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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딸들의 젖가슴이 위험하다
자연생태계의 窓인 여성의 젖가슴
성적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비극 시작
유해 보형물 삽입한 유방확대술 성행으로
성조숙증·유방암·모유 오염 등 초래
2012년 현재 최대 1,000만명 시술
수유기능 복원…위기빠진 젖가슴 구해야



“…젖가슴에는 이상하고 혼란스란스러운 문제를 일으켰다. 예를 들어 젖가슴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데, 란제리 회사에 따르면 컵사이즈가 계속 커쳐 H와 KK까지 나온다. 가슴이 나오는 시기도 점점 어려지고 있다. 가슴성형을 위해 식염수팩이나 실리콘을 집어넣거나 줄기세포를 주입하기도 한다. (중략)유방암 발생률은 1940년대 이래 거의 두 배가 됐고 지금도 증가추세다. 젖가슴의 입장에서는 과거 어느 때도 겪어보지 못한 체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성도 모르고, 남성들은 더욱 알 턱이 없는 ‘젖가슴에 관한 이야기’다. 미국 작가 플로렌스 윌리엄스의 ‘내 땰과 딸의 딸들을 위한 가슴이야기’(강석기 옮김, MID)가 최근 번역 출간됐다. 의학, 생물학,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젖가슴의 모든 것’을 다뤘다.

두 아이를 모유로 키운 저자가 이 책을 쓴 계기는 충격적인 뉴스 때문이었다. 과학자들이 해양포유류와 육상포유류의 신체조직과 젖에서 산업용 화학물질을 발견했다는 보도를 우연히 접한 저자는 딸아이에게 물렸던 젖을 떼고 진실을 알아보기로 했다. 저자는 자신의 젖을 독일에 보내 분석했다. 그 결과와 각종 연구들을 살펴본 결과 모유에는 다양한 환경오염물질이 섞여 있었다. 로켓 연류의 구성물인 과염소산염을 비롯해 페인트나 드라이크리닝에 사용되는 화학물질, 화장품첨가물, 가솔린 부산물, 내염제, 방충제, 살균제 등도 포함됐다. 저자에 따르면 모유는 “화학물질 칵테일”이었다.

▶‘여자 사람’에만 있는 젖가슴…남성을 위한 진화인가, 인류를 위한 진화인가=많은 연구에 따르면 남자들은 허리둘레가 엉덩이둘레의 70%인 마릴린 먼로 스타일의 여성을 선호한다. 수년 전 프랑스 브르타뉴에서 여성의 젖가슴과 성적 매력에 대한 연구를 했다. A컵 정도의 가슴이 약간 작은 20대의 여배우가 가슴 사이즈가 다른 브래지어를 차례로 갈아입고 바에 앉았다. 남성의 댄스 신청 횟수는 A컵일 때는 13번, B컵 19번, C컵 44번이었다. 시선추적기를 사용한 실험도 있었다. 한 남성에게 가슴 사이즈를 각각 달리한 여성의 나신을 보여줬다. 남성의 시선은 여성의 신체 중 젖가슴에 가장 먼저 향했고, 가장 오래 머물렀다. 또 가슴이 클수록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를 ‘성선택설’에서는 남성의 뇌가 여성의 젖가슴을 여성의 생식능력에 대한 신호로 받아들인 결과로 해석한다. 즉 크고 매력적인 가슴을 가진 여성이 남성에게 선택될 확률이 높으며, 그에 맞도록 여성의 가슴이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학자 프랜시스 매이시아-리즈나 웨일즈의 평론가 일레인 모건 등의 연구나 견해,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의 주장은 다르다. 진화론이 말하는 생존을 위한 투쟁에서 젖가슴은 남성과의 결합이 아니라, 엄마와 아기가 살아남을 가능성을 높이는 데 역할을 해왔다는 ‘자연선택설’이다. 일단 여성이 지방을 저장하는 데 젖가슴이 기여한다. 인류가 털없는 원숭이로 진화했을 때, 다른 종에 비해 유난히 긴 성장기간을 갖는 인간의 아이는 모체로부터 영양을 공급받고 보호돼야 했다. 둥글게 늘어지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젖꼭지는 아이가 엄마의 품에 안겨 모유를 먹을 수 있는 최적의 모양을 갖췄다. 다른 포유류와 달리 튀어나온 주둥이가 없고 편편한 면을 갖는 아이의 얼굴에도 둥글고 늘어진 젖가슴은 최고였다. 엄마가 아이를 앉고 수유를 하게 됨으로써 아이의 손이 자유로워져 의사ㆍ감정표현에 동원할 수 있었고, 엄마의 손이 아이의 뒷머리를 받침으로써 말을 할 수 있는 후두관이 열렸으며, 아이가 젖을 빠는 동작은 구개와 혀근육, 그리고 뇌를 발달시켰다. 인간이 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젖가슴때문이다. 인간은 ‘포유류’이며, 젖가슴은 곧 인간이다. 

