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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나라 우체통’엔 주인없는 편지만…
타일로 꾸민 170m 기억의 벽엔
칸칸이 추모객 사연으로 가득

세월호 ‘이후’로 시간 돌리려면
진상규명 등 합리적 해결이 과제



지난 주말 찾은 진도 팽목항. 흩날리는 꽃비 사이로 ‘벌써 1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펄럭이며 걷는 학생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고흥에서 온 고교 2학년 박선아(18) 양은 방파제 끝에 위치한 ‘하늘나라 우체통’을 보곤 “이런게 있는 줄 알았으면 편지라도 써올 걸”이라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희생자들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전국에서 보내 온 그림 타일로 꾸민 170미터 ‘기억의 벽’은 추모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그림 타일 하나 하나에 담긴 사연을 추모객들은 눈으로, 가슴으로 담았다.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바다에서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여객선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오는 16일로 1년을 맞는다. 1년이 지났지만 이곳엔 아직도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의 부끄러움은 정오의 그림자처럼 길다…세월호 1주기 팽목항은 지금 
땅거미 진 팽목항 방파제, 노란 리본 형상의 추모 조형물과 기다림의 등대가 빛나고 있다.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바다에서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여객선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배두헌 기자/badhoney@heraldcorp.com

경남 김해에서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김병훈(47) 씨는 “우리 세대의 잘못된 점을 아이들이 답습하지 않고, 다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 차원에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역사는 2014년 4월 16일 이전과 이후 시대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월호 참사는 우리사회의 큰 족적을 남겼다.

무엇보다 많은 어린 학생들의 꽃다운 목숨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일순간 사그라졌다는 사실은 1년이 지났어도 여전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고 이후 1년은 한게 뭐가 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실망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제는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 나온다.

진실로 세월호를 영원히 기억하는 길은 슬픔과 애도로 그치는 ‘과거의 세월호’를 넘어 뼈절인 교훈을 바탕으로 한 ‘미래의 세월호’로 눈을 돌리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선 우리 사회에 깊이 스며든 절망을 미래 동력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시급하고, 우선 코앞으로 다가온 진상규명 및 선체인양 등의 사회적 갈등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1차 시험대가 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김석호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우리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 시대가 나뉘게 됐다”며 “이제 1년이 지났는데 앞으로 2~3년을 더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따라 10~20년의 미래 우리사회의 모습도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팽목항 기다림의 등대 앞에서 추모객들이 등불을 날리고 있다. 이세진 기자/jinlee@heraldcorp.com

지난 1년간 우리 사회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검찰과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벌여 참사의 직접 원인을 규명하고 범법자들을 무더기로 단죄했다. 비슷한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세월호 이후 무능함으로 비난받은 해경이 해체되고 그 기능이 국민안전처로 흡수되는 등 정부의 재난구조 시스템에 대한 대수술도 이뤄졌다.

그러나 원인 조사가 미흡했다는 불만이 유족들을 중심으로 끊이지 않고 있는게 사실이다.

특히 세월호 사고 이후에도 판교 공연장 환풍구 추락, 장성 요양병원 화재, 의정부 아파트 화재 등 대형 인명사고 잇따라 안전한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길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는 지적이다.

수학여행 주의령이 내려질 정도로 학생 안전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학교 사고는 오히려 더 늘고 있다.

물질보상 이전에 아직 치유되지 못한 세월호 피해자들의 아픔을 더 보듬어야 하는 과제도 남아있다.

임운택 계명대 교수(사회학)는 “세월호 문제는 하루빨리 정치적 이해관계의 틀에서 벗어나 빠른 진상규명과 인양조치와 더불어 사회갈등을 풀어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재난을 집단적 각성으로 극복했던 네덜란드의 사례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1953년 북해 대홍수로 천문학적 피해를 봤던 네덜란드는 그후 무려 45년간 50~70억달러를 투입, 홍수 관리 시스템인 ‘델타 프로젝트’를 완성해냈다.
세월호발(發) 무기력증이 나라 경기의 발목을 잡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세월호 이후 경기의 활기 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측면이 있다”며 “세월호가 사회 전반의 무기력으로 이어져선 안된다”고 말했다.

진도=서경원ㆍ양영경ㆍ이세진 기자/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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