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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경제학의 모색 ’시민경제학‘vs ’신성한 경제학‘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글로벌금융위기 이후 학계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대안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고민과 사회구조 변화에 주목해왔다. 학문의 영역을 넘나든 다양한 모색의 결과는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리면서 자본주의의 새로운 방향을 얘기해오고 있다. 협동조합 경제학의 대가 스테파노 자마니 이탈리아 볼로냐대 교수와 루이지노 브루니 밀라노 비코카대 교수가 공저한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원제:Economia Civille)과 천재 통합사상가로 불리는 찰스 아이젠스타인 미 고다드대 교수가 펴낸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원제:Sacred Economics)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사회의 경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실업률의 증가, 불평등의 심화 등 자본주의 독소는 사회의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난제를 해결하려는 지혜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제시되며 암중모색기를 지나고 있다.

두 저자가 제시하는 ’시민경제학‘의 용어는 새롭지만 개념은 낯설지 않다. 공동선과 시민의 덕성, 공공의 행복을 바탕으로 한 시민경제 개념은 역사적으로 흥망성쇠를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는 산업화와 함께 등장한, 행복과 효용을 동일시하는 벤담의 공리주의의 득세로 그동안 공공행복은 개인의 효용과 선호의 뒷전으로 밀렸다.

저자에 따르면 시민경제 개념은 시장을 중심으로 한 이익추구의 주류경제학과는 전통과 선을 달리한다. 시민경제학은 인간의 사회성과 상호성을 경제생활의 중심요소로 보고 개개인의 이익추구와 사회성의 작동이 경제활동 안에서 아무런 문제없이 양립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시민경제학은 성장이냐 분배냐의 이분법도 넘어선다. 성장을 통한 소득창출이 일어나고 그 다음에 국가가 사회적 역할을 맡아 부의 재분배를 이루는 종래 경제시스템과 달리 시민경제에서는 성장과 분배가 하나의 통합된 경제 행위안에서 이뤄진다. 경제행위는 사회 안에서 더불어 사는 시민의 손을 통해 벌어지는, 그 자체로 사회적 행위가 된다.

저자는 시민경제의 사상적 기반으로 시민 인본주의를 제시하며 이 사상의 황금기로 15세기 초반, 이탈리아의 토스카나를 든다. 자유가 흘러넘치는 도시의 생활,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아퀴나스, 아우구스티누스 등 교부철학까지 면면히 이어 내려온 ‘시민덕성’의 강조, 자치와 자율의 공화주의 정치 풍토는 시민 인본주의의 산물로 얘기된다.

저자가 시민경제의 모델로 제시한 흥미로운 대상은 카톨릭 수도원의 공동체다. 공동선의 원칙 아래서 수도사는 가난한 이들을 돕고 이들에게 돈을 빌려줄 의무가 있었다. 이를 위해 수도원이 토지를 보유하는 것은 사유재산의 윤리적 정당성을 가졌다. 얼마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유재산은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한에 있어서 정당하다”고 한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자마니와 브루니의 시민경제의 관점이 최근 주목을 받는 건 저성장 고실업의 현실과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국가의 한계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두 저자는 생산성의 증가로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인력을 소비의 증가로 흡수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민간부문에서 흘러나온 노동력이 사적 시장이 관심을 갖지 않는 재화, 즉 관계재와 가치재를 생산하는 일로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길을 내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 복지는 국가가 베푸는 자선이어서는 안된다며 공공의 행복은 공동체가 자율적으로 정하고 생산해서 나누는 시민복지를 통해서만 증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시민경제 조직은 국가 복지정책에서 적극적인 파트너로 기능하게 된다.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저서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는 단지 시스템의 변화가 아니라 삶의 방식, 관점의 변화까지 포괄하는 큰 그림을 그려보인다. 저자는 고대 선물경제부터 자본주의 이후까지의 화폐의 역사를 추적해 인류의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교환방식은 선물이었음을 밝혀내며, 속된 돈, 파괴의 돈을 선물형태로서의 신성한 돈으로 복원시키는 변혁을 꿈꾼다. 전통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을 오가며 경제사상들을 꿰뚫어 독창적인 개념을 제시한 저자는 현재의 경제시스템이 야기한 익명성, 몰개성, 부의 양극화, 끝없는 성장, 생태계 파괴, 사회적 혼란 등을 분리의 경제라는 개념으로 묶어낸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공동체, 관계, 문화, 생태계, 지구의 회복이라는 재통합의 경제로의 전환이다.

저자는 끝없는 성장 신화가 무너지면서 그런 이야기를 구현하는 시스템도 무너질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새로운 이야기, 시스템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돈과 그에 따르는 새로운 경제는 급진적이다. 가령 지역경제를 보호하고 공동체를 되살리는 지역화폐, 돈을 쓰지 않고 쌓아둘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역이자 화폐, 채굴되지 않은 석유나 잡아올리지 않은 물고기 같은 공유자원을 기반으로 하는 화폐, 사회와 환경에 끼치는 손해를 가격에 반영하는 비용의 내부화, 화폐영역의 축소로 인한 경제 역성장, 개인과 개인이 직접 연결되는 P2P경제 등 돈과 경제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준다.

저자의 탐색은 수치적이기보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거기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로부터 삶의 목적에 대한 이해, 지구상에서 인간의 역할,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 나아가 자아란 무엇인가 등 그동안 당연시돼온 소유와 존재에 대한 뿌리깊은 관념들을 흔들어놓는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 단단히 붙잡고 돈의 어제와 오늘, 미래를 그려내는 아이젠스타인의 서술은 독보적이다.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스테파노 자마니, 루이지노 브루니 공저, 제현주 옮김/북돋움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찰스 아이젠스타인 지음, 정준형 옮김/김영사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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