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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지막 봉사”라던 정동영, 참패이후 선택지는?
[헤럴드경제=유재훈 기자]국민모임 정동영(62) 후보가 “배신자”란 오명을 무릅고 배수진을 쳤지만 정치적 재기에 실패했다. 야당의 전패하면서 야권분열의 책임도 지게 됐다.

야권 대선후보까지 지낸 화려한 과거를 과거를 뒤로 하고 탈당을 결행, 서울관악을에 정치생명을 걸고 승부수를 던졌지만 결국 3등으로 무릎을 꿇으면서 앞날이 더욱 어두어지게 됐다.

19대 총선에 이어 거푸 ’쓴 맛‘을 보면서 거물 정치인의 체면을 구긴데다, 결정적으로 이번까지 네 차례나 탈당을 반복하며 이미지에 큰 상처을 입었다. 정 후보 스스로도 탈당하면서 “정치인생의 마지막 봉사”라며 배수의 진을 쳤다. ’제1야당 심판‘, ’야당 교체‘ 등의 구호를 내걸었지만, 새정치연합 정태호 후보에게도 밀리면서 빛이 바랬다. 특히 정 후보는 27년간 야당의 텃밭이었던 관악을을 여권에 넘겨줬다는 야권분열 책임론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이다.

탈당 후 정치활동의 기반이 된 국민모임 역시 이번 패배로 존폐기로에 처했다. 그의 재기 전망은 더욱 불투명하게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 후보가 호남출신 유권자들이나 진보진영 유권자들의 지지를 일부 확인한 만큼, 내년 총선에서 ’정치적 고향‘인 전주·덕진에 도전하며 활로 모색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광주 서을에 당선된 무소속 천정배 당선인과 연대를 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도 고개를 들고 있다.

야권에서도 정치인생의 굴국이 워낙 심했던 그였기에 이번 패배를 정계은퇴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MBC기자 출신인 정 전 후보는 15대 총선 때 전주에서 출마, 전국 최다득표를 기록하며 정계에 화려하게 입문했다. 이후 야권내 정풍운동을 주도, ’천(천정배)·신(신기남)·정(정동영)‘ 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하는 등 차세대 리더로 떠올랐다.

노무현 정부 통일부장관을 지내는 등 승승장구했으나 2006년 지방선거 참패 후 구 민주당과의 통합 등 당의 진로를 둘러싼 이견으로 노 전 대통령과 결별했다. 과정에서 2003년에는 구 민주당을 선도 탈당하며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다가 2007년에는 다시 열린우리당을 탈당하는 등 부침을 겪었고, 2004년에는 ’노인폄하‘ 발언으로 설화에 휘말리기도 했다. 2007년 대선에서 약 500만표 차이로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하면서부터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미국으로 떠났다가 2009년 4월 전주 덕진 재선거 때 무소속으로 당선됐지만, 19대 총선에서 다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중도 실용주의자로 분류됐던 정 전 후보는 2010년 공개반성문을 발표하고 ’담대한 진보‘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후 시민사회와 접촉을 넓히며 세월호법 제정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igiza7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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