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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패션을 만나다] ‘은둔형’ 디자이너 신재희 “패션은 애티튜드(Attitude)”
② 신재희 ‘재희신’


패션업계에서 흔히 쓰이는 말 중에 ‘애티튜드(Attitude)’라는 게 있다. 우리말로는 ‘태도’로 번역되지만, 굳이 애티튜드라고 쓴다. 단지 ‘보그 병신체(패션잡지에서 남발되는 외국어를 일컫는 말)’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다. 애티튜드는 태도를 포함해, 옷을 입는 이의 사고방식, 철학 등 정신적인 가치의 모든 것을 의미한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신재희(36)는 “패션은 애티튜드”라고 말하는 디자이너다. 그에게 옷을 입는다는 것은 단순한 시각적인 경험을 넘어서 태도를 규정짓고 가치를 입는 행위다. 그의 패션 브랜드 재희신(Jehee sheen)은 무소유, 자연과의 조화같은 가치를 추구한다. 지난 2015 SS서울패션위크 재희신 무대는 한 명의 모델이 단 한벌의 의상을 입을 것을 원칙으로 했다. 보통 한 명의 모델이 두 세벌 이상의 옷을 갈아입고 등장하는 여느 쇼와는 다른 부분이다. 게다가 옷을 입은 모델들은 아주 천천히 캣워크를 보여줬다. “쇼가 지겹다”는 평과 “옷을 잘 보여준다”는 평이 갈린다. ‘자아존중(Self-respect)’이라는 콘셉트를 풀기 위한 디자이너만의 방법론이었다. 재희신은 울, 캐시미어, 송치, 양털 등 촉감이 살아있는 고급 소재에 블랙을 메인 컬러로 클래식하고 절도 있는 남성 수트를 선보였다. 

신재희에게 “이마에 잡힌 주름이 멋있다”고 인상을 써보라 하자 오히려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인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이탈리아 패션명문 마랑고니(Istituto Marangoni)에서 패션디자인 마스터 과정을 조기 졸업, 조르지오 아르마니 남성복 디자이너(2006~2009)를 거쳐, 대기업 브랜드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피티워모에서 한국인 최초로 이름을 알렸던 신재희. 화려한 프로필과는 달리 스스로를 ‘은둔형’이라고 말하는 신재희 디자이너를 동대문 쇼룸에서 만났다.

▶패션쇼에 셀럽(Celebrity)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9 FW가 첫 시즌이었다. 지금까지 한번도 쇼에 셀럽을 초청하지 않았다. 당연히 포토월도 없다. 재희신은 관념적인 것에 브랜드 가치를 두고 있다. 그런데 셀럽들은 옷을 입고 자기를 드러내려고 한다. 이것이 브랜드 가치와 충돌한다. 재희신에 디자이너 신재희가 보여서는 안되는 것처럼, 재희신의 옷을 입은 연예인들이 드러나서는 안된다는 게 철칙이다.

▶프로필만 잘 팔아도 ‘먹고 살만’ 할 텐데, 왜 디자이너가 드러나면 안된다는 건가.

-옷만 보여주고 옷으로만 평가받고 싶다. 그런 부분들을 직원들이나 주변에서 갑갑하게 생각한다. 대중과의 소통이 안된다면서 말이다. 어제도 회식하는데 MD가 한시간을 꾸짖었다. 방송에도 나가고 디자이너를 알리면 세일즈에 도움이 될 거라고. 하지만 재희신의 철학에 맞지 않는다. 

재희신은 신재희 형제가 공동으로 대표를 맡고 있다. 형이 주로 쓰고 있다는 사장실은 온통 검은색 암막 커튼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재희신의 고집스러운 디자인을 닮았다.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재희신의 브랜드 철학이 뭔가.

-서양의 옷이 인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면, 동양의 옷은 내면의 가치를 보여준다. 나는 동양적인 정신을 담은 옷을 하고 싶다. 또 100%의 완성도가 아니라 그 이상이 돼야 옷을 팔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국내 유통을 2년 넘게 안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 스스로 완성도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에 유통망이 없다. 재희신의 옷을 살래야 살 수 없다는 건데.

-그동안은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에서만 브랜드를 전개해왔다. 현재 ‘로메오(Romeoㆍ파리 유명 쇼룸)’를 통해 유통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이번 시즌부터는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 갤러리아백화점에서도 2년 정도 전개를 했지만, 위탁 판매의 한계도 있었고, 편집숍에 소량 아이템이 들어가는 것도 독이 되는 것 같아서 현재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쇼룸을 통해 멀티숍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는데, 태생적인 한계를 갖고 간다. 쇼룸들이 우리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를 메이저 브랜드 사이에 끼워 놓고 감초 역할을 하게 한다. 이 때문에 ‘튀어 보이는’ 과장된(Extreme) 옷을 만들어야 하는 압박이 생긴다. 결국 브랜드가 망가지게 되더라. 

2015 FW 재희신. [사진제공=서울패션위크]

▶그 흔한 세컨드 브랜드도 없다.

그래서 세일즈 돌파구로 여성복 ‘32디쳄브레’를 런칭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가격 격차 때문에 세컨드 브랜드를 바로 전개한다. 나는 그 전략 자체에 회의적이다. 메인 브랜드도 제대로 정착이 안된 상태에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참고 있다. 고집불통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럼 재희신의 옷은 도대체 어디서 살 수 있나.

-일단 지금은 온라인몰에서 주문 가능하다. 단 맞춤 제작이다. 표준 사이즈를 보내주면 제작해서 2주 이내로 보내준다. 앞으로는 갤러리 같은 공간 통해서 사전주문을 받는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

▶동대문 쇼룸, 신선하다

-동대문에 쇼룸을 낸 건 1년 반 정도 됐는데 옷을 제작하는데 관련된 인프라가 이곳에 다 집중돼 있어 옮겼다. 게다가 이곳을 찾는 손님들 중 중국인이 90% 이상이다. 동대문 상권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올해 7월쯤 다시 강남 도산공원 근처로 옮길 생각이다. 패션 제조 이외의 모든 인프라가 다 강남에 있으니 어쩔 수 없다.

▶향후 계획은.

-중국시장을 집중할 생각이다. 올해 안으로 단독매장이나 쇼룸 형태로 온전하게 세일즈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중국은 유명하지 않아도 가치 있는 브랜드라면 얼마든지 소비가 일어나는 곳이다. 에르메스보다 비싸다고 해도 말이다. 중국은 자기 생각이 분명한 아트스트들이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져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온전하게 하면서 세일즈도 할 수 있는 곳, 재희신을 지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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