균관대를 운영하는 포스코와 삼성은 재벌과 대학의 모범 동거 케이스로 꼽힌다.

포스코는 1986년 설립한 포항공대(포스텍의 옛이름)에 지금까지 1조원이 넘는 돈을 투자,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으로 발돋움시켰다. 2012년 결산 기준 포항공대의 등록금 의존율은 16.4%로, 4년제 대학 평균(66.2%)의 4분의 1 수준이다.

성균관대도 기업의 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끌어올렸다. 

특히 삼성은 성균관대에 반도체학과 등 ‘취업 계약 학과’를 설치해 학생들의 취업을 보장하며 교육계 등에서 호평받았다. 

해마다 1000억원 이상씩 학교에 투자, 인수 당시 81.1%였던 등록금 의존율을 40%대까지 끌어내리기도 했다.

▶법인전입금 비율 낮은 재벌소유 대학 ‘돈벌이’ 수단?=기업이 소유 또는 설립했던 대학 중 상당수가 4년제 사립대 평균보다 법인 전입금 비율이 낮다.

대학에 대한 투자를 통해 통해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기업들이 오히려 대학을 통해 돈 벌이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제기될 수 있는 이유다.

전국 152개 사립대의 교비 회계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국 사립대의 평균 법인 전입금 비율은 5.2%였지만, 한진그룹 소유 인하대와 한국항공대는 각각 2.2%와 3.9%에 머물렀다.
대학가 전경사진.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헤럴드경제DB사진]

두산그룹 소유 중앙대는 평균 법인 전입금 비율을 겨우 상회하는 7.4%에 불과했다. 

소유 기업이 부도 등으로 정리됐지만, 아직 오너 가(家)에서 대학을 사실상 운영하고 있는 쌍용그룹의 국민대와 대우그룹의 아주대는 각각 2.0%와 3.1%였다.

반면 포스코 소유 포항공대는 48.6%나 됐고, 삼성그룹 소유 성균관대는 18.8%, 현대중공업 소유 울산대는 11.5%로 평균 법인 전입금 비율을 넘어섰다.

법인 전입금 비율은 사립대 재정ㆍ회계 지표 중 하나로, 대학에 대한 법인의 재정 기여도를 보여준다. 

등록금 수입ㆍ전입 및 기부 수입ㆍ 교육 부대 수입ㆍ교육 외 수입을 합친 운영 수입 대비 법인 전입금 비율로, 비율이 높을수록 운영 수입이 다양하게 구성돼 등록금 의존율이 낮아지며, 법인의 대학에 대한 재정적 책무성 정도가 높은 것을 의미한다.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법인 전입금 비율이 낮다는 것은 대학에 대한 기업의 지원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며, 일부기업의 경우 대학 법인을 인수할 당시 내세웠던 명분인 투자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서 삭제된 법인 전입금 비율 등 법인 관련 지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에 분는 대기업 바람…전 대학가로 확산=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은 2008년 취임 직후부터 대학에 대기업식 바람을 이식하려 했으나 학내 안팎은 이 같은 방침에 홍역을 앓아 왔다.

박 전 이사장은 중앙대 관련 현안을 직접 챙기면서 대학 경쟁력 육성 방안 구상에 전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취임 4개월 기자간담회에서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 등 ‘3불 정책’에 대해 “없어져야 할 제도”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기업들은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좋은 원료를 많이 사지만 대학은 좋은 입학생을 마음대로 뽑지 못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총장 직선제 폐지와 교수 성과급 연봉제를 강력하게 추진했는데 이 역시 대학에 대기업 문화를 이식하려는 방침으로 해석됐다.

2008년 12월에는 중앙대 재학생에게 “소꼬리보다는 닭 머리가 돼라”는 이른바 ‘닭머리론(論)’이 담긴 이메일을 보내 중소기업으로의 취업을 독려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비교민속학과, 아동복지학과, 가족복지학과, 청소년학과 등 4개 학과를 폐지했다.

이 같은 변화의 바람에 끓어오던 학내 구성원의 반발은 학교 측이 2016학년도부터 학과제를 전면 폐지하고 단과대학별로 신입생을 모집하기로 하면서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곧이어 막말 이메일 파문이 일어나 박 전 이사장 사퇴로 갈등은 일단락이 됐다. 중앙대는 지난달 28일 박 전 이사장의 후임으로 상공자원부 장관을 지낸 김철수(74) 전 세종대 총장을 선임했다.

중앙대 사태에서 보듯, 대기업 문화를 대학에 이식하는 작업은 학내의 큰 반발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대학이 기업과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경쟁력 향상 작업에 ‘올인’하는 기조만큼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건국대는 예술디자인대학, 정보통신대학 등 일부 학과를 통폐합해 기존 73개 학과를 63개로 축소하기로 했다.

이화여대는 기존 6개 학교와 신설되는 융합콘텐츠학과로 이뤄진 신산업융합대학을 2016학년도부터 신설하기로 했다.

신산업융합대학으로 이전되는 6개 학과는 대체로 취업률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가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하는 학과 정원을 서서히 줄이거나 폐지하는 절차를 밟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숙명여대는 정보통신기술(ICT)이나 화공·생명 분야 공과대학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한국외대는 2016학년도부터 현재 광역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일부 학과의 선발 방식을 학과 단위로 전환하기로 했다.

k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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