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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깨진 H건설의 90%룰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지난 6일 H건설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당시 기자가 쓴 ‘H건설의 과속질주... 90% 룰 깨지나?’라는 제목의 기사에 대해 그 관계자는 “H건설이 90%룰을 중요하게 여겨왔지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철칙이라고 한 적은 없다”며 사실상 H건설의 90%룰이 깨졌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90%룰은 이미 분양한 단지의 누적 분양률이 90%를 넘지 않으면 신규 단지의 분양을 시작하지 않는다는 H건설만의 고유 원칙입니다. 이 회사는 실제로 지난 2010년 이후 4년간 누적 분양률이 90%를 넘을 정도로 미분양 물량이 적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H건설하면 떠올랐던 90%룰은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로 그동안 수많은 국내 건설사가 부침하는 사이 H건설이 탄탄대로를 달려온 일등 비결로 90%룰이 꼽혀온 점을 감안하면 아쉬움과 염려가 앞섭니다.

H건설은 지난 1989년 직원 5명에 자본금 1억원으로 창업한 작은 회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초기에 지방 임대 아파트 사업 등으로 실적을 올린 뒤 90년대 말 외환위기 당시 헐값에 나온 부동산 등을 대거 사들여 외연을 확대해 나갔습니다. 2005년에는 아파트 브랜드 H베르디움을 성공적으로 출범시키면서 전국구 건설사로 자리잡습니다.

2000년대 말에는 국내 주택경기 침체로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앞다퉈 해외 토목, 플랜트 사업 등에 진출할 때 주택사업에만 전념하면서 오히려 더 큰 기회를 얻은 회사입니다. 힘의 공백이 생긴 주택시장에서 업계를 주도하는 ‘다크 호스’로 떠오른 것입니다.

국내 건설사들이 겪은 90년대와 2000년대의 크나큰 위기를 H건설이 성공적으로 돌파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누가 뭐라 해도 90%룰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 중견 건설사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H건설이 기존 90%룰로 대변되는 ‘조심주의’를 내려놓고 대형 건설사들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어떤 기분을 느끼시는지요.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H건설은 지난 2011년 7919억원, 2012년 9301억원, 2013년 1조1935억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시공능력평가도 급상승했습니다. 2011년 49위, 2012년 32위, 2013년 24위, 2014년 15위로 매년 8~17단계식 수직상승했습니다.

같은 기간 주택공급 실적은 7500가구, 6600가구, 4200가구 등에 머물다가 지난해 1만6000여 가구로 큰 폭으로 뛰었습니다.

향후 사업 계획도 원대합니다. H건설이 현재 보유 중인 택지 규모만 1조원 수준으로 알려졌으며 올해는 대림산업(2만8128가구), 대우건설(2만49가구), GS건설(1만7889가구)에 이어 4번째로 많은 1만5913가구를 공급할 계획입니다.

사업 규모가 크다 보니 아파트 분양 일정은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광명역 A단지(11월27일), 시흥 목감 B단지(12월11일), 수원 호매실 C단지(12월19일) 등의 분양이 거의 1주일 간격으로 진행돼 왔습니다.

또 이달 송도 D단지, 동탄2신도시 E단지 등의 분양이 예정돼 있습니다.

H건설의 ‘과속’ 조짐이 보이면서 업계 또한 그동안 H건설이 지켜온 90%룰이 깨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주택 분양일정은 견본주택 오픈 및 청약에 1주일, 당첨자 발표 1주일, 계약 1주일, 미계약 잔여가구 분양 등의 순으로 진행돼 한 단지 분양 완료에만 통상 최소 한 달 이상이 걸립니다. 1, 2주일 간격으로 5개 단지 아파트 분양이 이어질 경우 90%룰은 사실상 지켜질 수 없다는 게 업계의 시각입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빨라도 아파트 분양이 한 달 내 마감되는 경우는 드물다”며 “매주 또는 격주로 5개 단지 분양이 이어진다면 현실적으로 90% 룰을 지킨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H건설은 최근 들어 10대 건설사 중 하나였던 모 건설사의 지분을 일부 매입해 화제가 됐습니다. H건설과 모 건설사 모두 지역적 연고가 비슷하고 호반건설 창업주가 항공사업 등에 평소 관심이 많았다는 소문 등이 엮이면서 각종 입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상황입니다.

H건설이 과연 중견 건설업계의 대표주자 자리에서 국내 10대 대형 건설사로 비상할 지 관심이 모아집니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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