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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남준은 냅킨에 드로잉하고 나는 그것을 작품으로 완성했다”
-1월 29일 백남준 추모 9주기 앞두고 학고재서 백남준 개인전 ‘W3’
-30년동안 백남준 작품 제작ㆍ보수해 온 테크니션 이정성 아트마스터 대표
-“백남준의 마지막 꿈은 한강과 허드슨강에 대형 모니터를 쌓는 작업”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국ㆍ내외 미술계에서 ‘어게인(Again) 백남준’ 바람이 심상찮다.

2016년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추모 10주기가 되는 해다. 이를 앞두고 국내ㆍ외 미술계에서는 벌써부터 백남준 관련 전시와 작품 구매 소식이 잇달아 들리고 있다.

일단 서울 종로구 창신동 일대에 백남준 생가 터를 중심으로 ‘예술문화 거리’ 조성이 서울시 안팎에서 추진되고 있다. 세계적인 화랑인 미국 가고시안과의 전속 작가 계약설이 나오는가 하면, 최근 영국 테이트모던이 그의 작품을 9점 구매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국내 3대 갤러리인 학고재(대표 우찬규)는 지난해 9월 상하이에서 ‘백남준을 상하이에서 만나다’전을 열어 현지 미술계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W3, 64개 모니터 가변설치, 1994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이런 가운데 오는 29일 백남준 기일을 앞두고 학고재갤러리는 백남준 전시 ‘W3’를 21일부터 3월 15일까지 삼청로 갤러리 본관에서 개최한다. 지난해 항저우와 상하이 전시에서 선보였던 작품들을 포함 총 12점의 백남준 미디어아트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 타이틀은 학고재갤러리 소장품인 백남준의 ‘W3’에서 가져왔다. 총 64대의 모니터로 구성된 이 대형 작품이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W3, 64개 모니터 가변설치, 1994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특별히 이번 전시에는 백남준과 함께 지난 30여년 동안 그의 작품을 제작하고 유지ㆍ보수해 오며 ‘백남준의 손’으로 불렸던 테크니션 이정성 아트마스터 대표가 전면에 등장했다. 가변 설치 작품인 W3도 이 대표의 손을 거쳤다.

백남준의 꿈을 현실로 만든 장본인, 이정성 대표를 전시를 앞둔 15일 저녁 갤러리에서 만났다. 

Lamp, 혼합재료, 50x25x33㎝, 1994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백남준과의 인연은.

-백 선생이 한국에 오시면서부터 협업할 사람(기술자)을 절실하게 찾고 있었다. 1970년대에는 백 선생의 일본 친구인 아베가 그 일을 했었다. 그런데 1986년 지금의 코엑스 자리에서 LG, 삼성 등이 참가하는 전자전이 크게 열린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삼성 쪽에서 525개짜리 비디오 월(Wall)을 만든 적이 있었다. 이것을 보고 백 선생이 나를 찾아왔다. 다다익선 할 수 있겠냐며 물었고 나는 겁도 없이 예스라고 말했다. 이후 1988년 과천 ‘다다익선’을 시작으로 해외 큰 전시는 보따리 싸들고 다니며 거의 함께 했다. (1980년대 세운상가에 중고티브이 수리상을 운영했던 그는 이후 세계 미디어아트계에서 손꼽히는 작품 제작자가 됐다)

▶이정성이 기억하는 백남준은.

-백 선생은 정식 드로잉으로 오더(Order)를 한 적이 없었다. 저녁을 먹다가도 갑자기 스케치해서 건네 주면 나는 그걸 작품으로 완성했다. 백 선생이 마지막까지 하고 싶어 했던 것이 한강과 허드슨 강에 대형 모니터를 쌓는 작업이었다. 뉴저지에 쌓아놓은 모니터를 맨해튼에서도 볼 수 있게. 그런데 스트로크(Strokeㆍ뇌졸중)가 오고 나니까 몸은 불편해지고 신경은 예민해지고…. 하고 싶은 걸 못하니까 짜증을 많이 내시더라. 결국 이 프로젝트는 구상으로만 끝나고 실현시키지 못했다. 

