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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세계심장학계의 기린아, 글로벌 심장학자를 놀래키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박덕우 교수


[헤럴드경제=김태열 기자]“3년전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S전자 50대 초반 임원이 우리병원 장례식장에 조문차 왔어요. 조문이 끝나고 근처 올림픽공원에서 동료들과 맥주 한잔을 했는데 갑자기 심장마비로 응급실로 실려왔죠. 심폐소생술을 약 40분정도 했는데 급성심근경색으로 결국 사망했어요. 부인과 아직 중학교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2명이 있는데 부인은 쓰러지고 아이들의 놀란 표정을 아직도 잊지못하겠어요. 
지병도 특별하게 없던 사람이 아침밥 먹고 멀쩡하게 나갔다가 사망했으니…. 가족들이 느끼는 참담함은 말로 형언할 수 없죠. 심장마비 등으로 인한 돌연사는 오랜 투병기간에 걸쳐 삶을 정리핳 시간을 주는 암보다 훨씬 더 가족에게 씻지못할 아픔을 줘서 마음이 짠해요.” 


심장질환은 암(癌)에 이어 국내 사망원인 2위로 특히 겨울철에 소리없이 다가와 생명까지 위협하는 무서운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통계청이 지난 2014년 3월에 발표한 ‘2013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주요 사망원인 1위는 암(10만명 당 146.5명 사망)이며 2위가 심장질환(10만명 당 52.5명), 3위는 뇌혈관질환으로 조사됐다.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박덕우(42) 교수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가장 많이 봐야하는 숙명을 가진 심장을 전공하는 의사이기에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40대 중반부터 돌연사 징후들이 많이 생겨요. 전조증상으로 간헐적인 흉통 등이 나타나는데 대부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각별히 조심해야합니다. 특히 여성에 비해 남성들의 발병률이 10년 정도 앞섭니다. 얼마전에는 27살 청년이 PC방에서 밤새 담배 피면서 게임을 하다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응급실로 왔어요.”

박 교수는 아직 젊은 나이지만 스텐트 중재시술을 통해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증 등 심장질환을 치료하는데 있어 세계 심장학계가 주목하는 ‘연구와 임상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의사로 정평이 나있다. 박 교수의 ‘실력’은 세계 3대 임상저널 중 ‘뉴잉글랜드저널’ 과 ‘자마(JAMA)’에 논문이 수차례 실릴 만큼 연구업적이 뛰어나다. 뉴잉글런드저널에는 제1저자로 2번, 공동저자로는 4번을 게재했다.

“혈관이 막힌 정도가 너무 심한 경우에는 ‘관상동맥우회술’을 시행하지만, 일반적으로 혈관 안으로 긴 관을 넣고 스텐트를 삽입해 좁아진 관상동맥을 넓히는 중재시술을 합니다. 이때 재발률을 줄이기 위해 스텐트 표면에 약물을 바른 ‘약물 스텐트’가 사용되는데, 20~30%에 달하던 재발률은 5%미만으로 떨어졌죠. 하지만 재발을 막기 위해 복용하는 항혈소판제는 출혈이나 외상이 발생했을 때, 지혈이 되지 않아 환자가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문제가 있었어요. 항혈소판제의 적절한 사용기간이 전 세계 심장학계의 숙제로 남아있었죠.”

5년 전 이 숙제는 박 교수에 의해 풀렸다. 2010년 박 교수가 국내에서 약물스텐트로 시술받은 환자 2300여명을 대상으로 연구해 항혈소판제의 적절한 사용기간이 1년이라는 연구결과를 제시한 것이다. 이 연구결과는 국내 의학계는 물론 전세계 심장학계를 놀라게했고 미국 의사들도 평생 논문 1편이 실리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는 뉴잉굴랜드저널에 3번째 논문이 게재되면서(전세계적으로 3편 등재는 10여명 정도) 박 교수는 일약 세계심장학계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박 교수의 연구는 전세계 심장학자들이 풀어야 할 항혈소판제 복용기간의 가이드라인이 됐고 미 식품의약품안전청(FDA)과 우리나라 식약청의 권고안도 해결된 의미있는 연구결과였다.

