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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렌드 리포트]<8>‘골목 전성시대’…비주류, 주류가 되다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내가 학교 다닐때까지만 해도 동네가 이렇게 될 지는 몰랐는데…”.

홍대입구역 3번출구를 빠져나와 큰 길을 따라 연남동 동진시장을 향해 걸었다. 신촌 소재의 대학을 졸업한 동행자 A씨는 연남동으로 향하는 자신의 모습이 믿기지 않는듯 했다. 그냥 ‘옆 동네’에서 불과 2~3년 만에 ‘잘 나가는 동네’가 된 곳을 일부러 찾아가며 느끼는 격세지감이렸다. 블로거들이 극찬한 ‘툭툭 누들타이’에서 저녁을 먹고 착한까페로 유명세를 탄 ‘까페 리브레’에서 라떼를 마셨다. A 씨의 소감은 간단했다. “또 와야겠어”. 

경리단길. 요즘 대세는 골목이다. 뻔한 상업지구 대신 나만의 장소, 나만의 맛집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골목이 점차 트렌드의 중심부로 옮겨가고 있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경리단길. 요즘 대세는 골목이다. 뻔한 상업지구 대신 나만의 장소, 나만의 맛집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골목이 점차 트렌드의 중심부로 옮겨가고 있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강남대로, 홍대거리 등 많은 사람이 찾고 그래서 누구나 다 아는 곳에서 노는 것은 지루하다. 대세에 따르는 것은 옛날 방식이다. ‘나만의 장소’를 찾는 발길은 점차 메인거리를 벗어나 그 깊숙히 뻗어있는 골목들로 향했다. 주택밀집지역까지 과감하게 침투해 작은 간판을 걸고서 입소문만으로 사람들을 모으는, 바야흐로 ‘골목 전성시대’다.

▶우리는 ‘골목’으로 간다, 왜?=브랜드 매장이 비좁게 들어선 가로수길에 실증난 이들이 골목으로 파고들며 ‘세로수길’을 만들었다. 현란한 이태원길 대신에 멋부림 없이도 진짜 이태원만의 향취가 묻어나는 경리단길이 있고, 시끌벅적한 홍대거리 대신에 소소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거나 맛있는 안주에 친한 친구와 조용히 술 한잔 기울이기 좋은 상수동과 연남동이 있다. 삼청동에서 경복궁을 가로질러 넘어오면 알음알음 유명 맛집들로 가득한 서촌이 나오고 그 뒤를 넘어가면 또 부암동이 숨어있다. 가는 길이 불편하고 이리저리 찾아가기도 쉽지않지만 사람들은 골목을 찾는다. 
연남동 골목길. 요즘 대세는 골목이다. 뻔한 상업지구 대신 나만의 장소, 나만의 맛집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골목이 점차 트렌드의 중심부로 옮겨가고 있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연남동 골목길. 요즘 대세는 골목이다. 뻔한 상업지구 대신 나만의 장소, 나만의 맛집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골목이 점차 트렌드의 중심부로 옮겨가고 있다.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왜 지금, ‘골목’이 대세인가라는 질문에 유통업계 관계자들은 가장 먼저 ‘SNS’를 이유로 꼽는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행처럼 번지는 프랜차이즈에 대한 피로감으로 사람들이 나만의 맛집, 나만의 놀이터를 찾아나서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여기에 각종 블로그나 페이스북 등 바이럴의 힘으로 골목골목에 숨어있는 맛집들이 빠르게 공유되기 시작한 것도 주된 이유로 분석된다”고 했다.

골목이 ‘커뮤니티’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웃사촌’이라는 단어가 옛말이 된 요즘, 골목을 공유하는 개개인의 창업가들이 힘을 모아 골목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동네에 자리한 까페와 레스토랑들이 손을 잡고 함께 플리마켓(벼룩시장)을 열거나 아트마켓을 함께 진행하는 것도 이의 일환이다.

