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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없는 증언자’ 혈흔모양 50가지…사건동선 그림자처럼 역추적가능
범죄수사의 세계 <4> 핏자국은 알고 있다
낙하혈은 날카로운 칼사용 방증…둔탁한 방망이 쓰면 비산혈발생


지난 2010년 2월 경남 함안의 한 시골 마을에서 발생한 70대 노인의 ‘방앗간 살인사건’.

실마리를 찾지 못해 난항을 거듭하던 수사가 갑자기 급물살을 타게 됐던 것은 바로 용의자 운동화에 묻어 있던 핏자국이었다.

이처럼 혈흔(血痕)은 ‘말 없는 증언자’로 불릴 만큼 과학수사에 있어 결정적인 단서로 취급된다.

증거재판주의가 강화되면서 혈흔의 유무뿐 아니라 더욱 정밀한 형태 분석이 요해지는 추세다.

이른바 혈흔형태분석이란 범죄현장에 유리돼 있는 핏자국의 크기와, 모양, 분포 등을 분석해서 가해자, 피해자 간의 인과적 행위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현장을 재구성하는 기법을 가리킨다.

이광현<사진>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경위는 2008년 국내에 처음으로 혈흔형태분석이 도입된 이후로 8년째 혈흔분석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경위는 “가장 중요한 것은 혈흔의 형태를 분석할 줄 알아야 막신(mock scene·현장 재구성)을 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엔 살해 현장을 가도 막연하게 여기서 칼을 맞고 혐의가 있다는 정도만 추정만 했을 뿐이었지만 보다 과학적으로 심도깊은 수사는 하지 못했다”며 “자주 현장에 가다 보니까 혈흔 형태와 흩어진 모양만 보면 사건 당시의 동선(動線)이 눈에 그려지고, 이를 토대고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혈흔형태분석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최초 가격 위치 ▷가격 도구 ▷가격의 최소 수 ▷가해자·피해자의 움직임 ▷출혈 중 피해자의 자세 및 움직임 ▷동맥의 파열 여부 등이다. 고유명칭으로 규정된 혈흔형태만 50개나 된다.

대표적으론 낙하혈, 비산혈, 고인혈흔, 공간흔, 동반방울 등이 있다.

낙하혈은 피습 후 피가 그대로 지면에 떨어져 둥글게 퍼진 형태의 혈흔 유형이고, 비산혈은 흉기로 가격하는 과정에서 벽 등 주위 표면에 뿌려진 모양으로 핏자국이 남는 것을 말한다.

날카로운 칼을 사용하면 몸을 즉시 관통해 낙하혈이 많고, 둔탁한 야구방망이를 쓰면 비산혈이 발생한다.

고인혈흔은 말 그대로 지면에 다량의 혈액이 고여서 생성되는 것으로 사체가 현 위치에서 장기간 머물러 있다 가해자 등에 의해서 제2의 장소로 옮겨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공간흔은 눈 내린 주차장에서 차 한대를 빼면 그 공간에만 눈이 없는 것처럼 피의자가 사건 은폐에 중요한 물건이라고 판단해 이를 갖고 도주했을 경우 혈흔이 그 물건의 모양만큼 비어 있는 걸 뜻한다.

혈흔 크기로 가격 속도도 가늠할 수 있다. 빠르게 때리면 멀리 날아가면서 증발하는 원리에 따라 지름이 1.0㎜ 이하면 고속, 1.0~4.0㎜ 사이면 중속, 4.0㎜ 이상이면 저속이다. 이 경위는 “혈흔분석을 통해 사건 경위를 명확히 밝혀 피해자의 원한을 씻어주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경원 기자/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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