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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난세계사] “세금 내려줘”…고다이바 누드퍼포먼스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긴 생머리를 나부끼며 벌거벗은 채 말에 타고 있는 여인, 고다이바(고디바ㆍGodiva). 면세점에서 자주 보는 고디바 초콜릿 상자나 번화가에 있는 고디바 매장에서도 청순가련형의 이 여인이 트레이드마크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자태가 아름다운 건 둘째치고, 여인은 왜 알몸으로 말을 타야했을까요. 여인은 정말 누드퍼포먼스를 한 걸까요.

고디바 매장 입구의 고다이바 여인 모습
고디바 초콜릿 상자의 고다이바 여인 모습


때는 바야흐로 11세기, 영국은 북유럽 바이킹 데인족 출신의 왕인 크누트 1세의 폭정에 시달립니다. 크누트 1세가 정복전쟁에 나서면서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했거든요. 터무니 없이 많은 세금을 걷어갑니다. 오죽하면 데인족에게 내는 세금을 의미하는 ‘데인겔트’라는 단어도 있었죠.

영국 런던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코벤트리 마을의 영주인 리어프릭도 악덕하기로 소문난 데인족이었습니다. 영주의 부인 고다이바는 남편과 달리 그 누구보다 농민들의 고달픔에 가슴 아파한 여인이었고요.

그러던 어느 날, 농민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딱하게 여긴 고다이바 부인이 영주인 남편에게 무자비한 세금 징수를 멈춰달라고 요청합니다. 하지만 계속 남편 리어프릭은 거절하죠. 끝내 리어프릭은 “알몸으로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라. 그러면 세금 낮추는 걸 고려해보겠다”고까지 합니다. ‘설마 알몸으로 거리를 나서겠어?’라는 생각에 던진 농담이었죠.

하지만 고다이바 부인은 번민 끝에 결단을 내립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알몸으로 마을을 돌기로 말입니다. 고다이바 부인이 거사를 치르던 날, 농민들은 절대 부인의 알몸을 훔쳐보지 말자는 굳은 결의를 다집니다. 집집마다 창문을 닫고 커튼을 내렸죠. 코번트리 마을은 쥐죽은 듯한 적막과 의도적 무관심에 휩싸이게 됩니다.

존 클리어의 레이디 고다이바

그리고 부인의 숭고한 희생에 남편 리어프릭도 감동합니다. 그는 세금을 낮추죠.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돼 이후 마을을 자비롭게 다스리기까지 합니다. 고다이바 부인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고다이바 행진’은 1678년부터 코벤트리 박람회의 정기행사가 되어 지금도 수년마다 치러지고 있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역사학계에서는 이같은 고다이바의 알몸 시위가 실재한 일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채 거리를 행진하는 고다이바 부인은 없었다는 겁니다. 농노에게 자비를 베푼 고다이바 부인의 일화를 재가공해서 만든 전설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죠.

다만 고다이바 부인의 일화가 사실이든 아니든, 약자들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낮추었던 고다이바의 정신은 숭고해 보입니다. 지배자들의 권위와 힘에 정당하게 저항하는 법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이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건 지배계층의 가혹한 세금 징수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 모든 일에는 곡절이 있는 법일까요. 양복 재단사 톰이 성적인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창문의 커튼을 들춥니다. 고다이바 부인의 알몸을 보는 순간 눈이 머는 저주를 받습니다. 신의 징벌입니다. 관음증 환자를 일컫는 ‘Peeping Tom(엿보는 톰)’이라는 단어는 여기서 유래하게 됩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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