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마산 창동, ‘첫사랑 같은’ 그 곳의 변신
[마산 창동=글 ㆍ사진 이윤미 기자]‘첫 사랑 같은 곳’

마산 사람들은 창동을 이렇게 부른다. 고향을 떠나 일상에 묻혀 지내다가 문득 떠오르면 마음이 아득해지고 간절해지는 곳, 그 곳이 창동이다. 마산을 떠나지 않고 사는 이들도 가끔은 그렇게 오랜 세월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창동의 추억의 장소를 찾아 헛헛한 마음을 채운다. ‘빠다 크림’ 잔뜩 든 식빵과 꿀빵으로 입이 너무 달달하다 싶어 부림시장 6.25 떡볶이로 속을 매콤하게 다스리고 나면 왠지 든든해진다. 창동은 오래전 ‘3당’으로 유명했다. 빵집 고려당과 금은보석을 취급하는 황금당, 그리고 마산의 가장 오래고 큰 서점 학문당이다. 학문당은 마산 지역 학생이라면 책을 사러 한번쯤 들렸던 곳이지만 ‘약속 1번지’로도 유명했던 이 곳에서 수많은 선남선녀들은 제 짝이 오길 기다렸다가 길 건너편 시민극장으로 향했다.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낮이나 밤이나 사람에 치일 정도로 붐볐던 곳이 창동이다. 창동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세곡을 거둬 보관하던 조창(漕倉)이 있던 곳이란 데서 유래했다. 조선 영조 36년(1760년)에 정부 세곡을 보관할 8동 53칸의 마산창이 설치됐다. 마산창에는 조곡을 운반할 조선 20여척과 조군 960여명이 정원으로 배치됐는데 조창 주변으로 인가와 주막들이 들어서면서 흥청댔다. 조운선은 마산에서 출발해 신안 앞바다, 안면도, 김포를 거쳐 마포로 들어갔다.

지역경제가 무너지면서 셔터가 내려졌던 창동 상가의 음습한 골목이 예쁘장한 예술촌 길로 거듭나고 있다. 건물은 새로 억지로 짓는 게 아니라 기존의 건물을 주변과 조화롭게 다시 꾸미는 식으로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 입소문이 나면서 창동예술촌에는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도 이어어지고 있다.

▶창동의 새 이름, 예술창작촌=창동의 전성기를 꼽자면, 마산경제의 두 축을 이룬 한일합섬과 마산수출자유지역으로 이름을 날린 60,70년대다. 1964년 설립된 한일합섬은 공장 터 닦기를 할 때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내려와 챙겼을 정도로 경제개발계획의 상징적 존재였다. 한일합섬은 마산 공장을 기반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며 1973년 국내 단일기업으로는 최초로 1억불 수출탑을 수상했을 정도로 날았다. 마산수출자유지역은 1970년대 수출위주 정책의 출입문 역할을 하며 돈이 넘쳐나는 소비도시로 자리매김시켰다. 당시 마산은 국내 7대 도시에 꼽혔다.

창동의 해설사 김경년씨는 “이 시기 마산은 양복점, 양장점이 줄 지었고 다방 천지, 극장 천국이었다”며 “지금도 60,70대 멋쟁이 노인이 많은 것은 그런 연유”라고 설명했다.