또 다른 유통업계 관계자는 “(골목이)한 개인의 창업을 넘어서 협동 창업 공간으로서 커뮤니티를 형성해 고객에게 어필하려는 활동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 개인이 골목에 레스토랑이나 까페 등을 여러개 개업해 아예 해당 골목 자체를 ‘브랜드화’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대개 해당 동네 이름을 붙이기 보다는 소위 ‘골목 레스토랑 주인’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데, 가령 이태원의 ‘홍석천 거리’, 경리단 뒤 쪽 ‘장진우 거리’ 쯤이 여기에 해당된다. 
경방 타임스퀘어 내 경성방직 사무동에 입점한 한남동 ‘오월의 종‘과 연남동 ‘까페 리브레’.

▶‘골목 맛집’의 화려한 부활=영등포의 경방 타임스퀘어는 지난해 리뉴얼 오픈하면서 한남동의 유명 베이커리 ‘오월의 종’과 착한까페로 유명세를 탄 연남동의 ‘까페 리브레’를 유치했다. 모 대형 유통사의 러브콜도 거절했던 이들 두 가게를 위해 타임스퀘어 측은 기꺼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는 경성방직 사무동을 내줬다. 타임스퀘어 측 관계자는 “처음에는 (두 업체가)입점을 거절했지만 역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경성방직 사무동을 직접 둘러보고서는 입점을 결정했다”고 했다.

한때 대형 유통채널들의 진출로 골목상권이 위협받기 시작했다. 백화점, 대형마트, 복합쇼핑몰 등 대형상권 앞에서 골목은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골목상권의 밥줄을 치고 들어오던 대형 유통채널들이 동네에서 이름 좀 날린다는 골목 ‘맛집’들을 ‘모시기’위해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맛집 때문에 일부러 백화점과 마트를 찾는 소비자도 생겼다. 더 까다로워지고 세분화된 고객들의 취향을 ‘저격’할 수 있는 답이 바로 ‘골목’에 있었던 셈이다.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사람들은 대형 유통채널에서 ‘골목 맛집’을 소비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숨은 맛집들이 대형 유통으로 들어오면서 접근성이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전국 각지, 곳곳에 숨어있는 맛집들은 대형 유통채널의 ‘매출 효자’다. 

롯데백화점 본점 삼진어묵 팝업매장.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본점, 잠실점 등 수도권 주요 점포에서 다양한 지역 맛집을 매장과 팝업스토어로 선보였다. 지난해 5월 잠실점에 문을 연 ‘이성당’은 야채빵과 단팥빵을 주력으로 현재 월평균 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11월에 본점에서 진행된 부산지역 유명 어묵브랜드 ‘삼진어묵베이커리’ 팝업스토어 행사는 열흘간 2억5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총 방문고객은 3만여명, 인기메뉴인 어묵고로케는 5만여개가 판매됐다.

경기불황 속에서도 맛집을 찾는 이들이 꾸준하게 늘다보니 맛집을 놓고 벌어지는 유통사들 간의 ‘유치전’도 뜨겁다. 업계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맛집은)백화점과 대형마트, 쇼핑몰 모두 가장 힘을 쏟는 1순위 입점테넌트”다. 

이마트 ‘전주한옥마을 맛집 모음전’.

이마트의 경우 지난해 ‘십고초려’를 불사하고 PNB 풍년제과, 교동고로케, 문꼬치 등 전주의 맛집들을 한데 모아 ‘전주한옥마을맛집모음전’을 열었다. 특히나 PNB 풍년제과의 경우 유치를 위해 8개월 간 수십차례 방문을 했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이처럼 맛집 유치를 할 경우 평균 15% 가량에 이르는 추가 집객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이마트 측의 설명이다. 이마트 측은 “색다른 맛집을 유치하면서 고객에게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해당 맛집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려 골목 맛집과 함께 윈윈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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