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 日 자민당 총무회장, “김충선 장군은 한일 우정의 상징”
[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일본 집권 자민당 총무회장으로서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베 총리의 친서를 전달한 니카이 토시히로(二階俊博)의원은 전국여행업협회 회장을 겸하고 있다. 그는 경색된 한일 관계를 관광교류 활성화로 해결하고자, 1400명이라는 사상최대 규모의 관광사절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해 13~16일 나흘간 방한일정을 보내고 있다.

토시히로 회장은 14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진행된 한일우호교류의 밤 행사에 나와 인사말을 하면서, 한일 관계 경색의 원인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두 나라를 분열시키고 소원(疏遠)하게 만든 세력에 대해 “부끄러운 행동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말로 일침을 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과 일본이 매우 절친한 이웃이라는 점을 강조하는데 인사말의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특히 그는 임진왜란때 일본군 선봉장으로 출병했다가 한국에 상륙하자마자 귀화한 김충선(일본명:사야가) 장군 스토리를 자세히 전하면서 한일간 우정, 한국민에 대한 자신의 호감을 설명했다.

그는 “내 고향 와카야마현 출신인 김충선 장군은 임진왜란이 의로운 전쟁이 아니고 일본이 잘못하고 있다고 여기고 한국에 귀화했으며, 그 분들의 후손중에는 법무부 장관까지 계신데, 그 전직 장관님은 내 학교 선배이시다”면서 김충선-김치열 전 법무장관-토시히로 자신으로 이어지는 인연을 자세히 설명한뒤 김 장군의 14대 후손을 이날 행사에 모인 한국과 일본 정계,관광업계 대표 1500여명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김충선 장군은 오사카 바로 아래 와카야마현의 영주로 22세 되던 1592년 임진왜란때 일본군 선봉장으로 출병했다. 그는 조선에 상륙하자마자 조선 문물에 감동해 귀화한뒤 조선군에 편입돼 일본군을 상대로 싸웠다고 기록은 전한다. 그의 귀화결심이 출병전 일본에 있을때 부터인지 확실치 않으나, 귀화시점은 임진왜란 발발 직후이다.

그는 조선 장수로 울산과 경주, 영천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신무기 제조기술을 조선군에 제공했다.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선조로부터 종2품 가선대부 벼슬을 받고 김충선(金忠善)이란 이름을 받은 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정묘호란, 병자호란때까지 전장을 누비며 호국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진주목사 장춘점의 딸과 혼인하고 달성군의 우록(友鹿)마을에 정착했다. 그의 위폐는 우록마을 녹동서원에 모셔져있다.

김 장군의 후손 김치열(1921~2009)은 박정희 정권의 마지막 법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장관 취임때 “내 조상은 일본인”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일본 도쿄에 있는 주오(中央)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토시히로 회장의 대학 선배인 셈이다. 일본인이라면 한국에 귀화한 자국 장수에 대해 곱지않은 시선을 보낼 만도 하지만, 토시히로 회장은 김충선 장군 가문에 각별한 우정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충선 장군의 14대손 [문화체육관광부 전소향님 촬영]

김장군은 자전적 가사 ‘모하당술회가(慕夏堂述懷歌)’를 통해 ‘넓디넓은 천하에서 어찌하여 오랑캐의 문화를 가진 일본에 태어났는가’라며 탄식했다. 이 가사의 내용으로 미뤄, 출병 이전에 이미 귀화할 의지를 갖고 있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일본내 대표적인 지한파 의원인 토시히로 회장은 “한일 관계는 매우 미묘하므로, 상대 입장 마음 헤아려야 한다”면서 “(관광교류 확대 선언을 계기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의 좋은 스타트를 보이고 (두 나라에) 즐겁고 유익한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bc@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