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돈 받아달라” 봇물…‘해결사’ 된 경찰들
강남·송파서 등 1인당 사건 담당건수 年 100건 웃돌아…치안·범죄 등 수사력 공백 초래
수사경찰 1인당 담당사건만 한해 100건

쏟아지는 ‘개인채무’ 민원에 중요범죄 ‘뒷전’


서울의 한 경찰서 경제범죄수사과에 재직 중인 이모(45) 경위는 최근 하루 2시간씩 3개월 여 고생한 1000 쪽 분량의 조서를 서랍에 넣었다. 지난 해 12월 초 A 렌트카업체 대표가 자신의 회사에서 차량을 렌트한 B 회사가 임차료를 지불하지 않은 채 기간 만료 뒤에도 차를 반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업체를 고소한 사건이었다. 이 경위는 횡령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두 업체의 진술을 엇갈렸고, 결국 이 사건은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리됐다. 이 경위는 “3개월간 두 업체로부터 수시로 전화에 시달리느라 원형탈모에 걸렸다”며 “아직도 40여 건의 사건이 남았다”고 하소연했다. 


12일 헤럴드경제가 단독 입수한 경찰 내부자료에 따르면 수사과 인력이 70명을 초과하는 전국 5개 경찰서의 1인당 사건 수는 100 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서울 강남 3구인 강남ㆍ송파ㆍ서초경찰서 수사과의 1인당 연간 사건 수는 각각 114.4 건, 106.5 건, 97 건에 달했다.

수사과 인력이 70 명을 초과하는 서울 영등포경찰서와 부산 부산진경찰서도 각각 99 건, 114.1 건으로 수사인력의 업무 과중이 심각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사건 중 상당수가 사적인 계약관계에 불과해 정작 민생치안과 직결된 중요 범죄에 수사력을 집중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서울 한 일선 경찰서의 경제범죄수사 담당자는 “돈을 빌려준 후 서로 계산법이 달라 원금 상환에 대한 의견이 다르거나, 배달음식 외상값, 만화책방 대여비를 받아달라는 등 민사적 성격의 개인간 채권ㆍ채무 문제까지 모두 경찰에 고소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수천 건의 범죄를 길게는 몇 개월에 걸쳐 수사하고도 정작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는 비율은 형사사건에 비해 턱없이 적다.

서울 A 경찰서의 경우 지난 달 형사사건 기소의견송치율은 55.2%에 달했지만 경제사건은 29.3%에 불과했다.

B 경찰서도 형사사건의 기소의견송치율은 66.1%인 반면, 경제사건은 27.2%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경제범죄수사 담당 경찰은 “한 명의 수사관이 담당하는 사건이 100 건에 달하는 경우 팀원들에게 사건을 나눠주는데 이를 경찰들은 ‘사건을 폭파한다’고 말한다”며 “인사이동 시기가 되면 사건 폭파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상원 용인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제적 문제와 관련해 비용을 청구하고 무혐의 처분이 나왔을 때는 무고죄가 될 수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며 “민간 법원의 조사력과 집행력을 높이는 한편 민간조사업을 활성화시켜 민사로 해결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응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일선 경찰이 보기에 민사사건이라고 판단되면 돌려보내는 ‘각하 재량권’을 사건접수단계에서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지혜ㆍ김진원 기자/gyelove@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