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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 13. 오염된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는 까닭…
[HOOC=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새해 첫날, 새벽 6시쯤 되니 눈이 번쩍 떠진다. 시끌벅적하던 호텔 야외 식당은 벌써 청소가 되어 있다. 밤늦게까지 송년회를 하던 직원들이 벌써 일어나 치워놓은 것이다. 아직 일어난 손님은 없는 듯하다. 혼자 일출을 본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태양이 떠오른다. 달라졌다고 느끼는 건 사람의 마음일 뿐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만큼 불가사의한 것도 없다.



​해가 뜨자 사람들이 하나둘 식당으로 온다. 먼저 온 사람들과 조식을 먹으며 어젯밤 즐거웠던 이야기를 나누고 가트로 나간다. 갠지즈강가와 골목마다 역시 사람이 많다. 다른 지역에서 성지순례 온 인도인들과 여행 온 외국인들이 바글바글하다. 새해 첫날의 갠지즈, 일출, 혹은 성스런 목욕은 그 어느 날보다 더욱 의미 있을 것이다.

가트를 한참 걷다가 어제 함께 했던 일본친구들을 만난다. 반갑게 인사하려 다가가니 특이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일본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갠지즈강에 들어가 있다. 내가 알기로 그들은 함께 여행을 온 것은 아니었는데 같은 숙소에서 만난 인연으로 단체로 강물에 몸을 담근다. 아예 수영하는 사람도 있고 인도인들처럼 목욕도 한다. 아니면 발이라도 적신다. 그리고 꼭 인증샷을 찍는다. 이런 현상은 바라나시에 오는 거의 모든 일본인 여행자들에게 공통이다. 오늘은 특히 새해 첫날이니 그들로선 의미가 더 클 것이다. 



화장한 시신의 재가 뿌려지는 강, 어린아이나 임산부는 그냥 수장되기도 한다는데. 인도정부도 갠지즈의 물이 더럽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화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절대 들어가지 않는 강물에 일본인들은 풍덩풍덩 빠진다. 왜 강에 들어가는가를 물으니 그건 일종의 모험이라고 대답한다. 바라나시의 일본인 여행자들에게 갠지즈강 입수는 용기의 척도가 되는 셈이다. 가트의 뱃사공은 몇 년 전 유명한 일본 여배우가 갠지즈에 들어간 후부터 계속되는 일이라고 귀띔해 준다. 한국에 와서 알았는데 일본에서 몇 년 전에 이곳 바라나시를 배경으로 한 특집극 ‘갠지즈에서 버터플라이’가 히트 쳤다고 한다. 드라마의 위력인지 배우의 카리스마인지 여하튼 갠지즈강에는 많은 인도인과 함께 일본인들이 들어가 있다.



벵갈리토라의 골목에서 가트로 나오는 길에는 항상 구두라는 뱃사공이 있다. 그는 호객을 하는 건지 친구를 찾는 건지 둘 다 원하는 건지 사람들에게 항상 말을 걸고 있다. 모든 걸 여기 가트에서 배웠겠지만 그럭저럭 영어도 하고 일본어도 잘하는 편이다. 구두라는 이름이 한국어로 신발을 의미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젊은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배웠을 한국어도 귀엽게 몇 마디 한다. 자기 배에 태웠던 여행자들 이야기도 하고, 중국인 여행자가 많아졌다며 그들이 한국인이나 일본인들보다 영어를 잘하다고 논평도 한다. 대화중에도 외국인 여행자가 지나가면 영어나 일본어로 “보트 타”라고 호객을 한다.

