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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앵그리 맘 “차라리 가정양육”…민간어린이집 줄도산 공포
“내 아이도 폭행 당할수도…”불안
부모들 입학 신청 줄줄이 취소…보육교사들도 사기저하 퇴사급증


#서울 여의도에 사는 맞벌이 부부 조모(35ㆍ여) 씨는 최근 어렵게 등록한 민간 어린이집 입학을 포기했다. 직장 내에 있는 어린이집 순번에 밀린 뒤 ‘아파트 주민우대’ 조항으로 어렵게 입학을 허락받았지만, 남편과 상의한 끝에 “민간어린이집을 보내지 않는게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부부는 ‘고행’을 택했다. 이를 위해 남편은 직장에서 오후에 출근하는 부서로 자리를 옮겼고, 남편이 출근한 후에는 아내가 ‘칼퇴’해 아이를 맡기로 했다. 조 씨는 “남편의 육아휴직도 어렵고, 직장 내 어린이집도 규모가 너무 작아 가정 육아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다”며 “모든 민간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르진 않겠지만, 우리 아이가 그런 최악의 상황에 처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인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으로 놀란 젊은 부모들이 줄줄이 등록을 취소하면서 민간 어린이집들이 줄도산 공포에 떨고 있다.

추첨을 통해 어렵게 어린이집 입성 티켓을 따낸 학부모들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입학금을 내고도 입학을 포기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다. 끊임없이 터지는 아동학대 사건에 분노한 부모들은 공동육아 등 대안육아로 발걸음을 옮기거나 힘겨운 가정육아의 길을 택하고 있다.

최근 부모들의 어린이집 등록 취소 사태는 단순한 외면을 넘어 적극적인 ‘보이콧’ 수준에 이르렀다. 15개월 아들을 키우는 정모(36) 씨는 “아내의 육아휴직이 끝나면 회사에 남성 육아휴직을 신청해 부모님과 함께 아이를 키울 생각”이라며 “다른 부모들도 모두 민간 어린이집을 포기하고 있는 불안한 상황에서 우리 아이만 불안한 마음으로 어린이집을 보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남편과 함께 카페를 운영하는 신모(31ㆍ여) 씨는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야 하는데 자칫 어린이집에서 맞거나 부당한 일을 당해도 신경써주기가 어려울 것 같아 입학을 포기했다”며 “아이들을 당분간 남양주의 부모님께 맡겼다가 가게가 안정되면 데려올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의 B 민간 어린이집의 경우 최근 3월에 입학하기 위해 입학금까지 다 낸 입소대기자 6명 중 3명이 “인천 어린이집 폭해 사건의 충격으로 아이를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통보해 학급 하나가 없어졌다. 이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김모(35ㆍ여) 원장은 “신입생 때문에 보육교사를 뽑았는데, 학급이 없어졌으니 선생님도 고용을 취소했다”며 “폭력교사에게 자격증을 내준 건 국가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하면서 고생했는데, 어린이집 보육교사 모두를 싸잡아 아동 폭력범으로 취급당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민간 어린이집 입학을 포기했지만, 시간에 쫓겨 독자적인 가정육아에는 부담을 느끼는 맞벌이 부모들은 대안 육아 방식을 찾고 있다. 맞벌이 부부 사이에서는 두 사람이 아이를 가정에서 보육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아이를 키우는 공동육아도 인기를 끈다.

공동육아는 교사와 부모들이 협동으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부모들은 교사들과 함께 돌아가면서 마을 아이들의 보육에 참여하는 ‘육아 품앗이’ 방식이다.

네살배기 딸을 키우는 직장인 고모(32) 씨는 “요즘 아내와 함께 계속 공동 육아를 알아보고 있다”며 “맞벌이 부부가 다른 부모들과 협동해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둘이서만 키우는 것보다는 부담이 덜하고, 아이가 공동체 생활도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는 고가의 ‘놀이시터’를 채용하는 등 가정보육 사례도 이어진다.

놀이시터란 집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학습을 도와주는 ‘베이비시터’다. 교사가 교원 자격증을 가진 경우도 많아 가격도 한 달에 200만 원 안팎으로 비싸다. 특히 최근 정부가 0세~2세 아동의 가정양육을 유도해 불필요한 보육시설 이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잡은 것이 알려지면서 가정보육 지원금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뿔난 부모들이 등을 돌리면서 일부 민간어린이집은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수많은 민간어린이집이 부모들의 등록 취소사태로 운영이 어려울 정도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어린이집 운영자는 “올해 입학 예정이었던 아이들은 모두 등록을 취소했고, 보육교사에 대한 이미지가 안좋아지다보니 선생님들도 ‘이런 환경에서 일할 수 없다’며 줄줄이 퇴사하고있다”며 “아이도 없고 교사도 없는 어린이집을 더 이상 운영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이 운영자는 “국공립어린이집을 짓고, 가정보육을 지원하는 새로운 방식이 아니라, 현재 있는 수많은 민간어린이집의 근로 환경을 개선하고, 교사 교육을 강화하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개선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서지혜 기자/gyelov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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