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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릭 원피스’ 휘날리며…한복 입고 홍대 클럽 가볼까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여자라고 바지를 입지 말라는 법은 없지.”

요즘 시대에 너무 당연한 말이다. 당장 내 옆에 앉은 여성 동료를 보라. 치마를 입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이 얘기를 조선시대에 듣는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야말로 파격이다. 조선시대 왕실의 의복을 만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상의원’에서 천재 디자이너 이공진(고수)은 기생 월향(신소율)의 한복 치마를 싹둑 잘라 바지로 만들어버렸다. 

외희 디자이너의 한복 의상들. [의상사진 제공=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공진의 파격은 계속된다. 팔 길이에 맞지 않게 늘어진 배래(저고리 소매 밑 부분) 부분을 과감히 줄이는가 하면, 중전의 치마를 항아리 모양으로 풍성하게 만들어 놓는다.

조선시대 공진이 보여줬듯, 한복의 변신은 무한대다. 비싸고 불편한 옷, 결혼식 폐백 때나 입는 옷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 당신이 한복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일부 품위 있는 사모님들이나 입는 옷이 아닌, 그야말로 일상생활에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 편하면서도 멋스러운 옷이 바로 한복이다.

한복 디자이너 외희(42) 씨를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났다. 한복인듯, 한복아닌, 한복같은 한복들로 무한한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는 디자이너다. 설 명절을 앞두고 만난 그에게 물었다. 한복, 어떻게 입으면 좋겠냐고. 
외희 디자이너의 한복 의상들. [의상사진 제공=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개량한복? 이건 그냥 한복입니다”=
“개량한복이라고 말하는데, 이거 전부 다 원형 그대로예요.”

말도 안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치마 저고리 한복과는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보리색 자켓에 비슷한 톤의 레깅스 진을 매치하고 워커부츠를 신었다. 그런데 그가 입고 있는 자켓이 한복이란다.

“남자들이 입던 포(袍ㆍ겉옷)에서 따온 거예요. 창의, 도포, 철릭처럼 남성들의 옷에서 여성 한복의 모티브를 얻었죠.”

창의는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이 한복 위에 입던 겉옷. 외희는 전통 창의에 명주, 누빔 대신 울 소재를 적용해 현대적이고 여성스러운 미디움 길이의 울 코트로 풀어냈다. 


외희 디자이너의 한복 의상들. [의상사진 제공=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철릭 역시 여성복으로 바꿔놨다. 상의와 하의를 따로 구성해 허리에 연결시킨 철릭은 신하들이 입던 관복으로 남성 복식의 일종이다. 철릭을 응용해 치마 쪽에 잔주름을 잡은 일명 ‘철릭 원피스’는 기성복 디자이너들도 가져다 쓸 정도로 가장 핫한 한복 디자인이다.

외희 씨의 말에 따르면 한복의 가능성은 한복의 원형 안에 있다. 전통 복식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 안에서 한복의 가능성이 무한대로 확장된다고 말했다.

“이건 액주름포에서 따온 거예요. 무사들이 입던 옷인데 데님 위에 입으면 멋진 코트가 되죠.”

액주름포는 남성 두루마기의 일종으로 겨드랑이 부분에 주름을 준 겉옷이다. 외희씨는 이 액주름포에 벨벳 소재를 적용했다. 원형은 그대로 살리고 소재를 현대적으로 바꿔 그 안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았다. 개량한복이 아닌 원형 그대로의 한복이다.


외희 디자이너가 작업실 겸 교육실로 쓰고 있는 자신의 인사동 숍에서 창의를 본 딴 울 코트를 입고 포즈를 취했다. 오른쪽에 보이는 한복은 속옷을 간소화해 우아한 치마라인을 만들었다. 사진=박해묵 기자/amigo@heraldcorp.com


▶그래서 한복을 어떻게 입으라고?=외희 씨는 개량한복이라는 말을 그만 좀 썼으면 한다고 했다. 대신 전통한복, 정장한복, 캐주얼한복 등으로 종류를 세분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TPO(시간, 장소, 상황)에 맞게 한복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외희 씨가 자신이 디자인한 한복 한 벌을 갈아입고 나왔다. 저고리에 바지를 접목시킨 ‘유니섹스형’ 여성 한복이다.

“이건 16세기 저고리 모양 그대로고요. 바지는 여자 속옷의 일종이죠. 배기바지(Baggy pants)라고들 하는 데 사실은 전통 한복에서 변형이 하나도 안 된 거예요.”

상의는 명주를 격자 누빔으로 처리했고, 바지는 데님 소재를 썼다. 전통적인 한복 디자인에 현대적인 소재를 접목하고, 속옷을 겉옷으로 입는 ‘발상의 전환’이다.

반대로 파티 드레스처럼 현대적인 한복 디자인에는 모시, 명주 등의 전통적인 소재를 쓴다. 이른바 소재와 디자인의 믹스매치다.

“한복을 잘 입는 방법 중에 하나가 속옷을 간소화하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한복 치마 속에 패티코트 같은 속옷(무지기)을 입기 때문에 불편한 거에요. 슬림한 속옷을 입고 치마를 겹쳐 올리면 우아하고 아름다운 라인을 만들수 있죠.”

외희 씨가 디자인한 캐주얼 한복. 16세기 저고리와 여자 속옷 바지에서 차용했다. 사진=박해묵 기자/amigo@heraldcorp.com

한복을 제대로 입을라치면 다리속곳, 속속곳, 속바지, 단속곳, 대슘치마, 무지기치마까지 보통 거추장스러운 게 아니다. 이러한 속옷 절차를 과감히(?) 생략하고 간소화하면 얼마든지 일상생활에서도 입을 수 있다는 논리다.

또 바지 대님을 잘라낸다든지, 가슴말기(가슴을 가리는 속옷)만 한 채 저고리 대신 포를 입는 방법도 있다.

악세서리 연출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징박힌 스냅백이나 비니를 쓰고, 스니커즈나 워커를 신으면 한복을 캐주얼하게 연출할 수 있다. 외희 디자이너는 최근까지 패션쇼와 쇼케이스를 통해 이러한 스타일링을 여러 차례 선보인 바 있다. 

외희 디자이너의 한복 의상들. [의상사진 제공=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소재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1980년대는 물론 90년대에도 한복을 입는 게 자연스러웠죠. 저도 졸업식 때 한복을 입었던 걸요.”

외희는 1990년대 말 외환위기를 전후로 모든 것이 급속하게 서구화되면서 한복이 설 자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국민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모던한복이 정착됐어야 하는데, 그러기도 전에 서구 럭셔리 브랜드가 밀려들어오면서, ‘명품’ 만을 좇는 현상이 생기게 된 거죠.”

그는 한복이 ‘편한 옷’으로 정착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소재에 대한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면이나 데님처럼 물빨래가 가능한 소재들을 다양하게 접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설 명절, 이럴 때만 한복 찾지 말구요. 평소에도 관심을 가져보세요. 한복 입고 홍대 클럽, 왜 못가나요?”

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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