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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대 물가의 패러독스…외부 충격 결합 땐 디플레 현실화
[헤럴드경제=이해준ㆍ배문숙ㆍ원승일 기자]해방 이후 지금까지 70년 동안 고(高)물가를 걱정해왔으나 이젠 저(低)물가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국경제에 디플레이션(deflation)의 어두운 그림자가 엄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한국은행 등 정책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하락하는 디플레 조짐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통계청이 3일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대비 0.8% 올라 지난해 12월 이후 2개월 연속 0%대를 지속했다. 하지만 지난달 갑당 2000원씩 오른 담배 값 인상의 일시적 요인을 제외하면 0.2% 정도 오르는 데 그쳤다.

작년 12월과 비교하면 지난달 전체 물가는 0.5% 올랐다. 주류 및 담배 물가가 49.7% 상승하면서 이 분야의 전월대비 물가상승 기여도가 0.58%포인트에 달했다. 이 일시적 요인을 제외하면 마이너스(-0.08%포인트)를 기록한 셈이다.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하락에다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 등 수요부진이 겹치면서 나타난 전형적인 디플레 조짐이다.

일반적으로 물가가 안정되거나 내려가면 가계의 실질구매력을 향상시키고 기업의 생산비용을 떨어뜨린다. 때문에 물가 상승률이 낮아지면 가계의 소비를 촉진시키기고 기업의 투자여력을 증대시킴으로써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물가 하락이 경기부진과 결합할 경우 문제가 심각해진다. 현재의 한국경제가 그 길로 들어가는 초기 국면이다.

LG경제연구원의 이근태 수석연구위원은 “낮아지는 물가가 경기부진과 결합하면 향후 경기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면서 가계는 소비를 늦추고 기업은 매출 부진을 우려해 투자를 늦추게 돼 경기에 악영향을 미친다”며 저물가 장기화 가능성을 우려했다.

실제로 저성장과 저물가가 결합하면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본의 경우 90년대 초반 5년 동안 0%대 물가를 지속하다 금융부실 등 외부적 충격으로 물가가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했다.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통화당국이 금리를 제로(0)로 낮추고 재정지출을 확대해도 작동하지 않는 ‘유동성의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

한국의 경우 지금 이런 상황은 아니라는 게 정부와 한국은행,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그것이 러시아 등의 경제위기, 엔저와 글로벌 환율전쟁, 10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 부실화 등 외부적 충격과 만나거나 한국경제의 약한 고리가 터질 경우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디플레 가능성을 차단하는 선제적인 통화ㆍ재정정책과 경제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이준협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유가 하락이 경기회복을 이끄느냐 디플레 국면으로 이어지느냐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며 “유가하락이 제품가격 하락과 소비여력 증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hj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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