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 대선후보까지 지낸 화려한 과거를 과거를 뒤로 하고 탈당을 결행, 서울관악을에 정치생명을 걸고 승부수를 던졌지만 결국 3등으로 무릎을 꿇으면서 앞날이 더욱 어두어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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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총선에 이어 거푸 ’쓴 맛‘을 보면서 거물 정치인의 체면을 구긴데다, 결정적으로 이번까지 네 차례나 탈당을 반복하며 이미지에 큰 상처을 입었다. 정 후보 스스로도 탈당하면서 “정치인생의 마지막 봉사”라며 배수의 진을 쳤다. ’제1야당 심판‘, ’야당 교체‘ 등의 구호를 내걸었지만,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에게도 밀리면서 빛이 바랬다. 특히 정 후보는 27년간 야당의 텃밭이었던 관악을을 여권에 넘겨줬다는 야권분열 책임론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이다.
탈당 후 정치활동의 기반이 된 국민모임 역시 이번 패배로 존폐기로에 처했다. 그의 재기 전망은 더욱 불투명하게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 후보가 호남출신 유권자들이나 진보진영 유권자들의 지지를 일부 확인한 만큼, 내년 총선에서 ’정치적 고향‘인 전주·덕진에 도전하며 활로 모색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광주 서을에 당선된 무소속 천정배 당선인과 연대를 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고개를 들고 있다.
야권에서도 정치인생의 굴국이 워낙 심했던 그였기에 이번 패배를 정계은퇴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MBC기자 출신인 정 전 후보는 15대 총선 때 전주에서 출마, 전국 최다득표를 기록하며 정계에 화려하게 입문했다. 이후 야권내 정풍운동을 주도, ’천(천정배)·신(신기남)·정(정동영)‘ 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하는 등 차세대 리더로 떠올랐다.
노무현 정부 통일부장관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2006년 지방선거 참패 후 구 민주당과의 통합 등 당의 진로를 둘러싼 이견으로 노 전 대통령과 결별했다. 과정에서 2003년에는 구 민주당을 선도 탈당하며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가 2007년에는 다시 열린우리당을 탈당하는 등 부침을 겪었고, 2004년에는 ’노인폄하‘ 발언으로 설화에 휘말리기도 했다. 2007년 대선에서 약 500만표 차이로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하면서부터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미국으로 떠났다가 2009년 4월 전주 덕진 재선거 때 무소속으로 당선됐지만, 19대 총선에서 다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중도 실용주의자로 분류됐던 정 전 후보는 2010년 공개반성문을 발표하고 ’담대한 진보‘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후 시민사회와 접촉을 넓히며 세월호법 제정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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