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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렙쿠헨이란, ‘달달한’ 크리스마스 대표 음식
[헤럴드경제] 25일 크리스마스를 맞아 네티즌들의 관심이 렙쿠헨에 쏠리고 있다. 렙쿠헨이란 독일식 진저브레드(gingerbread, 생강으로 향을 내고 설탕 대신 꿀, 당밀 등으로 단맛을 낸 과자빵)로 크리스마스 시즌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13세기 벨기에 남부의 작은 도시 디낭(Dinant)에서 오늘날과 유사한 렙쿠헨이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몬드와 헤이즐넛, 호두 등의 견과류와 생강, 넛맥(nutmeg), 계피 등의 향신료를 넣은 반죽을 구워서 만들어 식감이 부드러운 편이다. 재료와 모양, 만드는 방법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그 중에서도 바이에른(Bayern) 주의 뉘른베르크(Nürnberg) 제품이 유명하다. 뉘른베르크 렙쿠헨은 1996년 EU로부터 GGA(Geschützte Geographische Angabe, 원산지 명칭 보호상품)로 지정됐다.

렙쿠헨(Lebkuchen)의 어원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독일어로 ‘Leben’은 “살다”라는 의미인데, 독일의 고어 ‘레베(Lebbe)’ 또는 라틴어 ‘리붐(libum, 치즈, 벌꿀, 월계수 잎을 넣어 납작하게 구운 케이크)’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고대 게르만어로 ‘(빵 등의) 덩어리’를 뜻하는 ‘라입(Laib)’에서 유래했다고도 한다.

렙쿠헨의 기원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벌꿀로 단맛을 낸 케이크를 만들어 먹었다는 사료가 남아 있으며, 로마인들은 케이크에 벌꿀을 발라서 구워낸 ‘파니스 멜리투스(panis mellitus, 벌꿀 빵)’을 먹었다.

현재와 같은 렙쿠헨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3세기 벨기에 남부의 작은 도시 디낭(Dinant)에서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디낭과 인접한 아헨(Aachen) 사람들에 의해 독일어권 지방으로 전래되었고, 프랑켄(Franken) 지방으로 건너오면서 변형을 거쳐 현재의 렙쿠헨이 탄생했다. 특히 프랑켄 중부 뉘른베르크의 수도원에서 크게 발전했는데, 수도사들은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렙쿠헨을 만들어 두었다가, 흉년에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렙쿠헨을 ‘페퍼쿠펜(pfefferkuchen)’, ‘후추 케이크’라고 불렀는데, 여기서 페퍼는 단순히 후추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생강, 넛맥, 계피, 후추 등 다양한 향신료의 총칭이었다. ‘렙쿠헨’이라는 이름이 언제, 어디서 정착했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1296년 울름(Ulm)에 ‘렙쿠헨 만드는 장인’이라는 뜻의 ‘렙첼터(Lebzelter)’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1395년 뉘른베르크의 한 회계장부에 같은 의미의 ‘렙퀴히너(Lebküchner)’에게 세금을 매겼다는 언급이 있다. 1409년에는 프랑켄의 공식 문서에 명확하게 렙쿠헨이라는 명칭이 나오므로 이 즈음에는 완전히 렙쿠헨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1487년 신성로마제국 의회가 열린 뉘른베르크를 찾은 황제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III, 1831~1888)가 시의 어린이들에게 작은 렙쿠헨을 나눠주었다는 기록도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렙쿠헨 레시피는 16세기에 손으로 쓰여진 것으로, 현재 뉘른베르크의 국립 게르만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설탕이 귀했던 중세 시대에 과자는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크리스마스 축하용 쿠키로 가장 먼저 등장한 것 중 하나가 렙쿠헨이다. 렙쿠헨은 넛맥, 생강, 계피 등의 소량의 향신료로 단 맛, 알싸한 맛 등을 내므로 설탕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 비교적 부담 없이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렙쿠헨 특유의 향을 내는 계피, 넛맥 등의 향신료는 수입으로 조달되었기 때문에 렙쿠헨은 당시 무역이 활발했던 뉘른베르크, 울름(Ulm), 쾰른(Köln), 뮌헨(München) 등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발달했고, 특히 뉘른베르크에서 크게 발달했다.

뉘른베르크에서 ‘렙퀴히너’라는 명칭은 한동안 소수의 제빵 장인들의 전유물이었지만, 뉘른베르크 시 당국은 1643년에야 처음으로 ‘렙퀴히너’를 독립된 직업으로 간주, 길드(guild)를 결성하도록 허용했다. 2년 뒤에는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여 발표했고, 뉘른베르크의 렙쿠헨 장인이라면 반드시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렙쿠헨을 만들어야 했다. 뉘른베르크의 렙퀴히너 자격을 얻으려면 4년의 도제 생활과 5~6년 간의 수습 기간을 거쳐야 했고, 그 중 마지막 2년은 여러 렙쿠헨 공방을 돌아다니며 기술을 배워야 했다. 그 후에도 3년을 더 일해야 겨우 장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200년도 더 지난 19세기에야 기계를 통한 렙쿠헨 대량 생산이 시작됐다. 1840년, 하인리히 해벌라인(Heinrich Häberlein)이 증기 엔진을 도입, 렙쿠헨 생산 공장을 세웠고, 그로 인해 많은 양의 수요를 채울 수 있었다. 해벌라인이 설립한 해벌라인 메츠거(Haeberlein-Metzger)는 몇 번의 인수 · 합병을 거쳐 오늘날까지도 뉘른베르크의 가장 대표적인 렙쿠헨 브랜드 중 하나로 남아있다.

하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은 렙쿠헨 산업을 크게 위축시켰다. 무역이 축소되면서 원재료인 향신료 수급에 차질이 생겼다. 1차 대전 중에는 독일 정부가 지정한 사치품 목록에 포함되어 생산과 소비가 모두 크게 감소했고, 2차 대전 때에는 뉘른베르크에 있는 렙쿠헨 공장 중 대부분이 파괴됐다. 장인들이 꾸려온 중소기업들은 문을 닫거나, 대기업에 인수됐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사람들은 다시 렙쿠헨을 찾았고, 오늘날 뉘른베르크에서는 크고 작은 렙쿠헨 브랜드들이 고유의 레시피에 따라 렙쿠헨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 독일은 물론, 전세계의 렙쿠헨 애호가들이 렙쿠헨을 사기 위해 직접 뉘른베르크를 찾기도 한다. 인터넷 · 통신판매로도 구입할 수 있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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