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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홍성원][禮義의 전략화
있으면 본전이지만, 없거나 혹은 없다는 평가를 받으면 곤란해지는 게 예의다. 낙인 한 번 찍히면 사회 생활은 그 날로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당사자의 해명은 옳든 그르든 구차하게 해석된다. 주홍글씨 이상의 잔혹함이 담긴 단어다.

예의가 ‘핫’하다. 처지가 고약하게 된 이들의 입에서 주로 나왔다. 언론ㆍ여론 공격용이다. ‘여백을 남기고 떠난‘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그랬다. 거취가 초미의 관심이던 때, 중남미로 출발하려는 박근혜 대통령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언론이 물었다. 그는 “대통령과 (나눈)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예의”라고 했다.

이런 류(類)의 질문엔 건질 만한 답이 안 나올 걸 언론은 뻔히 안다. 그럼에도 찔러보는 건 일종의 ‘빈볼’을 던지는 것인데, 느닷없이 나무라듯 예의라는 말이 돌출했다. 각하라는 호칭을 즐겨 쓰던 ‘70일 총리’와 “총리의 고뇌를 느낀다”던 대통령의 교감은 이렇게 ‘예의의 장막’ 속에 봉인됐다.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하는 다른 인사들도 마찬가지다. 파문 관련 질문을 하면 “예의가 아니다”라고 치받았다. 이쯤되면 이들에게 예의는 전략적 쓰임새가 있다고 봐야 한다. 결백을 주장함과 동시에 질문까지 차단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내세울 것 없는 ‘반민(半民)ㆍ반(半) 기레기(기자+쓰레기)’이지만, 이런 적반하장의 풍경은 목격해 본 적이 없어 흥미롭다. 의혹의 중심에 선 인사들이 되레 당당하다. 달리 권력의 최측근이 됐겠나 싶다.

‘예의의 전략화’ 측면에선 박근혜 대통령은 순수해 보인다. 여론에 맞선 적이 없는 것 같아서다. 그러나 그에겐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인물군(郡)도 있고, 일정ㆍ메시지도 치밀하게 조율하는 참모가 있다는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중남미 4개국 순방을 위해 떠난 ‘그 날’부터 귀국 이후 와병(臥病) 메시지까지…. 세월호 1주기엔 경제활성화로, 성완종 파문 관련 입장 표명 요구엔 위경련ㆍ인두염으로 각각 처방을 냈다.

‘아픈 척하며 입장을 안 내는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 한 여당 의원은 “대통령이 12일 넘도록 지구 반대편에 가서 한국경제 위해 고생하고 왔잖나”라며 “이건 기본적인 예의의 문제”라고 강공했다.

어제 치러진 4ㆍ29 재보선은 박 대통령과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박 대통령은 예의 운운하지 않고 ‘친박(親朴ㆍ친 박근혜계)’ 하수들보다 내공 있게 원하는 바를 도모하는 중이다. 선거 전날 고(故) 성완종씨를 두 차례 사면해 준 과거 정부의 비리 의혹을 캐야 한다는 메시지를 와병 중에 낸 것도 야당 참패의 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선거의 여왕’이 그냥 된 게 아니다.

그러나 선거에서 몇 석을 얻어 승리하든 먼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앞에 둬야 한다. 세월호 1주기 때부터 스텝이 꼬일 수밖에 없는 동선으로 움직여 오해를 사고, 의혹의 빌미를 주는 식으론 ‘예의 없는’ 정권이란 평가를 피할 수 없고, 그러면 권력층 생활 끝이다. 악재에서 완전히 탈출하지 않은 채 상승세를 탔다고 자만하면 안 된다. 아직 해 놓은 게 없는 정부니까. 

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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