Techno Boy ll, 앤틱 라디오, TV 등, 117x63x46㎝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다다익선이다. 백 선생은 오더만 하고 미국으로 갔다. 생방송 날짜까지 잡아 놨기 때문에 안 되면 난리가 나는 상황이었다. 백 선생은 처음에 “저 놈이 대답은 했지만 반이나 작동하면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었다더라. 그런데 정말 1003대 한꺼번에 싹 작동되게 만든거다. 백 선생도 너무 흡족해했고 나에게도 첫 작품이지만 제일 기억에 남고 좋았다.

▶(비디오 작품인지라) 시간이 흘러 보수 문제가 있겠다.

-고장은 늘 있다. 최근에는 뉴욕 휘트니미술관에 있는 작품의 콘트롤러가 고장이 났다. 그런데 미국에 기술자들이 있어도 못 고친다. 1989년도에 만든 작품인데 걔들은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메모리 시퀀스를 모른다. 알 방법이 없으니까. 지금 스미소니언에 있는 메가트론도 6년전 쯤 신형 컴퓨터로 다시 만들었다. (처음에는 286컴퓨터로 만들었다) 

이정성 아트마스터 대표 [사진제공=학고재갤러리]

▶작가가 아닌 기술자가 작품을 고친다는 게 논란이 있진 않나.

-평론가들과 늘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다. 그런데 애초부터 미디어아트 작품을 살 때 고장날 수 있다는 걸 전제하지 않았다면 바보다. 고장 나는 게 당연하고, 고장나면 고치고 또 더 이상 고칠 수가 없다면 대책을 세우는 것이 맞다. 회화가 아니니까. 그런데 보수적인 사람들은 원작을 손대면 안 된다고 한다. 백 선생도 ‘파우스트’ 작품으로 하도 골치가 아프니까 생전에 종이에 메모를 남겨 줬다. “모니터들이 자꾸 고장나고 부품이 없어 그러니 한국에서 삼성이든 LG든 맞는 게 있으면 그걸로 쓰고 없으면 껍데기를 벗겨 내 새 것으로 끼워달라. 그러면 작가는 그것을 기능이 향상되는 것으로 보겠다. 컬렉터 제위께서는 물심양면 협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작가가 이렇게까지 썼는데, 그걸 보고도 인정 안 하겠다? 그럼 할 수 없는 거다.

▶어떤 방식으로 보수를 하나.

-고치다 고치다 못 고치면 하는 방식이 있다. 알루미늄을 다 빼버리고 LCD 모니터를 꽂아 세우는 거다. 그렇게 하면 외형은 똑같다. 다만 CRT픽처튜브(Picture tubeㆍ브라운관)은 라운드 형태의 디스플레이인데 LCD는 평평하다. 이 때문에 LCD로 바꾸고 나면 화면 위 아래로 공간이 약간 생긴다. 그런데 그것까지 완벽하게 똑같이 만들 수는 없다. 한번은 독일의 어떤 컬렉터가 영상 안 나와도 좋으니 작품 외형만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더라. 작품의 영상을 보고 싶으면 고치는 게 맞지만 컬렉터가 괜찮다면 그만이다. 결정은 오로지 작품을 갖고 있는 사람, 컬렉터의 몫이다.

▶이정성이 아닌 다른 사람이 고칠 수도 있나.

-그래서 컨디션 리포트(Condition report)를 작성하고 있는 중이다. 어떤 부품으로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고치는 것보다 설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을 분해해서 보관하다) 포장을 열어 놓으면 뭐가 뭔지 모른다. 이걸 설치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줘야 한다. 세세하게 고화질로 사진을 찍어 두고 이걸 보고 누구나 설치할 수 있게 말이다.

▶컨디션 리포트는 언제쯤 완성되나.

-제작년에 백남준문화재단을 통해 정부 예산 5억을 받아 총 55개 작품을 1년동안 기록했다. 그런데 지난해 예산이 끊겨서 작업을 중단했다. 국회의원들이 본인들은 몇천억씩 가져가면서도 고작 몇억은 잘라내더라. 올해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1년동안 작업이 끊겼기 때문에 그 일을 하던 사람들을 다 내보냈다. 다시 데려와서 또 교육시키면 시간도 많이 걸릴텐데…. 문제가 많다.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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