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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세상인 죽음으로 몬 ‘전통시장 현대화’
낡은시설 현대화 임대료만 올라 상인 부담 커져…건물 사유재산이라 제재할 근거 없어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전통시장 현대화사업’이 영세상인의 삶의 터전을 빼앗고 죽음으로 내모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낡은 시설이 현대화되면서 임대료가 올라간 탓에 세입자인 상인들의 부담만 커지고 있는 것. 이달 초에는 높은 임대료 문제로 상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21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지난 6일 새벽 서울 구로구 한 전통시장 점포에서 상인 A(42ㆍ여) 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A씨의 남편 B(44)씨는 부부싸움을 한 뒤 사라진 아내를 찾으려 자신의 점포에 갔다가 차가운 주검을 발견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자살로 결론냈다.

주변 상인들은 A씨의 극단적인 선택이 점포 임대료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건물주가 새해 첫날부터 월 임대료를 27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이들 부부의 점포는 한평 남짓한 크기에 불과했지만 월 임대료는 270만원에 달했다.

비싼 임대료 문제로 부부싸움이 잦았던 이들은 새해부터 임대료가 더 오르자 다툼이 심해졌다. A씨가 숨진 그날도 임대료 문제로 부부싸움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장의 점포 임대료는 전통시장 현대화사업이 진행된 2013년 이후 치솟았다는 게 상인들의 전언이다. 인근 상인은 “그 점포의 위치나 규모로 봤을 때 임대료는 최대 150만원이 합리적이다. 임대료가 너무 높게 책정돼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상인도 “건물주가 200만원이던 월세를 하루 아침에 330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했다”면서 “권리금도 포기하고 같은 시장 안에서 그나마 임대료가 싼 다른 건물로 급히 옮겼다”고 말했다.

지자체 예산으로 추진하는 전통시장 현대화사업은 대형마트의 부분별한 확장으로 외면을 받는 전통시장을 현대화해 자생력을 키우는 정책이다. 이 시장도 지난 2012년부터 현대화사업을 시작해 천장을 설치하고 통행로를 넓히는 등 편의시설을 갖췄다. 건물주는 이를 빌미로 임대료를 올렸고 힘없는 상인들만 고스란히 부담을 지게 됐다.

서울시는 이 같은 건물주의 횡포를 막기 위해 현대화사업을 시작하기 전 ‘수년간 임대료를 동결한다’는 동의서를 받았다. 하지만 건물이 사유 재산이어서 제재할 근거가 없다는 게 서울시의 설명이다.

전통시장 현대화사업의 부작용이 드러난 만큼 상인들의 권리보호장치를 만드는 등 사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최진성 기자/i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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