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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터랩] 못 다 이룬 꿈을 향해…정치9단 JP의 묵직한 빈소훈수
“대통령 단임제론 큰일 못해” “대통령은 외롭고 고독한 자리”…부인상 조문객들에 내각제 개헌 등 조언
“내 일찍이 정치인은 허업(虛業)이라 그랬어”, “대통령 단임제로는 큰일을 못한다”, “대통령은 외롭고 고독한 자리, 잘 좀 도와주십시오.”

정치 9단의 폭과 깊이는 남달랐다. 세세한 정치 현안부터 은퇴 정치인의 소회까지, 주제는 한계가 없었다. 역대 최다인 9선 국회의원, 2차례의 국무총리, 3김시대의 주역. 현대사의 부침을 온몸으로 겪은 세월이 김종필 전 총재의 말 속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부인 박영옥 여사의 빈소에서 김 전 총재는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몸은 휠체어에 기댔고, 얼굴은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는 정치인이다. 현대사의 산 증인으로 빈소에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 조언 속엔 때론 아프고, 또 때론 잊지 말아야 할 현대사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김 전 총재는 빈소에서 조문객들과 만나 “5년 대통령 단임제를 하고 있지만, 큰일을 하기엔 시간이 모자란다”고 강조했다. 또 “내각책임제를 잘하면,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다”고도 했다. 김 전 총재는 대표적인 내각제 개헌론자이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연대를 통해 내각제 개헌을 꿈꿨다. 하지만 시도조차 못했다. 내각제 개헌은 그의 못다 이룬 꿈인 셈이다.

그는 정치사의 대표적인 ‘킹메이커’였다. 김영삼 후보가, 김대중 후보가 그의 지지를 바탕으로 대권을 잡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도 그의 지지를 받았다.

정작 그는 대권과는 인연이 없었다. 늘 2인자의 삶이었다. 그 때문에 누구보다 대통령의 옆 자리를 잘 알고 있다. 그는 “대통령은 외롭고 괴롭고 고독한 자리”라며 사의가 수용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나선 “(박 대통령을) 가끔 찾아뵙고 외롭지 않게 해주세요. 다 외로운 자리입니다“라고 했다.

비록 1인자에 오르진 못했지만 길면서도 굵직한 흔적을 남겼다. 35살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ㆍ16 군사 쿠데타 때 가담해 현대정치사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나타났다. 충청권의 맹주로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김 전 총재 부인의 빈소에는 유례없이 초당적인 인사가 모두 모였다. 오랜 정치역정으로 여야를 넘나들며 살아온 그의 삶 때문이다. 그는 빈소에서 “내 묘비 한 구절에 ‘내가 뭐를 남기려고 뭐를 했는지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라고 써놨다”고 전했다. 이제 그의 삶은 역사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김상수 기자/dlc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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