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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영훈의 이슈프리즘> 박근혜의 대북 울렁증
[헤럴드경제=함영훈 선임기자]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사면초가 상태이다. 보육원 선생들이 네살바기를 폭행하고 22개월 아이에게 물휴지 재갈을 물려 가뜩이나 부모들 마음이 뒤숭숭한 터에,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사건이 2월2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재론될 조짐이 있고, 청와대 인적쇄신 거부 등 내용이 담긴 1.12 신년기자회견 이후 지지율은 하락했다.

최근들어 ‘13월의 세금’으로 둔갑했다는 연말정산 파동을 계기로 ‘서민증세 부자감세’ 논란에 빠졌으며, 김무성, 유승민 등 새누리당의 미래 권력은 살아있는 현재 권력의 ‘어설픈 견제구’가 새자 냅다 3루까지 훔칠 정도로 고분고분하지 않다.

세금폭탄 미봉책 시비에 100만명 ‘싱글세’ 논란까지 더해진 이런 때, 무상 보육 확대이니, 88만원 세대의 결혼비 지원이니 하는 식의 장밋빛 공약은 약발이 거의 없다. 선의라 해도 뭐든 밉게 보일 상황인 것이다.

▶통일 이슈는 위기돌파 단골카드, 그러나…

과거 정권이 그러했듯이, 사면초가, 레임덕 조짐 등의 위기상황에서 가장 좋은 돌파구는 외교, 안보 이슈였다. 한반도 평화, 반일(反日) 행보 등은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전직 대통령을 위기때 구해준 카드들이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대북 이슈앞에서도 주저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최근 3년간 북한 핵실험, 위성 발사 등 북한으로부터 서너차례 뒷통수를 맞고 소니 해킹사건의 배후로 북한을 대놓고 의심하고 있는 미국으로선 대북 접근 카드와 명분이 고갈된 상황이다. 바꿔 말하면 한반도 평화와 북핵문제를 우리가 주도할 절호의 기회인데, 박 대통령은 대화의 기반을 여는 ‘과감한’ 조치를 취하는데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1.12 신년회견에서 원칙론적인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대화 마당에 나오지 않는 북한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했다. 19일 통일부, 외교부 등 4개 부처 업무보고 자리에서는 당국자들간 대화 재개, 이산가족 상봉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한의 호응’을 학수고대 하는 모습이다.

▶대화는 기대, 대북 전단살포는 방치

그러면서도, 통일부는 접경지 주민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데도 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방치해 대화 분위기의 악재를 제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북한측 행태에 비춰 아무 조건이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대화 호응은 ‘이변’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21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말대로 현실적으로 정상회담은 생각도 못할 상황이다.

박 대통령이 사면초가 상황을 돌파할 묘안을 외교안보이슈에서 찾는다면, 정치권 안팎에서 거론되는 ‘과감한 조치’는 바로 천안함 사건 이후 북측에 내려진 제재 ‘5.24 조치’의 해제이다. 이 조치는 ▷우리 국민의 방북 불허 ▷남북 교역 중단 ▷대북 신규 투자 금지 ▷대북 지원사업의 원칙적 보류 ▷인도적 지원 통제 등을 내용으로 한다.

새정치연합측도 줄곳 거론했고, 미국 UC 샌디에고의 스테판 해거든 석좌교수도 지난 20일 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에 실은 글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권고했다. ‘5.24 조치’의 해제 말고, 다른 남북대화 분위기 조성 재료는 현재로선 떠올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는게 대체적인 학계의 인식이다. 금강산기업인협의회 등도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5.24 딜레마…‘DJ 회귀’ 논란 가능성에 움찔

박 대통령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5.24 조치의 해제는 바로 김대중-노무현 식 대북 ‘정경분리(政經分離)’ 원칙에 가까이 가는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종북 척결’은 현정부를 지탱하는 여러 핵심 키워드 중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이른바 ‘과감한 조치’를 하는 순간, ‘교조적 보수주의자’ 일부가 혼란을 겪을 수 있는데다, 박 대통령 스스로 그간 비판해오던 DJ 통일노선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결단을 섣불리 하지 못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작금의 정치적 사면초가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단기 전략을 다른 정책 행보에서 찾더라도, 한반도 평화, 북핵문제는 대한민국 주도로 조속히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할 이슈이다.

▶‘멀리 있는 물은 가까운 불 못 끈다’

‘원수근화(遠水近火)’라는 말이 있다. ‘멀리 있는 물은 가까운 불을 끄는데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멀고도 심오한 해법을 찾다가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한 우리의 주도 능력이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에 빼앗겨 마침내 고갈될 경우, 박 대통령은 새로운 비판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가까이 있는 물이 비록 내가 버린 것이라도 쓰고 불을 끈 뒤, 평화와 통일의 집을 보수하고 리모델링하며 증축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안보통일 철학을 구현해 나간다면, 지금 박 대통령 머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상념들이 실제로는 심각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대치가 체제안정에 유리?…선친이 준 교훈

물론 남북간 화해보다는 대치 국면이 양측 권력자 입장에서보면 정치체제 안정을 기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역설’도 존재한다. 40,50년 된 얘기다.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은 그러나 이같은 ‘안정을 위한 위기 조장’이라는 분석을 무색하게 하면서, 밀사 정치, 6.23선언과 7.4남북공동성명 등을 통해 과감하게 빗장을 푼 적이 있다. 그럼에도 당시 극우세력들이 박 전 대통령을 비난하지 않았던 점은 오늘 박근혜 대통령이 돌아볼 만 하다.

박 대통령이 야당 의원 시절이던 2002년 평양의 주요 기념물을 둘러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면담한 뒤, 의자 위에 올라선 김 위원장과 사진을 찍은 적이 있고, 당시 방북기를 정리하면서 ‘선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 비록 돌아가셨지만 7.4 공동성명의 뜻을 되살리겠다는 각오가 생겼다’고 적었어도 보수진영이 등 돌리는 일은 없었다.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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