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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승희의 이 장면&이 대사] 여주인공 자살과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임성한 드라마의 완성은 자가치유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드라마는 10편만 쓰겠다”는 일일극의 여왕 임성한 작가에게 현재 방영 중인 MBC ‘압구정 백야’는 딱 열번째 작품이다. 작가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내내 흘러넘쳤던 전작들의 사례에 비춘다면 이 드라마에서 지난 이틀간 보여준 여주인공의 자살 시도와 남겨진 사람들의 심경엔 임 작가 스스로를 향한 힐링요법이 담긴 것으로 보여 흥미롭다.

종영을 2주 앞둔 ‘압구정백야’는 ‘신기생뎐’ 이후 기이한 행보가 널을 뛰었던 임 작가의 전작들처럼 막장 논란에 휩싸이고 있는 작품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비윤리적’이라는 지적과 함께 징계도 받았다.

세간에 익히 알려진 막장 논란, 즉 개연성 없는 전개와 윤리적인 상식에서 벗어난 인물들간의 관계 설정 이외에도 임 작가 드라마의 특징 중 하나는 작가의 가치관이 공공재를 통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는 점이 있다. 작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예찬론을 펴고, 대사 한 마디 한 마디를 스스로를 위한 치유제로 사용한다. 언론을 통해 몇 차례 공개됐던 작가의 개인사가 작품 속에 인용돼 스스로를 위로하고, 여러 매체들을 통해 형성된 비난여론에도 맞수를 두는 방식으로 할 말을 해왔다. 


눈길을 끌 만한 지점은 ‘데스노트’ 파문이다. ‘오로라공주’에서 주조연급 배우들이 사망 등으로 줄하차했고, 그 과정에서 유체이탈과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명대사도 탄생했다. ‘압구정백야’에선 병원 로비에서 조폭에 한 대를 맞은 채 난데없이 사망한 배우도 나왔다. 스토리의 구성이 탄탄한 와중에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인물들의 사망 설정이었다면 시청자들의 맹비난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임 작가의 작품 내내 흐르는 삶과 죽음에 대한 종교적 관념의 강조는 드라마의 밀도를 떨어뜨렸다. 원하는 바에만 집중하다 보니, 임 작가 특유의 탄력있는 글쓰기가 느슨해진 셈이다. 또한 이 같은 설정은 김 빠진 드라마의 전개방향을 억지스럽게 돌리려는 데에만 사용했다는 점이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

임 작가는 자신과 항상 호흡을 맞췄던 남편 손문권 PD의 자살 이후 함께 작업하기로 했던 MBC ‘오로라공주’를 혼자 완성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샤머니즘적 접근방식은 이 드라마에서도 내내 비추며 작가는 드라마를 힐링제로 삼았다. 남편의 죽음과 그 이후의 감정을 암시하는 대사도 적지 않았다. 순응하겠다는 삶의 방식도 드라마에선 내포됐다.

‘압구정백야’에서 임 작가는 ‘자살’이라는 소재를 처음으로 사용했고, 또한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남겨진 사람들의 심경을 지난 30일 전체 방송분을 통해 내내 집중했다. 작가의 개인사와 그간 작품 성향에 비춘다면 그의 마지막 작품을 통해 임 작가 스스로의 다사다난했던 삶을 정리하고 치유하는 과정으로 비치는 이유다.

다만 드라마에서 여주인공 백야는 투신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나오지만, 향후 방송분을 통해 재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여주인공의 유서에는 “미안해요. 우울증으로 힘들었어요. 이겨내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안됐어요. 두 가지만 부탁할게요. 조용히 보내줘요. 그리고 찾지 말아줘요”라며 “오빠가 잠든 푸른 바다에서 나도 자유와 안식을 찾고싶어요. 오빠 너무 보고싶어요. 장례식 같은거 말고 빈소도 차리지 말고 친구, 지인들한테 일부러 알리지 말아줘요. 자랑할 일 아니니까. 그냥 자다가 갔다고요”라고 적혀있었다. ‘찾지 말아달라’는 문장을 이유로 시청자들은 상투적이고 뻔한 반전을 기대하고 있다.

여주인공의 투신자살 시도로 이틀을 끌고간 ‘압구정백야’의 이날 방송분은 임 작가판 ‘데스노트’ 활약에 힘 입어 15.4%의 전국 시청률(닐슨코리아 집계)을 기록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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