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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덴샤(電車)는 낭만을 싣고…삿포로로 떠나는 36.5℃ 여행
[글ㆍ사진=(삿포로) 김아미 기자] 한국인에게 전차(電車ㆍTram)는 식민 역사의 부산물로 기억된다. 대륙 침략이라는 일본 제국주의 야욕의 상징이다. 600년 수도의 심장을 관통하며 나라 잃은 설움을 주유(注油)했던 노면 전차는 그러나 한편으로 기계문명이 주입된 모던도시 경성의 새로운 풍경이기도 했다. 2015년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아날로그풍 영화 속 한 장면이다. 물론 이제 더 이상 서울에서 전차를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땅에서 전차를 만나는 일은 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전차는 이국의 풍경을 느리게 스치우며 여행자에게 조금 더 여유로운 사색의 시간을 허락하기 때문이다. 출발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최면에 걸리듯, 추억 여행이 시작된다.

도요타, 혼다, 닛산의 미끈한 세단들이 즐비한 삿포로의 중심 스스키노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전차다. 4차선 대로 한복판을 가로 지르며 설국(雪國) 삿포로의 낭만을 더한다.

라이프스타일 전문 케이블채널 헤럴드동아의 ‘그대와 하이킹’ 출연진들과 함께 일본 홋카이도의 대표 도시 삿포로로 떠났다. 그대와 하이킹은 연예인 1명과 일반인 1명이 짝을 이뤄 각국의 숨겨진 명소를 여행하며 추억을 나누고 우정을 쌓는 로드 버라이어티 형식의 여행 프로그램이다. 새해부터 전파를 타기 시작한 그대와 하이킹은 시즌1 일본 시라하마에 이어 시즌2 삿포로 편을 3회에 걸쳐 오는 3월 1일 일요일 저녁부터 방송할 예정이다.

이들과 머물렀던 삿포로 여행지들을 지면으로 먼저 소개한다. 붉은 터번을 두른 할아버지가 위스키와 보리를 들고 있는 스테인드글라스풍 그림, 일본의 양대 위스키업체인 니카(Nikka)위스키의 광고판이 있는 삿포로 최대 번화가 스스키노 거리에서부터.

느리게 걸으며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이른바 ‘36.5℃ 삿포로 여행’이다.

▶배려ㆍ양보ㆍ절제…전차가 가진 또 다른 의미=삿포로의 ‘로멘덴샤(路面電車)’, 전차를 타는 데는 족히 10여분이 걸린다. 종점에서는 그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다 내리고 난 후에야 전차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1회 이용요금은 170엔. 내릴 때 운전석 옆에 비치된 요금함에 넣으면 된다. 요금을 먼저 받는 서울의 대중교통 요금체계와는 달라 적잖이 놀라게 된다. 전차는 어쩌면, 동전 170엔이 없는 거리의 부랑자에게도 무임승차를 허락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가고 싶은 곳을 일단 데려다는 줄 게 아닌가. 

삿포로의 번화가 한복판을 느린 속도로 전차가 달린다.

“뭐해! 빨리 빨리 내리지 않고”, 혹은 “저 먼저 좀 내립시다”라는 이야기는 삿포로의 전차에서 듣기 힘들다. 한줄로 늘어선 승ㆍ하차 대기자들은 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대열을 지킨다. 그들의 기다림에는 배려와 양보, 절제가 있다. 일본을 다시 만나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본 특유의 배려, 양보, 절제는 전차 뿐 아니라 도로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평균 6m의 적설량을 기록할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삿포로는 2월 초에 열리는 ‘삿포로 눈축제’로 겨울의 절정을 맞이한다. 세계 3대 축제로 꼽히는 삿포로 눈축제에는 매년 200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몰려온다. 삿포로 도심을 가로 지르는 오도리 공원 1.5㎞ 구간에 대형 슬로프와 얼음조각들이 위용을 뽐낸다. 

노스(North) 사파리 삿포로가 있는 죠잔케이 시골마을 풍경.

축제로 인해 엄청난 혼잡이 빚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오도리 공원 양쪽으로 좁게 난 도로에서는 추월하는 자동차를 보기도, 그 차를 ‘꾸짖는’ 경적 소리를 듣기도 힘들다. 양쪽 길가에 사람 키 높이를 훌쩍 넘는 눈이 쌓여 있어도 도로는 막히지 않는다. 모두가 정해진 룰을 지키기 때문이다. 무섭도록.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온천마을, 삿포로의 겨울이 더 따뜻한 이유=홋카이도 신치토세공항에서 약 1시간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가면 죠잔케이 온천마을이 나온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엔 공항에서 바로 이어지는 JR을 이용해 삿포로역에서 하차, 버스터미널에서 쇼테츠버스를 타고 죠잔케이온센(定山渓温泉) 히가시니쵸메에서 내리면 된다. 삿포로 시내에서 남쪽으로 26km, JR삿포로역에서 죠잔케이까지 이 직통버스를 타면 약 1시간10분 정도가 소요된다. 

