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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2.28민주운동기념회관, 이젠 시민을 품는다
[헤럴드경제=남민기자] 1960년 2월 28일 오후 1시40분, 대구 소재 경북고, 경북여고, 경대사대부고, 대구고, 대구여고, 대구공고, 대구농고, 대구상고 학생들이 일거에 거리로 뛰쳐 나온다.

자유당 정권의 정치행사에 불려 다녀야 했던 학생들이 야당의 집회에 참가할 것을 우려한 당국으로부터 일요일 등교를 강요받자 모두 데모에 나선 것이다.

학생들은 목숨을 걸고 대구 중앙통으로 나아가 어깨동무를 한 채 자유와 정의를 부르짖었다.

대구지역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정치도구화 하는 정부에 항의해 일제히 시위에 나섰다. [사진=2ㆍ28민주운동기념회관 제공]

거리를 꽉 메운 학생들은 경북도청으로 향했다. 그리고 함성이 터져나왔다. “도지사는 나와라, 우리는 정당하다. 도지사는 신성한 학원을 정치도구화 하지마라”

구름떼 함성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자 경찰이 총출동한다.

수많은 희생이 발생했다. 경찰의 진압과 끌려가면서 피투성이가 된 학생들이 넘쳐났다.

대구 2ㆍ28운동은 2주일 후 마산에서 불씨가 다시 타올랐다. 3월15일 정부의 부정부패 속 정ㆍ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 허윤수 국회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해 자유당으로 이적하자 마산시민들이 들끓어 올랐다. 분노와 배신감은 온 도시를 뒤흔들었다. 이때 경찰의 발포와 체포로 7명이 사망하고 8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시위는 전국으로 번져나갔다.

3월 17일 서울에서, 4월 6일 서울과 부산에서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이어지며 경무대로 가자고 외쳤고 11일에는 행방불명이 됐던 김주열 군이 머리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중앙부두에서 사망한 채로 떠오르자 격분한 마산시민들은 2차 의거를 일으켰다. 이 때 12명이 사망, 250명이 체포 구금됐다.

시위대에 가담한 학생들. [사진=2ㆍ28민주운동기념회관 제공]

불길은 다시 서울로 올라갔다.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고 귀가길에 정치깡패에 피습당했다. 같은 날 부산, 청주에서도 시위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 다음날, 마침내 4ㆍ19혁명이 일어난다. 학생과 시민의 격렬한 시위가 하늘을 찌르듯 치솟자 급기야 26일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게 된다.

대통령 하야의 불씨가 된 대구 2ㆍ28민주화 학생운동은 거룩하고 숭고한 정신을 남겼고 이 정신을 기리기 위해 대구에 2ㆍ28민주운동기념회관(남산동)과 기념탑(두류산공원) 등을 조성했다.

명덕역과 명덕초등학교 사이에 위치한 2ㆍ28민주운동기념회관은 현대에 들어 최초의 민주적 저항운동의 정신이 살아있는 기념관이자 학생, 시민들이 애용하는 도서관으로서 그 존재감을 갖고 있다. 도서실에는 3만6천 여 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다.

올해 2ㆍ28민주화운동 55주년을 맞아 이 기념관도 시민 곁으로 바짝 다가서고 있다.

대구 2ㆍ28민주운동기념회관을 소개하는 이영숙 대구시 문화관광해설사.

이영숙 대구시 문화관광해설사는 “이 기념회관은 오늘날 민주화 사회의 불씨를 지핀 숭고한 정신을 담은 곳”이라며 “도서관도 마련돼 있어 온 시민이 활용할 가치가 무궁무진하다”고 소개했다.

기념히관의 1층엔 2ㆍ28민주운동 전시관과 기획전시실이, 2층엔 북카페와 얼린이열람실 및 수유실, DVD상영관, 디지털 자료실이 있으며 3층엔 일반 및 특화 자료실과 사무실, 세미나실이, 4층엔 사단법인 2ㆍ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회의실, 문화강좌실, 세미나실이 있으며 지하엔 보존서고가 갖추어져 있다.

2ㆍ28민주운동기념회관
2ㆍ28민주운동기념회관 내부
2ㆍ28 시위 도중 부상 당한 학생 [사진=2ㆍ28민주운동기념회관 제공]

suntopi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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