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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의 눈에 이용수 할머니는 ‘전쟁겪은 여성’ 일 뿐이었다
위안부·사과 한마디 없이 “한국 성장 기여”
미일동맹 강한 의지…기립박수 속 미소 화답
과거사 문제 직시한 독일과 정반대의 행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웃었고, 이용수 할머니(군 위안부 피해자)는 울었다. 끝내 아베 총리는 역사와 진실을 외면했다. 미 상ㆍ하원 합동연설장에는 수차례 기립박수가 터졌고, 아베 총리는 미소로 화답했다. 초청객으로 참석한 이용수 할머니는 40분의 궤변을 울분 속에 지켜봤다.

▶아베 ‘한국’ 두 차례 언급, 日이 韓 성장에 기여 = 아베 총리는 29일(현지시간) 오전 미 하원 본회의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일본 총리 사상 최초로 상ㆍ하원 합동연설에 나서면서 미일 동맹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한국 등 피해국에 대한 배려나 사과는 없었다.

아베 총리는 “우리(일본)가 전쟁(2차 세계대전)에 대한 깊은 반성의 마음으로 전후를 시작했다”며 “우리의 행위가 아시아 국가의 국민에게 고통을 주었다”고 말했다. 역대 담화들을 관통하는 표현인 ‘식민 지배’, ‘침략’ 등의 표현은 언급하지 않았다. ‘사죄’라는 단어도 없었다.

일본군 위안부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또다시 제3자 식의 화법을 구사했다. 그는 “무력분쟁이 늘 여성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다. 여성들이 인권 학대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군 위안부 대신 ‘전쟁 겪은 여성’으로 교묘하게 단어를 사용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아베 총리는 ‘한국’을 두 차례 언급했다. 모두 일본이 한국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발언이었다. 그는 “1980년대 이후 한국, 대만, 동남아국가연합, 중국 등이 부흥했다. 일본도 그 국가의 성장을 지지했다”고 말했다. 또 “평화와 안보를 위한 미국의 노력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원하겠다. 일본이 많은 분야에서 아세안 국가 및 한국과 협력을 증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베는 미소, 이용수 할머니는 울분 = 방청석에는 이용수 할머니도 있었다. 민주당 소속 마이크 혼다 의원의 초청 덕분이다. 아베 총리의 사죄를 직접 듣길 원했던 이 할머니는 아베 총리의 연설을 끝까지 지켜봤다. 아베 총리가 의원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는 모습도 묵묵히 지켜봤다. 아베 총리는 옅은 미소로 화답했고, 이 할머니는 말이 없었다.

40여분의 연설 뒤에 아베 총리가 미 의원과 일일이 악수하는 모습까지 묵묵히 지켜본 이 할머니는 아베 총리가 나간 후에야 비로소 몸을 움직였다. 이 할머니는 연설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베가 지난 20여년 간 거짓말만 하고 사죄를 안 했는데, 오늘 의회 연설에서도 끝내 사죄하지 않았다”며 “역사를 부정하는 병을 안 고치면 스스로 망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혼다 의원도 “아베 총리가 연설에서 위안부 범죄를 사과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했다. 이는 충격적이고 아주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20만명이 넘는 (위안부 피해자) 소녀와 여성에게 모욕을 줬다”며 “70년 이상 솔직한 사과를 기다려 온 이용수 할머니는 아베 총리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한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성토했다.

▶일본, 독일과 정반대 길 걷다 = 아베 총리가 끝내 과거사를 외면하면서 일본은 선진국으로 대우받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렸다. 역사 문제를 직시하고 사과를 수차례 표명한 독일과 정반대의 행보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2013년 독일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나치 수용소였던 다하우 추모관을 방문했다. 독일은 1970년 빌리 브란트 당시 총리가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을 찾아 직접 무릎 꿇고 사죄했고, 2009년엔 메르켈 총리 역시 독일 정상으론 두 번째로 무릎을 꿇었다. “나치의 만행을 기억하는 건 독일의 영원한 책임”이라며 수시로 과거사를 사죄했다.

아베 총리는 최근에도 자민당 창당 60주년 전당대회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계승하겠다고 밝혔으며, 실제 춘계 예대제 때 아베 총리는 올해에도 공물을 봉납했다.

아베 총리의 우향우 행보는 일본 후손과 정부에도 큰 짐이 됐다. 미 의회 연설을 앞두고 그 어느 때보다 국제사회의 요구가 거셌다. 미 하원의원 25명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촉구하는 연명서한을 발송했고, 특별 연설을 통해 위안부 문제 등 아베 총리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촉구했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현지 언론도 사설이나 기고 등을 통해 아베 총리의 사과 발언을 주문했다.

데니스핼핀 미 존스홉킨스대 연구원도 기고를 통해 “아베 총리는 일본의 공식 인정과 사과, 책임 수용을 촉구한 ‘2007년 위안부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된 바로 그 현장에서 자신이 연설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ㆍ관ㆍ언론ㆍ학계 모두 아베 총리의 과거사 사과를 요구했다. 국가 정상의 방문을 앞둔 시점에서 이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는 건 이례적이다. 하지만 끝내 아베 총리가 이를 외면하면서 이제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일본 정부의 몫으로 떨어졌다.

김상수 기자/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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