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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광장-문창진]국민행복순위가 바닥을 치는 이유
지난 3월 20일 갤럽이 긍정경험지수 조사결과를 유엔 ‘세계행복의 날’에 맞추어 발표했다. 한국의 긍정경험지수는 100점 만점에 59점으로, 143개국 중 118위를 차지했다. 한 해 전에도 94위의 낮은 순위였는데 더 떨어졌다. 경제규모, 1인당 국내총생산(GDP), 평균수명, 교육수준 등에서는 선진국들과 우열을 겨루고 있지만 행복수준은 계속 바닥권에 머물러 있다.

행복의 사전적인 개념은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말한다. 만족과 기쁨은 주관적인 안녕감이며, 감정상태가 개입돼 있다. 따라서 물질적으로 풍요하더라도 생활만족도는 낮을 수 있다. 생활만족도와 1인당 GDP와의 관계를 국제적으로 조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GDP가 연간 8000달러를 넘어가면 생활만족도와 경제수준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GDP 3만 달러 시대를 코앞에 두고 행복순위가 내려앉은 것은 심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국민행복지수가 이렇게 낮은 이유는 점차 고조되고 있는 사회적 불안감 때문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Ulrich Beck)은 현대사회를 ‘마치 화산위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위험한 사회’라고 정의했지만, 오늘날 한국사회는 각종 재해와 사고의 위험은 물론 신분 불안을 걱정해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경제규모는 커졌지만 수능걱정, 취업걱정, 결혼걱정, 실업걱정, 물가걱정, 노후걱정 등 일생동안 각종 걱정이 따라 다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세계화로 인한 무한경쟁 스트레스도 행복지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세계화시대에서 생존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절대절명의 과제가 되었다. 생존의 논리는 입시, 취업, 승진 등 인생사의 전 과정으로 확산되고 있다. 생존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완벽주의, 성과지향, 경쟁심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직장인의 70-80%가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한다.

또한 ‘희망 없는 사회’의 출현이 행복의 부활을 막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신분상승의 사다리는 부서진 지 오래됐다. 패자부활전이라는 말도 입에 발린 소리가 되었다. 그 누구든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져버리면 희망을 상실하게 된다. 절망의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불행을 절감하게 되고 인생을 포기하는 수순으로 접어들게 된다. OECD 회원국 최고의 자살률은 한국이 ‘희망 없는 사회’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다.

설상가상으로 정서적 관계까지 두절되어 행복의 중요한 요소인 관심, 사랑, 자기존중의 기회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전통적인 혈연공동체가 붕괴되었고, 가족 간의 대화도 단절되어가고 있다.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가족과 친척 대신 반려동물이 곁을 지키고 있다. 칭찬하고 위로해 줄 존재가 옆에 없다. 그 결과 관심과 사랑의 결핍 속에서 인터넷에 매달리거나 은둔형 외톨이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신뢰 붕괴도 국민행복을 저해하는 데 일조를 하고 있다. 부패한 정치인에 대한 혐오감, 불투명한 권력에 대한 거부감, 정부의 어설픈 갈등관리에 대한 실망감 등으로 국가에 대한 존경심이나 “국가가 나를 보호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전반적으로 약화됐다.

나라예산으로 국민행복을 살 수는 없다. 경제번영만으로 국민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국정을 잘 수행하려는 의지는 어느 정부에나 다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다. 무엇보다 소통부재로 민심위주의 국정수행이 안 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대통령과 당 지지도에만 신경을 쓸 뿐 국민이 무엇에 행복해 하는가에 대해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제부터라도 경제번영을 이룩한 선진국들이 국민행복수준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국정을 펼쳤는지 제대로 살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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