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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할 수 없는 무게의 짐을 진 가족 이야기…연극 ‘소년B가 사는 집’
[헤럴드경제=신수정 기자]대환은 14살 때 친구를 죽인 죄로 6년 간 감옥에 갔다왔다. 카센터를 운영하는 아빠는 대환에게 자동차 정비일을 가르쳐 세상으로 내보내려 애쓴다. 하지만 엄마는 대환이 혼자 집밖으로 나가면 안절부절 못한다.

전화벨이나 초인종 소리만 들어도 흠칫 놀라는 대환의 가족. 대환의 누나 윤아는 흰머리를 염색하지 않겠다는 엄마에게 “누가 엄마 염색하는 것 갖고도 뭐라 그래?”라고 묻는다.

[사진제공=국립극단]

연극 ‘소년B가 사는 집’은 살인 피해자 가족이 아닌 가해자 가족의 이야기다. 지난해 2월 초연 당시 가해자 가족의 아픔을 덤덤하게 그려 관객들을 울렸다.

올해는 국립극단 ‘젊은연출가전’으로 오는 14일부터 26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재공연한다. 20대 후반의 여성 작가 이보람과 30대 후반의 여성 연출가 김수희가 호흡을 맞췄다.

지난 7일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연습실에서 만난 김수희 연출은 “가해자를 끌어안고 사는 가족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무게의 짐을 지고 있다”며 “이들에 대한 연민이 관객들을 눈물짓게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배우들은 처음으로 무대 연습에 나섰다. 아빠역의 이호재, 엄마역의 강애심은 명배우들답게 밥상 앞에서 툭툭 던지는 대사 하나하나도 예사롭지 않았다. 동네에 새로 이사온 새댁은 넉살좋게 찾아와 6년 전 살인사건을 알고 있는지 묻는다.

“나는 어떤 시선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지 묻고 있는 연극이예요. 관객을 질타하거나 감동을 주려고 밀어붙이지 않아요. 그저 등장인물들에게 공감하면서 볼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이 작품에는 농담도, 굵직한 사건도 없다. 자칫 불편하고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김 연출은 가능하면 배경음악마저 걷어냈다. 배우들의 눈물도 자제하게 했다. 50년 경력의 노장 이호재는 “내 대사를 더 줄여도 될 것 같다”고 맞장구를 쳤다.

“‘떫은 감이 시간이 지나면 더 달아져’와 같이 이미 대사에 많은 것이 담겨있어요. 그래서 연출은 덜어내려고 애를 썼죠. 음악이 깔리는 장면도 들릴 듯 말 듯 할 정도예요. 하지만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호흡이 굉장히 좋아서 재미와 감동을 느끼실 거예요”

김 연출이 화려한 연출을 시도한 장면은 딱 하나다. 대환과 대환이 범죄를 저질렀을 당시인 14세 소년B가 마주하는 장면이다. 소년B가 무대 이곳저곳을 누빌 때 빨간색, 파란색 등 강렬한 조명이 쏟아진다.

“소년B는 대환 마음 속의 소리, 대환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14살 소년 등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요. 올해는 소년B역의 강기둥 배우에게 좀더 14살 소년다운 모습을 보여달라고 주문했죠”

김 연출은 지난해 연극 ‘옆에 서다’에 이어 2년 연속 국립극단 작업에 참여 중이다. 그는 연출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라는 혜화동1번지 5기 출신이다.

1기 기국서ㆍ이윤택, 2기 김광보ㆍ박근형ㆍ최용훈, 3기 양정웅, 4기 김재엽 등 쟁쟁한 연출들이 혜화동1번지를 거쳤다. 5기들은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국가보안법 문제 등을 주제로 활발하게 작품을 쏟아냈다.

“이전에는 재미없고 식상한 얘기는 하지말자고 했었죠. 혜화동1번지 활동을 하면서 듣기 싫은 얘기도 연출이 재미있게 만들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듣기 싫은 얘기를 듣기 싫게 만드니까 사람들이 연극을 안보는 거죠”

[사진제공=국립극단]

김 연출은 초등학교 때부터 연극반에 발을 담궜다. 고등학교 때도 연극반 활동을 했지만 성적에 맞춰 경영학과를 지원했다. 연극 동아리에 빠져살다 겨우 졸업했지만 운좋게 취직도 했다.

“예쁜 정장입고 출근하면서 평범하게 사는 삶을 동경한 적도 있었죠. 그런데 제가 또 직장인 연극반을 하고 있더라고요. 회사를 6개월 만에 그만뒀죠”

대학로에서 조연출 생활을 하다 2007년 여성연출가전에서 ‘어쩌자고 서로 만나 알게 되었는가’로 처음 데뷔했다.

“학연도 없는 저를 누가 연출하라고 시켜주겠어요. 제 돈을 들여서 준비했어요. 공연을 두달 남기고 작가가 싸이월드 쪽지만 남긴채 사라졌어요. 부담스러워서 글을 못 쓰겠다고요”

결국 김 연출이 직접 극본을 쓸 수밖에 없었다.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 틈틈이 극작도 하고 있다.

“실패도 겪어보니 ‘이런 작품 만들겠다’, ‘관객들이 이런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하고 무모한지 알게 됐어요. 제 작품을 1000명이 보러 온다면 1000명의 두시간을 제가 뺏어온 것이잖아요. 내 얘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과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을 하고 싶어요”

/ss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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