보트를 타도 좋지만 어차피 낮에는 시간이 많다면서 발걸음을 맞추어 걷기도 한다. 그는 유머러스하지는 않지만 착하고 성실한 사람인 것 같다. 여기 온 첫날 탔던 배의 사공은 이 사람과 같은 또래지만 말이 너무 많고 사람 눈치를 살피는 게 나에게는 별로였다. 어제 몰리나처럼 이 청년도 느낌이 괜찮다. 그와 친구가 된다. 인도 현실에서 보면 정치학교수인 몰리나와 뱃사공인 구두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조합이지만 둘 다 나의 친구가 되었다. 여행이 재미있는 백만 가지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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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의 인도는 어떨까 궁금해서 시내로 나간다. 가트는 저녁에 다시 오면 되니 릭샤를 잡아타고 대형 쇼핑몰에 간다. 가트근처 고돌리아에만 머무르다가 시내로 나가니 시골사람이 서울구경하는 기분이 된다. 그런데 쇼핑몰에는 그냥 들어갈 수가 없다. 뉴델리의 메트로처럼, 인도기차역 입구처럼 여기도 짐을 검색대에 놓고 무사히 통과되어야 들어갈 수 있다. 인도의 대테러 정책이다. 어느 정도의 위험이 있어야 이런 보안방법을 쓰게 될까 싶다. 무척 직접적이고 긴박한 위험일 것을 알지만 귀찮긴 하다.

여기 사람들은 가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들에 비하면 인도 옷을 입고 있는 내 모습은 허름한 행색이다. 층마다 각종 브랜드의 대리점이 늘어서고 최상층에 맥도날드와 영화관이 있는 풍경은 현대화된 도시 어디가나 비슷하다. 한국과 다를바 없는 흥청거림에 멀미가 난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여기 온 걸 후회하며 고돌리아로 돌아간다. 



역시 가트가 좋다. 걷다보니 벽화가 눈에 띈다. 바라나시에 오던 날 어느 여행자가 그리던 그림도 이젠 완성이 됐다. 달빛 아래 반얀트리에서 노는 아이들을 그린 이 그림이 마음에 든다. 넬슨 만델라가 사망한지 얼마 안 되어 그를 추모하며 그와 간디를 그려놓은 벽화도 있다. 함께 쓰인 글귀가 마음에 와 닿는다.

각국의 언어로 무료 공연을 알리는 낙서 뒤에서 진짜 무료 공연이 열린다. 새해라서인지 오늘은 좀 특별하다.



낮에 약속한대로 구두의 배를 찾아간다. 한국말과 일본어가 능숙한 구두의 친구 게리가 데려온 일본남자와 둘이 보트에 탄다. 그 일본인은 오늘 바라나시에 도착한 사람이다. 연말연휴 10일 동안 델리-아그라-바라나시만을 여행하는 일본사람들이 진짜 많다.

처음 보는 뿌자에 넋을 잃은 그는 연신 카메라를 누른다. 처음의 설렘과 뿌자의 신비함, 바라나시의 혼돈이 버무려진 작은 흥분이 그에게서 느껴진다. 첫 날 배에 타서 뿌자를 봤을 때 내모습이 딱 저랬을 것이다. 



강에 비친 가트가 그림처럼 아름답다. 첫날엔 이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보고 싶은 뿌자만 봤기 때문일 거다. 지금은 시야가 조금 넓어진 걸 느낀다. 일정 없이 느긋하게 즐기는 바라나시에서의 날들이 참 좋다. 여기에 오면 아무것도 안하고 가트에 앉아 갠지즈강만 바라보고 싶었다. 누굴 만난다는 변수는 계획할 수도 없었다. 혼자 있어도 이 평온과 고요가 좋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즐거움이 배가 된다. 만일 바라나시에 세번째 오게 된다면 그땐 또 다른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늦게 호텔 방에 들어가는데 식당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가쯔상과 료가 내일 아침 떠난다고 일본어 잘하는 호텔직원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나도 내일 밤 늦게 바라나시를 떠나기 때문에 이젠 모두 이별이다.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아쉬움을 나눈다. 가쯔상은 오늘 갠지즈에 들어간 동영상을 보여준다. 북해도의 선박 사업가답게 높은 곳에서 갠지즈로 다이빙하는 장면을 찍은 영상이다. 보면 볼수록 재미있다. 옆 테이블의 다른 여행자까지 합석한다. 여행자들의 저녁은 심각하지는 않다. 그 날 한 일, 가본 곳 등의 공통 관심사와 시시껄렁한 신변잡기들이 대화의 주제다. 대화가 별 얘기 아닌데도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프다. 유쾌한 밤이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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