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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 셀럽의 선택!④ ‘실리콘밸리의 사무라이’,일본에 빠진 래리 엘리슨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민상식 기자]‘슈퍼리치, 연예인 등 유명인(셀럽)들에게도 워너 해브(Wanna-Have) 아이템은 있다’. 아이템은 유무형의 것을 망라한다.

세계적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Larry Ellisonㆍ70) 최고경영자(CEO)는 자수성가한 인물로 ‘실리콘밸리의 악동’으로 불린다.

일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화려한 생활, 잦은 이혼과 결혼으로 ‘여성 편력’이 심하다는 평을 듣고, 거침없는 행동으로 구설수에 자주 오른다. 엘리슨은 또 전 세계 수많은 저택과 섬 등 부동산을 무분별하게 사들인다는 비판도 받는다.

일본 옷과 게다(일본식 나무신)를 착용한 래리 앨리슨 오라클 CEO.

엘리슨은 특히 2000년 경쟁 업체의 부도덕성을 파헤치기 위해 사설탐정을 고용해 쓰레기통을 뒤지게 한 일화로 ‘실리콘밸리의 사무라이’라는 별칭도 붙었다. 사무라이라는 말이 붙은 데는 그가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이미 일본 애호가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엘리슨은 미국에 위치한 자신 소유의 일본식 맨션을 짓는 데 우리나라 돈으로 1000억원 이상을 들였다. 미국에 위치한 일본풍 주택 두 곳과 일본에 있는 주택, 일본 미술품 등을 포함하면 일본 문화에 투자한 돈만 수천억원이 넘는다.

그는 1995년 미 캘리포니아주 우드사이드에 총 면적 9300㎡의 대지를 1200만 달러(한화 약 135억원)에 매입했다. 이어 7000만달러를 들여 이 곳에 일본 전통 주택과 일본식 연못ㆍ정원을 만들었다.

미 캘리포니아주 우드사이드에 위치한 래리 엘리슨의 일본식 맨션.

이 맨션은 16세기 일본 교토의 귀족이 거주하던 전통 주택을 본뜬 모습이다. 주택 안은 실내 인공폭포와 다다미 바닥, 일본식 창호문인 쇼지(shoji)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저택을 2004년 완성하는 데까지 무려 9년이 걸렸으며, 현재 이 맨션의 가치는 1억1000만달러 정도로 평가받는다.

맨션 안에는 사무라이가 사용하던 무기와 일본 전통 미술품 등이 500점 이상 보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집안에 전시한 일본 미술품을 매주 교체해 감상한다. 엘리슨은 특히 집안에서는 일본 옷과 게다(일본식 나무신)를 착용한다.

일본 본토에도 전통 가옥을 갖고 있다. 교토에 위치한 일본 최대 선종 사찰로 꼽히는 난젠지(南禪寺) 근처에 8600만달러 가치의 전통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금문교가 보이는 위치에 4000만달러를 들여 지은 일본식 저택에도 일본식 정원ㆍ가구가 들어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일본 문화를 처음 접한 것은 1970년대 초 그의 첫 직장 암달 코퍼레이션(Amdahl Corporation)에서 근무할 때였다. 그는 당시 일본 교토로 출장을 가게 됐고 일본의 문화와 철학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일본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접한 것은) 멋진 경험이었다. 서양에서는 얻을 수 없는 문화적 통찰력을 배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그가 일본 문화에 더욱 심취한 데는 한 인물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일본 에도 시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다.

엘리슨은 여러 인터뷰에서 “일생 60여차례의 결투에서 단 한번도 져본적이 없는 검술가이자 서화(書畵)에도 능했던 예술가였던 무사시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래리 엘리슨이 보유한 요트 무사시(Musashi).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의 이름을 딴 것이다.

무사시에 대한 관심은 그가 보유한 요트 이름에서도 드러난다. 요트광인 엘리슨이 소유하고 있는 288피트 길이의 요트의 이름은 ‘무사시(Musashi)’다. 그는 또 무사시에 대한 미술품 등도 대거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래리 엘리슨은 미국 경제계에서 가장 성공한 유대계 사업가 중 한 명이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엘리슨의 개인 보유 자산은 540억 달러로 평가된다.

래리 엘리슨 [사진=게티이미지]

엘리슨의 어린 시절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다. 1944년 뉴욕에서 태어났을 당시 그의 모친은 19세의 미혼모였다. 그는 생후 9개월때 먼 친척 집에 입양됐다.

일리노이대학을 중퇴한 엘리슨은 1970년대 중반 암펙스라는 데이터베이스 회사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그는 훗날 창업 동지가 된 에드 오츠와 로버트 마이너를 만났다.

1977년 엘리슨은 이들과 함께 1200달러로 오라클의 전신인 ‘시스템개발연구소(SDL)’를 창업했다가 다음해 회사 이름을 ‘관계형 소프트웨어(RSI)’로 바꿨다. 당시 미국 국방부에서 발주받은 첫 프로젝트는 ‘오라클(Oracle)’이었다. 신의 계시란 뜻이다.

이어 1983년에는 오라클3와 4를 내놓은 뒤 회사 이름을 아예 오라클로 변경했다.

이후 오라클은 승승장구해 기업용 데이터베이스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히면서 세계적인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ms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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