죠잔케이 온천마을 일대에 흐르는 토요히라강. 돌멩이 위로 생크림처럼 눈이 쌓여 있다.

겨울 삿포로에서는 눈이 지치지도 않고 하루종일 내린다. 건조하고 잘 뭉쳐지지 않는다 해서 일명 파우더 스노(Powder snow)라 불리는 눈이다. 지붕마다 마치 카스타드(Custard) 크림을 얹어놓은 것처럼 눈이 겹겹이 층을 이루며 덮여 있다. 포슬포슬한 삿포로의 눈은 녹아도 질척거리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죠잔케이 온천마을의 아스팔트 도로에는 열선(熱線)이 깔려 있어 눈이 내려도 쌓이지 않도록 만들어 놨다는 것이 마을 주민의 설명이다. 재난이 일상화한 나라의 국민답게 어느 곳이나 세심한 ‘안전 설계’가 돋보인다.

죠잔케이 온천은 토야코 온천, 노보리베쯔 온천과 함께 홋카이도의 3대 온천지로 유명하다. 죠잔케이 온천마을 일대에는 공용 온천이 대여섯 군데 있다. 특히 죠잔케이 온천의 개척자로 알려진 미이즈미 죠잔(美泉定山)의 동상이 있는 죠잔케이 온천공원이 대표적인 공용 온천이다. 무료로 운영되며 연중 무휴다. 신사(神社) 옆 족탕도 역시 무료로 개방돼 있다. 

죠잔케이 온천공원. 죠잔케이 온천의 개척자로 알려진 미이즈미 죠잔의 동상이 있다.

시대가 바뀌었어도 맨발은 여전히 내밀한 속살. 낯선 이들과 함께 거리의 온천수에 맨발을 담그는 것은 가슴 속 온기를 나누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달콤한 만쥬(팥 앙금이 들어있는 일본식 만두)를 나눠 먹는다면…. 말은 안 통해도 정(情)이 통한다. 특히 온천 족욕을 즐기면서 온천수로 덮힌 사케를 마실 수 있는 곳도 있으니 주당(酒黨)들의 천국이 따로 없다.

온천마을 일대를 휘돌아 흐르는 토요히라강 역시 놓쳐서는 안 될, 사계절이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다. 죠잔케이 후타미쯔리공원 내에 위치한 후타미쯔리 다리 위에서 토요히라강을 보노라면 온천수와 눈이 만들어낸 하얀 습기에 가슴이 덥혀진다. 

▶“나에게 여행은 OO다”=‘그대와 하이킹 in 삿포로’의 출연진은 걸그룹 쥬얼리의 전 멤버 예원과 헤어디자이너 홍미연(이철헤어커커 ‘마끼에’ 실장)씨. 삿포로 여행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이들이 3박 4일을 함께 하며 속깊은 얘기를 나눴다. 여행이 누구에게나 그러하듯, 그들의 마음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무장해제됐다.

“예전에 일본어를 배운 적이 있어요. 저도 처음엔 한류스타가 될 줄 알았거든요.”

예능 프로그램과 CF 등을 통해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예원은 어느덧 데뷔 4년차 가수다. 소위 ‘대박’을 칠 만한 콘텐츠를 아직 발굴하지는 못했다. 한류스타 꿈도 여전히 미완이다. 그런 그에게 여행은 또 다른 도약을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영어 한마디 할 줄 모르면서 무작정 런던으로 유학을 갔었어요. 사랑 대신 선택한 일이었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삿포로 중심가인 스스키노에 위치한 라멘 골목 ‘라멘요코초’.

헤어 디자이너 홍미연씨는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한 30대다. 런던 비달사순 아카데미 유학시절에도 쉬는 날이면 조립식 침대를 걷어 올리고 자취방을 헤어숍으로 만들었다. 그의 손재주가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유학생 신분으로 하루 100만원 이상 벌기도 했다고. 악바리 같은 그에게 여행은 쉼표였다. 그리고 이들에게, 여행은 곧 꿈을 정비하는 시간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터놓는 데는 설원에서 (발가벗고) 즐기는 온천욕 만큼 좋은 것이 없지만, 라멘, 사케 등 삿포로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들도 큰 역할을 한다. 특히 밤 늦도록 불을 밝힌 우동집에서 돈코츠라멘, 미소라멘, 소유라멘, 차슈라멘 등등,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얼음장처럼 차가운 사케 한잔을 곁들이다 보면 삿포로의 겨울이 이대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든다. 

눈 내리는 겨울밤 우동집의 불빛은 삿포로를 찾는 이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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