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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난과학] 우주서 퍼지는 선율…바흐와 보이저1호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1977년 9월 5일 지구를 출발한 보이저 1호는 현재 목성과 토성, 천왕성과 해왕성을 거쳐 태양계 가족의 품을 벗어난 어느 별과 별 사이에 있습니다. ‘인터스텔라(성간우주)’의 영역입니다. 한 마디로 보이저 1호는 인류가 만든 우주선 가운데 가장 먼 곳에서 도달한 탐사선이죠.

그런데 보이저 1호에는 90분 분량의 음악 트랙이 담긴 ‘황금레코드’(Golden Record)가 실려있습니다. 외계 생명체와 만날 경우를 대비한 비장의 카드입니다. 태양계 너머에서 어느 외계 문명이 보이저 1호를 거둔다면, 서정적인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선율이 생명을 머금고 우주에서 울려 퍼질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황금레코드에는 27개의 트랙이 담겼습니다. 이 가운데 무려 7곡이 클래식 음악입니다.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1악장을 포함해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3번 중 가보트와 론도,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2권 중 1번 프렐루드와 푸가가 수록돼 있죠. 

성간공간에 있는 보이저 1호와 지름 30cm의 황금레코드(NASA)

또 우리 귀에 익숙한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과 함께 현악 4중주 13번 작품 130,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중 난이도가 높기로 정평이 나있는 밤의 여왕 ‘아리아’,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중 ‘희생의 춤’도 실려있습니다.

7곡의 클래식 음악은 오케스트라, 실내악, 성악 등 장르별로 두루 안배돼 있지만 따지고 보면 바흐의 음악이 무려 3곡이나 됩니다. 음악의 어머니로 꼽히는 헨델이나 낭만주의 음악의 거장인 쇼팽의 작품이 단 1곡도 실리지 않은 대신, 바흐의 작품이 다소 편애(?)된 점이 흥미롭습니다. 레코드에 실릴 음악을 선별하는 작업은 주로 미국의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1934~1996) 박사가 맡았었다고 하니 그의 선택을 믿어야겠지만요.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탐사선에 인류가 사랑한 음악이 담겨 있다는 건 그만큼 음악이 가진 힘이 위대하다는 반증일 겁니다. 황금레코드에는 클래식 말고도 아프리카의 민속음악부터 20세기 미국의 락 음악까지 나라와 시대를 망라하는 다양한 음악이 실려있거든요. 특히 1920년대 전설의 블루스맨으로 꼽히는 블라인드 윌리 존슨의 ‘Dark Was the Night’와 재즈의 거장 루이 암스트롱의 명곡으로 꼽히는 ‘Melancholy Blues’이 수록된 점이 황금레코드의 특징입니다.

1990년 밸런타인데이에 60억km 떨어진 명왕성 궤도에서 보이저 1호가 찍은 지구 사진. 동그라미 속 한 점 티끌이 70억 인류가 사는 우리 지구다. (NASA)

그동안 보이저 1호는 지구는 물론이고 금성, 목성, 토성, 해왕성 사진까지 찍어보냈습니다. 38년 결산서를 보면 인류가 보이저에게 준 것보다 보이저가 인류에게 준 것이 더 많습니다. 이 중에서도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이라고 명명한 지구 사진이 가장 인상적입니다. 거대한 빛 무리 속에 하나의 점으로 숨어 있는 지구의 모습입니다. 그 점 안에서 이전투구를 벌이는 70억이 넘는 인간들은 얼마나 미세한 먼지일까요.

하지만 절망할 것도 없습니다. 인간의 의식이 그 광대한 우주를 품고 있으니, 인간이 하나 스러지면 우주 하나가 사라진다는 논리도 맞습니다. 만일 외계 문명이 태양계 너머에서 언젠가 보이저 1호와 마주친다면, 황금레코드에 수록된 음악에서 인간이라는 우주에 대한 한없는 경외심을 품을지도 모를 일이고요.

물론 보이저 1호와 외계 문명과의 조우가 쉽진 않을 겁니다. 우주라는 드넓은 바다에서 이 탐사선은 그저 티끌과 같은 존재일테니까요. 어느 과학자는 보이저 1호가 다른 문명을 만나보기도 전에 인류가 이 탐사선을 다시 수거해갈 것이라고도 주장합니다.

하지만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주의 ‘바다’에 이 ‘병’을 띄워 보내는 것은 지구라는 이 행성에게 주는 희망”이라고 말입니다. 희망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입니다. 보이저 1호는 어둡고 차가운 우주를 무한히 여행하는 우리 인류의 한 가닥 희망이고 길인 셈입니다.


(*) 보이저 1호에는 지구사진 118장과 개 짖는 소리와 고래의 음성 등 온갖 지구의 소리, 한국말 ‘안녕하세요’를 포함한 55개국의 인사말, 사랑에 빠진 젊은 여성의 뇌파, 유엔 사무총장의 인사 등이 녹음된 축음기판 등이 실려있습니다. 2025년쯤에는 연료가 바닥나 지구와 연락이 두절될 것으로 분석되는데, 전력이 차단돼도 보이저 1호는 태양계 바깥을 관성에 의해 하염없이, 그리고 고요히 날아갈 것입니다.


(*) 황금레코드에 실린 음악 가운데 하나.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2권 중 제1곡 전주곡과 푸가 다 장조. 피아노 글렌 굴드. 4:48




(*) 황금레코드에 실린 음악 가운데 하나. 바흐,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제3번 마 장조 가운데 <가보트와 론도>, 아르튀르 그루미오 연주. 2:55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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