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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탈리아의 조각 정원을 거닐다, 서울 부암동에서…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나는 피노티의 조각들을 볼 때마다 과연 누가 이보다 뛰어나게 대리석을 다듬어 연마하고 재료 자체의 논리와 요구에 따라 크기를 조절하고 비율을 맞출 수 있을까 묻곤 한다.”-안토니오 파올루치(Antonio Paolucci) 바티칸 박물관장-

“나는 이 작품들을 바라보면서, 꿈에서 경험하는 이상한 종류의 황홀감에 압도되는 기분을 느낀다.”-미술평론가 호세 피에르(Jose Pierre)-

체르노빌 이후(1986-87)와 제노의 긴 밤들(1988). [사진제공=서울미술관]

이탈리아 조각의 거장 노벨로 피노티(Novello Finottiㆍ76)에게 보내는 찬사다. 현대 조각계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 피노티의 회고전이 28일부터 부암동 서울미술관에서 열린다. 국내에서 갖는 첫 개인전인데, 그의 60년 전 화업을 돌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 38여점이 미술관 전관을 채웠다. 

침묵 이후, 브론즈, 97×237×99㎝, 1972 [사진=김아미 기자/@heraldcorp.com]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20세기 격동의 현대사와 함께 해 온 그의 독창적 예술세계는 이탈리아 현대 조형예술의 소역사를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966년과 198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이탈리아 대표 작가로 참가하고 1986년에는 만투아 궁전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산타 구스티나 성당, 성 베드로 대성당 등의 제단과 동상에도 그의 손길이 닿았다. 한국과는 2004년 부산 비엔날레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갖는 이탈리아 조각가 노벨로 피노티 [사진=김아미 기자/@heraldcorp.com]

전시 타이틀은 ‘본 조르노(Buon giorno)’. ‘안녕하세요’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다. 이탈리아 거장이 보내는 반가운 인삿말과 함께, 부암동 미술관은 마치 이탈리아 조각공원을 거니는 듯한 예술적 경험을 선사한다. 

야누비스의 습작2 (1992) [사진제공=서울미술관]

▶탄생과 삶, 죽음과 환생에 대한 이야기=그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인간의 탄생과 삶, 죽음과 환생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특히 2차 세계대전으로 아버지를 잃은 개인적 경험이 그의 1960년대 초기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제(1965)’나 ‘침묵 이후(1972)’ 같은 작품에는 팔, 다리, 가슴 등 절단된 여성의 신체가 등장한다. 전쟁의 폐허로 고통받는 인간의 형상이 날카로운 프레임 안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다.

신부(1997)와 내버려두세요(2002). [사진제공=서울미술관]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이후에는 현대인의 참혹하고 비극적인 현실을 반영한 작품들도 등장한다. ‘체르노빌 이후(1986-87)’는 거꾸로 솟은 채 고통스럽게 뒤틀린 인간의 몸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피노티는 죽음과 환생이라는 동양의 윤회사상에도 영향을 받았다. 잘린 다리 조각들을 병치한 ‘해부학적 걸음(1968-69)’과 어린아이가 모래무덤 놀이를 하는 모습을 거북이의 꿈틀거림으로 형상화한 ‘환생(2010)’은 자연으로 회귀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성찰이 담긴 작품이다.

▶인간, 그리고 사랑=현대사의 비극적인 순간들을 인간의 분절된 신체로 표현했던 작가는 50대 이후부터 딸과 손주 등 가족에 대한 사랑을 통해 치유의 길로 접어든다. ‘저를 간지럼 태우지 마세요(1990-94)’는 작가의 딸 페데리카를 생각하며 만든 작품으로, 발바닥을 포갠 채 곤히 잠들어 있는 딸의 모습을 추상적으로 담은 작품이다.

피노티의 가족 사랑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소식(2011)’이다. 임신한 여성의 배 밖으로 복중 태아의 작은 발이 볼록 튀어나온 모습을 한 이 조각은 며느리가 임신 소식을 알리기 4개월 전부터 구상했다고 한다. 작가는 “생명에 대한 기대감이 예언을 가능케 했다”고 말했다. 

소식(2011) [사진제공=서울미술관]

피노티는 과감한 생략으로 추상과 구상을 넘나든다. 이는 ‘내버려두세요(2002)’라는 작품에서 절정을 이룬다. 매끈한 다리를 꼬고 있는 여성의 한쪽 팔이 입술을 들고 있는 형상의 이 조각은 얼굴도 몸통도 없지만 관능미가 넘쳐 흐른다.

피노티는 또 대리석과 청동과 같은 다양한 재료를 고무 주무르듯 연마했다. 그는 이 딱딱한 재료들로 주름진 천, 베개와 같은 형상을 만들어 마치 잠을 자며 꿈에서 본 듯한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를 물었다.

“내가 관객에게 선사하는 것은 마법이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마법.”

전시는 5월 17일까지.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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