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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난세계사A/S] ‘악녀’ 앙투아네트 번외편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안녕하세요. 댓글에 달린 질문을 중심으로 번외편을 쓰겠다는 마음에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습니다. 어제 쓴 <마리 앙투아네트, 정말 희대의 악녀였을까> 기사에 달린 “자주 이런 기사를 올려 달라”는 댓글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더 자세하게 쓰면 좋을 뻔 했다”는 따끔한 댓글을 지나칠 수 없었기 때문이죠.

딱딱한 역사서가 아니라 쉽고 재밌게 쓰되 ‘원고지 6매’를 넘기지 않겠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더 많은 궁금증을 남겨드렸습니다. 여러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이상 변명 아닌 변명 같은 변명은 그만 하고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 왕비는 오스트리아에 정보를 넘겼나

왕실을 향한 민중의 분노가 극에 달할 즈음인 1791년, 결정적 사건이 발생합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가 오스트리아로 탈출을 하는데 국경 근처 바렌느에서 파리 시민들에게 발각되거든요. 압송된 왕과 왕비는 탕플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국왕의 권위는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졌고 민중의 왕실에 대한 적개심은 더욱 커졌습니다. 

감옥이 있는 탕플 탑에 서 있는 루이 16세. 장 프랑수아 가르느레의 그림

설상가상으로 이듬해에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사이에 전쟁이 다시 벌어집니다. 프랑스가 연이어 패배하자 왕비가 친정인 오스트리아에 정보를 넘기고 있다는 소문이 퍼집니다. 민족주의 열기로 가득했던 프랑스 민중에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를 꼬드겨 프랑스를 적국에 팔아넘긴 반역자로 비춰지기에 충분했던 셈이죠.


# 왕비는 7살 난 아들과 근친상간을 했나

결국 왕비는 정부의 부패와 재정낭비는 물론 반역을 저질렀다는 죄목으로 단두대에 섭니다. 아들 루이 17세와 근친상간을 저질렀다는 상투적인 비난까지 덧씌워집니다. 왕비에게 온갖 혐의가 거론된 것이죠. 당시 왕비의 아들은 겨우 7살이었습니다. 물증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둘째 아들 루이 17세(1785-1795). 죽기 몇 달 전부터 그에 관한 기록이 없다.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


# 뒷이야기1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 마리 앙투아네트가 남겼다고 회자되는 말입니다. 그런데 굶고 있는 파리 시민들에게 “빵을 좀 나눠주세요”라고 한 왕비의 말이 와전된 얘기입니다.

상상을 해봅시다. 굶주린 누군가가 “왕비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겠지”라고 비난했을 거고 왕비를 미워하는 누군가는 “그래, 그럴 거야”라며 부지런히 말을 옮겼을 겁니다. 어느 순간 “왕비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겠다고 했다더라”로 변질되지 않았을까요.

더욱이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비가 되기 전에 나온 루소(1712-1778)의 ‘참회록’에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루이 14세의 왕비인 마리 테레즈가 “빵이 없으면 파이 껍질이라도 갖다 주라”고 하거든요. 시민들을 착취하는 귀족을 풍자하기 위한 말로 쓰이던 셈입니다.

이쯤에서 덧붙이면 왕비가 시민들에게 나눠주라고 한 빵은 ‘브리오슈(Brioche)’입니다. 프랑스인이 즐겨먹는 빵인데 다른 빵 보다 버터와 달걀이 많이 들어가 달달하면서도 고소하다고 합니다. 저도 빵 좋아하는데요, 제가 한 번 (언젠가 꼭) 먹어보겠습니다.

버터와 달걀이 많이 들어간 달콤한 프랑스 빵 브리오슈


# 뒷이야기2

마리 앙투아네트는 무대에서 서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는 주로 하녀나 시골처녀 역할을 맡았는데 이런 배역이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객석에 앉아있는 하인들이 자기들을 연기하는 왕비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는 웃지 못할 풍경이 그려지시나요?

그런데 말입니다, 왕비가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고도 하는데 남편인 루이 16세와 비교하면 그는 명랑한 축에 속합니다. 루이 16세야 말로 조용하고 따분한 성격의 무뚝뚝한 남편이었죠.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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