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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쉼표]자골탑(自骨塔)
나-제 동맹이 일찌감치 깨진 후 나-당 연합과 나-왜 제휴가 차례로 진행되자, 이에 대응해 여-제 동맹이 맺어지는 등 삼한의 각개 외교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7세기 중엽, 백제 의자왕은 과거 제후국이던 왜의 실력자 후지와라 가마타리에게 상아(象牙) 바둑세트를 선물한다.

신라와 부쩍 가까워지는 분위기를 견제하고, 백제-왜 간 옛 정을 되살리려는 외교행보였다. 서기 650년경으로 추정되는 이 때, 백제는 급박했기에 우방국 실력자에게 준 선물은 최고급이었다. 의자왕이 건넨 상아 바둑알 홍감아발루기자(紅紺牙撥鏤碁子)는 일본 왕실의 보물을 보관하는 도다이지(東大寺) 쇼소인(正倉院)에 지금도 보관돼 있다.

코끼리의 어금니, 즉 상아는 3000여년전부터 금과 함께 귀중품 대접을 받았다. 기원전 10세기부터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 상아가 호화 공예품의 재료로 쓰여져왔고, 오늘날에도 영국 런던과 벨기에 앤트워프 시장에서 비싼 값에 거래된다. 국내에서도 흔히 보는 고급 인장, 당구공, 피아노키 등에 상아가 활용된다. 중세 유럽의 정복자들이 아프리카를 도모한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상아 선점이라는 분석도 있다. 상아는 그래서 하이클래스, 고고함, 품위의 상징으로 통했다.


수많은 양의 상아로 쌓아올린 상아탑은 최고 품위의 상징이다. 필부필부의 고단함이 넘치는 속세와 다소 거리를 두는 듯한 이미지의 상아탑은 선망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다. 유럽에서 처음 사용된 '상아탑(tower of ivory)'이라는 용어는 ‘학문과 예술의 고고함’으로 통했다.

세월이 흐르고 인구에 회자되는 동안 수많은 상징들이 덧붙여진 상아탑은 수십년전부터 ‘대학’이라는 뜻으로 우리에게 각인돼 있다.

선망의 대상이던 대학이 필부필부들에게도 진입의 기회가 생기기 시작한 때는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1960,1970년대이다. 자식을 대학에 보낸 시골의 부모들은 가난이 대물림되지 말고 ‘개천에 용 나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아낌없이 자신을 희생했다. 그 만큼 선망했기에 집안 기둥 뿌리를 뽑아서라도 등록금을 마련했다.

그래서 고귀한 상아탑은 자식의 대학등록금 마련을 위해 애지중지 키우던 소를 팔아야만 보내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별칭을 얻게된다.
 
하지만 등록금을 뛰고, 소값은 떨어져 한 마리 팔면 몇년치 등록금을 대던 시절이 지나버렸다. 농촌진흥청이 2011년 소값과 등록금 추이를 비교해봤더니, 30년전 소 한마리로 5년치 등록금을 냈지만, 요즘은 2.5마리를 팔아야 1년치 등록금을 겨우 댄단다. 그래서 이제는 소가 아니라 사람(부모) 등골이 휘어진다는 의미에서 대학은 인골탑(人骨塔)으로 불린다.

인골탑 얘기도 꽤 된 모양이다. 품위와 지성의 상징이던 상아탑은 최근들어 ‘자골탑(自骨塔)’으로 다시 격하된다. 정부 학자금 대출액이 급증하는데 취업은 바늘구멍이라, 학생 스스로 상아탑에서 찍힌 ‘돈 멍에’를 무겁게 짊어진 채 사회에 내던져진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신조어이다.
 
학자금 누적대출액은 10조원을 넘어 최근 4년동안 3배가량 급증했다고 한다. 취업난속에 백수들은 이자를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도 속출하고 있다. 자골탑때문에 신용에 문제가 생긴 졸업생이 작년말로 3548명이나 된다고 한다. 한국장학재단이 벌이는 연체 소송건도 해마다 전년의 2배 가량,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2월 하순의 졸업식이 유쾌하지 않은 졸업생이 많다. ‘반값등록금’까지는 아니더라도 등록금에 관한한 실사를 해서라도 거품을 완전히 제거해 국민 부담을 줄이는 일을 정부 또한 게을리해서는 안된다.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이기에 나라 차원의 지원 역시 아끼지 말아야 할 부문이다.

높은 등록금과 청년실업 사태 때문에 3~4년전 영국 등 유럽과 남미를 강타한 폭동은 이 문제가 대학만의 의무에서 그칠 게 아니라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여-야-정-청 모두 책임을 져야할 일임을 말해준다. 웃음 사라진 캠퍼스에서 이제 ‘유쾌한 상아탑 만들기’는 기성세대의 몫이기도 하다.

함영훈 선임기자/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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