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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난세계사] 마르코 폴로, 정말 중국에 갔었을까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무역상의 아들로 태어난 마르코 폴로(1254-1324). 항해시대가 열리기 전인 13세기, 그는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면서 당시 유럽인들에게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미지의 땅을 탐험합니다. 그 땅은 바로 아랍권을 넘어선 ‘동방’이었죠.

25년 간의 아시아 여행을 마친 그의 경험담이 담긴 책이 ‘동방견문록’입니다. 당대 성경 다음으로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에는 몽골 제국이 지배하던 세계에 대한 깨알 같은 정보와 신비한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자신들이 살고 있던 땅 유럽과, 종교적 대립관계였던 이슬람 문화권이 사실상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던 유럽인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동방견문록의 수많은 사본만큼이나 마르코 폴로와 이 책을 둘러싼 이러저러한 의문이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채 남아있습니다. 그가 정말 17년 동안 원나라에 머물면서 보고 들은 걸 쓴 게 동방견문록일까요. 원나라에서 머무는 동안 상도와 북경은 물론이고 산시, 쓰촨, 윈난, 산둥, 장쑤 등 웬만한 중국의 주요 도시들을 모두 여행했다는 그의 말을 믿어도 될까요. 그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었을까요.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상인이자 탐험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 그는 동방여행을 떠나 중국 각지를 여행하고 원나라에서 관직에 올라 17년을 살았다. 이후 이야기 작가인 루스티켈로가 그의 경험담을 기록, 동방견문록이 탄생했다.

우선 마르코 폴로가 갔던 곳은 중앙아시아까지로, 중국에 대한 이야기는 그곳에서 이슬람 상인 등으로부터 전해들은 여러 이야기를 짜깁기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당시 중국을 풍미하던 한자와 차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진짜로 중국에 갔다면 당연히 다뤄져야 할만한 소재인데도 말이죠.

이 뿐만이 아닙니다. 마르코 폴로의 여행 경로를 따라가 보면 그는 적어도 한 번 만리장성을 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동방견문록에는 만리장성에 대한 서술이 없죠. 당시 중국에서 널리 보급되던 인쇄술, 젓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풍습 등에 대한 내용도 다뤄지지 않고 있답니다.

여행기인데도 마르코 폴로의 주관적인 감상이 이상하리만큼 책에 담기지 않았다는 것도 의문입니다. 예를 들면 “카물(Kamul)은 탕구트 주에 속하는 지역이다. 이 주에는 도시와 성이 많고 위대한 칸에게 예속돼있다”라든가 “텐둑(Tenduk)은 동쪽에 있는 주인데, 도시와 성들이 많다”는 식의 내용만 수백 페이지 이상 담겨있죠. 일종의 정보의 집적처럼 서술돼 있는 셈입니다.

마르코 폴로가 이동한 경로(아버지와 삼촌과 함께)

이런 의문을 더욱 그럴 듯 하게 만드는 주장은 또 있습니다. 그가 양주라는 도시를 3년 동안 통치했다고 하지만 중국 자료에서 이를 뒷받침할 만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의 주장대로 쿠빌라이 칸의 신임을 얻어 관리까지 지냈다면 중국의 문헌 어디엔가 한 줄이라도 남아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최근에는 그가 서술한 굵직한 원나라의 몇가지 사건 연대가 사실과 다르다는 분석도 더해졌습니다.

반면 동방견문록에 다소 과장은 있을 수 있지만 진실이 틀림없다는 반박도 만만치 않습니다. 남송의 멸망이나 쿠빌라이 칸의 국가행사 장면, 각 지역의 세세한 생활사 등을 묘사한 부분을 보면 직접 가보지 않고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겁니다.

또 만리장성은 1500년경 명나라 때까지 지금의 모습을 채 갖추지 못했고, 마르코 폴로가 몽골ㆍ투르크ㆍ페르시아인들과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한자에 대해 별다른 지식을 가질 수 없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프랑스를 난생 처음 여행한 사람이 쓴 글에서 에펠탑이나 샹송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해서 모든 글의 내용이 ‘거짓’이라고 말하기 힘들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마르코 폴로(맨 왼쪽 어린이)와 그의 아버지, 삼촌이 쿠빌라이 칸에게 문서를 전달하고 있다. 15세기 프랑스 작품.

그런데 말입니다. 진위가 어찌됐든 동방견문록이 유럽의 대항해시대를 열어 세계사를 바꾸는 결정적인 책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당시 몽골 제국이라는 세계에 대해 비교적 세세하게 서술한 책이였기 때문이죠. 마르코 폴로가 허구의 인물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도 없는 상황입니다. 유럽의 소국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인구와 자원과 기술과 문화를 보유한 곳으로 묘사된 미지의 세상, ‘동방’. 당시 이 책을 읽던 누군가는 상상의 나래를 한껏 펴면서 미래를 꿈꾸고 있지 않았을까요.


(*) 1324년 마르코 폴로가 세상을 떠나던 날 그의 친구들은 “지금이라도 동방견문록에 있는 내용이 거짓말임을 고백하고 참회하라”고 설득합니다. 그를 허풍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마르코 폴로는 끝까지 굽히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이라고? 내가 본 것 중 절반도 쓰지 못했어.”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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