부림시장은 마산 상권의 규모를 지금도 넉넉히 보여준다. 한복, 포목 도매시장으로 유명한 부림시장은 인근 고성, 함안 모두 이곳에서 장을 봐갔다. 지금도 명성을 지키고 있는 오래된 상점들이 많다. 상권이 무너지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노동집약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져 기업들이 빠져나가면서다. 마산소비 경제의 중심 부림시장도 문을 닫는 상가들이 속속 늘어났다. 시장골목안 상점들은 셔터문을 내리고 오래 방치돼 슬럼화됐다. 시민들은 컴컴하고 지저분한 시장 골목길을 피했다. 이런 버려진 빈 점포를 활용하자는 프로젝트가 가동되기 시작한 건 2010년. 우선 시장 내 80개 버려진 점포를 부림시장 창작공예촌으로 깔끔하게 리모델링했다. 도자기, 섬유, 한지, 수제인형, 생활 공예 26명의 공예작가들이 입점해 있다. 이곳은 지금 작가들이 작업하고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작업공간 겸 학습체험 공간이자, 만든 작품을 파는 곳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공예촌이 주목을 받으면서 시장도 덩달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에꼴 드 창동예술촌= 창동예술촌은 옛 조창터로부터 3.15 운동이 촉발된 거리, 시민극장 일대를 중심으로 마산원도심 재생사업에 따라 추억과 스토리, 예술현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도심밀착형 예술촌이다. 창동예술촌은 마산예술 흔적골목, 에꼴드 창동골목, 문신 예술골목 등 세가지 테마로 구성돼 있는데, 골목골목 공방과 전시장, 전통 식당, 카페, 쉼터가 공존하고 있어 동선이 자연스럽고 오감이 즐겁다. 갈수록 확장되는 이 예술 골목은 지금도 계속 진화중이다. 부림시장에서 연결된 창동예술촌의 문신예술 골목은 지금 ‘3.15꽃골목’으로 불린다. 단추와 실, 옷 부속품을 파는 오성사, 강정아 옷리폼점, 박정원 초크아트 등 영화 세트장 같은 예쁘장한 가게마다 앙증맞은 꽃바구니들이 담벼락에 매달려 눈길을 끈다, 양철 화분엔 꽃을 기증한 주인의 이름표들이 붙어있다. 마산 3.15 의거를 맞이해 경남도 약사회 회원과 시민 315명이 참여해 자발적으로 조성한 창동예술촌 문신예술 꽃골목이다. 꽃골목은 옛 시민극장의 붉은 벽돌 뒷담벼락에서 끝난다.


문신예술 골목에는 문신예술기념관 및 토우를 만들고 전시하는 개미 이야기 갤러리 하모하모, 100여대의 카메라가 전시된 사진박물관인 마산 르네상스 포토갤러리, 청년작가 활동공간인 스페이스 1326 등 26개 전시 및 체험 예술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마산예술 흔적골목은 창동예술촌아트센터를 비롯, 보리 도예공방, 고서점 꿀단지고서방, 희귀만화를 볼 수 있는 얄개만화방 등 발길을 끄는 수십개의 공간이 골목안에 줄지어 있다. 에꼴드 창동 골목에는 창작 화실들이 밀집돼 있다. 창동예술촌 골목 골목에는 역사적인 장소들도 적지않다. 1919년 마산에 한국인이 최초로 설립한 주식회사인 원동무역 주식회사터, 1928년 마산의 대표양조장 낙동양조장터, 1950년부터 형성된 요정골목의 대표 요정이었던 춘추원 등 역사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1979년 10월18일 유신독재에 항거해 부마민주항쟁을 일으킨 발원지, 1951년에 설립된 천주교 남성동 성당 등도 거닐어 볼 만하다.


이 주변에는 또 40년 이상 대를 이어온 상점들이 즐비하다. 70년된 대표 마산 한정식집인 불로식당은 3대째 이어져오고 잇으며 시계수리전문점 일신당은 60여년 세월을 지키고 있다. 1938년에 문을 연 귀금속집 황금당은 마산 변두리 사람들까지 끌어모아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났다 한다. 개장하자 마자 순식간에 20명, 그 중 절반이 양가 친척들로 구성된 참관단, 귀금속을 맞춘다는 것은 중대사였기 때문이다. 복희집은 창동이 번화하던 시절, 떡볶이, 단팥죽, 팥빙수로 유명한 추억이 담긴 장소. 창동 거리에 음악을 선사해온 길벗레코드 가게, 100여년째 복요리로 유명한 남성식당, 지방에서는 드물게 멕시코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멕시코‘도 유명하다. 


창동예술촌 봉중 거리를 마주보고 있는 동네가 오동동이다. “오동추야 달이 밝아 오동동이냐 / 동동주 술타령이 오동동이냐 아니요 아니요 / 궂은비 오는 밤 낙수물 소리 오동동 오동동 그침이 없어 / 독수공방 타는 간장 오동동이요”라는 노래가 이 오동동에서 나온 노래다. 오동동에는 마산의 유명한 통술골목, 요정골목, 아구찜 골목이 모여 있다. 통술은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각종 회와 생선요리가 젓가락을 놓아도 계속 나오는게 특징이다. 


/meele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