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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7일간의 세계여행]2. 북적북적 뉴델리역…방향감각과 이성을 잃다
[헤럴드경제=강인숙여행칼럼니스트]새벽 5시30분에 호텔에서 버스 출발, 8시30분 광저우 공항에서 비행기 탑승, 6시간이 지나 현지시각 1시10분 뉴델리 공항에 도착했다. 벌써 하루가 다 지나간 듯한 기분인데 아직 점심시간이다. 원래 일정은 밤10시, 늦은 시각 도착이어서 시내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웠었다. 그러나 이렇게 낮에 도착하니 마음이 한결 편하다. 게다가 지난 2007년에 델리공항에서 한국 들어올 때 한창 공사중이던 공항은 이렇게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다. 일단 ATM을 찾아 환전을 하고 공항철도를 타고 뉴델리로 들어온다.


숙소를 찾아 여행자 거리 빠하르간지(PAHRGANJ)로 가기 위해 뉴델리역으로 간다. 지하철은 쾌적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지하철을 탈 때마다 검색대에 짐을 통과시키는 시스템은 여행자를 힘들게 한다. 앞뒤로 배낭을 매고 있는 처지로는 배낭을 내렸다가 다시 매는 일이 쉽지 않은 탓이다. 인파를 헤치고 검색대를 통과하며 무사히 뉴델리역에 도착했지만 그 다음은 더 문제였다.

방향감각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메트로에서 지상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뉴델리역 앞 인파와 빼곡히 들어선 오토릭샤들이 갑자기 내 눈을 점령한다. 도무지 방향을 알 수가 없다. 

이제 할 일은 간단히 외국인 전용 창구(International Tourist Bereau)를 찾는 것이다. 거기서 안내를 받아 자이살메르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고 빠하르간즈로 가서 숙소를 구하면 된다. 그런데 역에 들어가니 창구마다 기차표 사거나 예매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이미 방향감각을 상실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층에 올라가도 아무것도 없고, 허둥대며 다시 내려온다. 그걸 지켜보던 인도인들이 역시나 그 까만 눈동자로 빤히 얼굴을 쳐다보며 말을 건다. 몇 명은 잘 뿌리쳤는데 적극적으로 다가와 외국인 전용 창구는 오늘 토요일이라 문을 닫았다면서 친절하게 주소를 적어주던 사람의 종이쪽지를 받아들고 말았다. 그래도 이때까진 정신이 좀 있어서 주소만 받아들고 거절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아까 그 사람이 또 나타난다. 자기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라며 외국인 인포메이션이 있는 곳으로 가라고 친절히 릭샤까지 잡아준다. 이때 정신 차렸으면 간단했는데, 이런 뒤죽박죽한 상황에서 이성이란 걸 잃어버리는 시간은 찰나다. 

릭샤에 올라 델리 거리를 두리번거리며 약간 들뜬 마음으로 사진을 찍다보니 지금 오토릭샤가 가는 방향은 아까 메트로를 타고 지나왔던 곳이다.

아무래도 낌새가 수상하다. 릭샤왈라 등을 두드리니 어딘가로 전화하던 그가 깜짝 놀라는 듯한 기색이다. 순간 아차 싶었다. 뉴델리역에서 이런 식으로 눈뜨고 사기당했다는 인터넷 카페의 수많은 글들이 한꺼번에 머릿속에 떠올랐다. 드디어 빠져나간 이성이 돌아온다. 떨리는 마음을 진정하고 너희들이 거짓말 하고 있는 걸 아니 뉴델리역으로 가던지 경찰서로 가자고 했다. 안면을 확 바꾼 릭샤왈라가 알겠다며 데려다 준 곳은 허접한 간판의 사설 인포메이션 센터 앞. 여기가 경찰서냐고 소리쳐도 얄밉게 웃기만 하니 더 화가 난다. 겉으로는 재미있는 듯 웃고 있는 그들도 긴장한 것 같기는 했다. 릭샤비는 물론 주지 않았고 그들은 달라고도 하지 못했다.

앞뒤로 맨 배낭은 너무나 짐스럽고 숙소는커녕 아직 인포메이션 센터도 못찾았다. 릭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도 오히려 목적지도 아닌 곳에서 또다시 실랑이를 하고 있자니 진짜 짜증이 난다.

일단 기차표를 구입하러 뉴델리역이 아닌 올드델리역으로 가기로 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자이살메르행 기차를 타야하는 올드델리역에 가서 차표를 구입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미리 예매한 자이살메르행 기차표는 어제 비행기 연착으로 무용지물이 되어버려 또다시 기차표를 구해야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검색대에 배낭을 풀렀다 맸다하면서 메트로를 타고 사이클릭샤를 갈아타서야 올드델리역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넘어가고 있었다. 어떤 일이든 끝은 있고 델리역에서 가짜 외국인 창구로 끌려들어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해지는 델리시내를 즐기며 다시 뉴델리역으로 간다.


우여곡절 끝에 두 번째 온 뉴델리역, 이제 빠하르간즈로 가기 위해 육교를 건너야한다. 육교에 오르려하니 총 맨 경찰들이 가까운 쪽 계단은 짐이 있는 사람들은 갈 수 없다며 저 멀리 있는 계단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산 너머 산이라더니, 뭐하나 한 번에 되는 게 없다. 낑낑거리며 먼 쪽 계단을 넘어 육교 반대편으로 간다.

간신히 빠하르간즈로 가는 길을 찾고 어둑어둑해진 거리를 더듬어 숙소를 찾는다. 그래도 다행인지 숙소 로비에선 와이파이도 된다.

잘 곳을 정하고 떠날 곳도 정했으니 이젠 먹을 곳을 찾아야한다. 여행자의 기본이다. 탈리를 주문해서 먹고 거리 노점에서 라시도 마시며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한다. 무섭도록 피곤했던 하루가 지나가는데도 배부르고 등 따뜻하니까 기분이 좋아진다. 이렇게 사람이 단순해져도 되는지 모르겠다. 겨울의 북인도, 핫샤워가 된다는 욕실에선 미지근하다 못해 찬기운마저 느껴지는 물이 졸졸 나왔지만 오늘 겪은 일들에 비하면 그래도 견딜만했다.

겨우 여행 이틀째, 한나절 만에 방향감각과 이성을 되찾은 여행자에게 이제는 피곤이 엄습한다.​

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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