▶위기에 빠진 젖가슴을 구하라=여성의 젖가슴을 오로지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 보는 ‘성선택설’은 유방확대수술과 유방암, 성조숙증, 그리고 ‘화학물질칵테일’로서의 모유를 낳았다. 젖가슴은 위기에 처했다. 그 위기는 지구와 인류의 생존 위기다. 저자는 “본질적으로 젖가슴은 환경의 내력을 담고 있는 신체부위”라며 “이 책은 젖가슴이 환경의 영향으로 다듬어진 존재에서 어떻게 환경에 의해 손상되는 존재로 전락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저자는 묻는다. “불임이 늘어나고 화학물질에 오염된 젖이 나오고 사춘기가 빨라지고 폐경기가 늦어진다면, 인류가 종으로서 존재할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저자가 보기에 여성의 젖가슴이 ‘수유’라는 기원이 잊혀지고 오로지 ‘성적 대상’이 되면서 모든 비극이 시작됐다. 1895년 독일의 의사 빈센츠 체르니는 41세 가수의 엉덩이 지방을 가슴에 이식했다. 최초로 알려진 유방확대수술이다. 20세기 초에는 유방확대수술 보형물 재료로 유리공, 상아, 나뭇조각, 땅콩기름, 꿀, 염소젖, 소 연골이 쓰였다. 파라핀 왁스도 한동안 대세였다. 그러다가 1957년 존스홉킨스 병원의 의사들은 폴리비닐 스펀지와 플리에틸렌스펀지로 만든 보형물을 32명의 여성들의 가슴에 집어넣었다. 미군이 주둔하던 전후 일본의 요코하마에서는 실리콘이 일본 매춘부들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1962년 휴스턴의 크로닌이라는 의사는 실리콘 고무 주머니에 혈액을 채운 보형물을 개발하고 시술에 성공했다. 현재 유방확대술의 기원이 된 ‘혁명’이었다. 그 후 폴리우레탄폼이 쓰이기도 했고, 식염수 보형물도 개발됐다. 현재(2012년) 세계 유방 보형물 시장은 연간 8200만달러에 이르고 매년 8%씩 성장하고 있으며 500만명에서 1000만명 사이의 여성들이 보형물을 몸에 지니고 있다.

문제는 이 때문에 젖가슴과 여성의 몸이 병들고 있다는 것이다. 또 여성의 젖샘은 에스트로겐이라는 호르몬물질에 민감한데, 이것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 수많은 화학 성분이 여성의 몸과 모유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젖샘은 그야말로 화학물질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여성의 체내와 모유 속에 포함된 화학물질들은 소녀들의 사춘기를 앞당기며, 성조숙증을 유발하고 유방암을 일으킨다. 책은 충격적인 연구 결과들을 수없이 담고 있다. 그리고 그 효과는 3대에 이른다. 이 책의 제목에 ‘내 딸과 딸의 딸들을 위한’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다.

저자에 따르면, 젖가슴은 그 자체로 생태계이자, 분자 수준에서 지구적 차원까지 생태계를 들여다보는 창이다. 남자의 성감을 위한 도구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한 존재, 수유를 위한 가슴으로 복원하는 일이 저자가 말하는, 위기에 빠진 젖가슴을 구하는 일이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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