그렇다면 스텐트를 병변에 삽입했다고 치료가 끝난 것일까. 박 교수는 “스텐트가 재발만 하지 않는다면 병을 일으키는 상태는 일단 치료됐다고 할 수 있지만 관상동맥의 어느 한 부위만 막히는 게 아니다”며 “협심증과 심근경색증은 혈관 전체에 정도의 차이를 두고 진행되는 병리 현상으로 치료를 게을리하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어 시술 후에도 운동, 식이요법, 금연, 체중조절, 약물 복용을 평생 지속적으로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전 세계 심장학계에서는 급성심근경색이 생긴 관상동맥만 치료하고 이후에 나머지 혈관에 스텐트를 삽입할 것인지, 다른 혈관도 동시에 치료할 것인지 등에 대해 정해진 치료 기준이 딱히 없었다. 박 교수는 2014년 급성심근경색 환자 15만명의 진료 데이터베이스인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한 가닥의 혈관이 막힌 환자의 경우 다른 혈관의 약한 동맥경화도 심각한 위험이 된다는 사실을 통계적으로 밝혔다.

빅데이터 분석결과, 막힌 혈관 이외의 두 가닥 혈관에 동맥경화가 있으면 한달 내 사망률이 4.3%로, 그렇지 않은 경우(1.7%)보다 2.5배나 높았고, 1년 이후 장기사망률에서도 다른 혈관에 동맥경화가 있으면 7%로 그렇지 않은 경우 3%보다 2.5배 높아 같은 차이를 보였다. 박 교수가 제 1저자로 집필한 이 논문은 전 세계 3대 임상저널 중 하나인 ‘자마(JAMA)’ 2014년 11월호 심장질환을 다루는 특집판에 실렸다. 

<사진설명>박덕우 교수가 심장혈관 스텐트 시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심장학계에 중요한 치료 근거를 제시한 공로를 인정받아 박 교수는 2012년 미국심장학회(ACC)에서 매년 전 세계 심장학자들 가운데 최근 5년간 임상ㆍ기초ㆍ역학분야를 통틀어 업적이 우수한 1명에게만 수여되는 ‘올해의 탁월한(Distinguished) 젊은 과학자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하버드의대 마크 사바틴 교수 등 당대 최고 심장내과 의사들이 받은 상으로, 2005년에 신설돼 지금까지 수상한 의사는 10여명 정도박에 안된다. 한국나이로 40세에 받아 최연소 기록도 세웠다. 국내에서는 2009년 ‘유한의학상’, 2010년 ‘분쉬의학상 젊은 의학자상’, 2014년 ‘아산의학상 젊은 의학자 부문’을 잇따라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1973년 경북 김천에서 2남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철도공무원이었던 아버지 뜻에 따라 1998년 경희대 의대 졸업후 서울아산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내과와 외과적 성향이 공존하는 심장내과를 선택했다.

“심장환자들 대부분은 평생 환자여서 의사에게 의존하는 면이 큽니다. 그만큼 환자에게서 무한한 신뢰를 느낄때 가장 보람이 크죠. ‘평소 충분한 내공이 쌓이지 않으면, 놀라운 일도 절대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연구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결혼한지 14년이 되고 큰 아들이 올해 중학교 1학년 들어갔는데 제가 연수가서 큰 축복을 받아서 생긴 늦둥이 아들 녀석은 막 5개월을 넘었어요. 취미는 ‘늦둥이 보기’ 로 요즘 저희 부부 인생 최고의 기쁨이고 즐거움입니다.”

박 교수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

“급성심근경색으로 새벽 2시반에 ‘응급콜’이 왔는데 50세 초반환자였죠. 심폐소생술을 하는데 심장 초입부분이 100% 막혀서 와이어가 안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갔다가 뱅뱅 돌아서 나오고…. 1시간 넘게 와이어 종류를 10개를 바꿔가며 한 100번은 했는데 안되는거에요. 그때 드는 생각이 ‘아, 이거 뚫지 못하면 바로 죽는데. 이것도 이 분의 운명인가’보다 생각했죠. 

의료진들은 모두 지쳐갔고 거의 포기하자는 분위기였죠. 그래서 마지막으로 눈감고 기도하는 심정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시도했는데 한번에 딱 들어갔어요. 그 기분이란…. 와이어 들어갔을 때 의료진 모두 박수치고 난리가 났죠. 의학적으로 설명이 안되는게 1시간 가까이 했는데 이후에 심장하고 뇌도 기능이 손상이 안되고 정상상태로 회복됐어요. 이런 걸 기적이라고 하고 평생에 한번 있을까말까한 일입니다. 그 일로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한다는 신념이 생겼어요.”

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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