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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옷맵시 죽이던 내복, 이젠 온(溫)맵시 살린다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내복을 입는다는 것은 젊음을 잃었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불과 6~7년전까지만 해도.

피 뜨거운 청춘들은 겨울 한파에 오들오들 떨지언정 내복 따위 거들떠보지 않았다. 두껍고 둔한 내복을 껴입는 순간 옷맵시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거슬러 올라가보자. 1980년대 내복은 쌍방울의 보온메리와 BYC의 에어메리가 시장을 양분했다. 면과 스판덱스를 혼용한 소재에 여러 겹으로 누빈 원단으로 만들어 두껍고 둔탁했다. 당시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를 다니던 여자 아이들이 타이즈 속에 입었던 두꺼운 내복을 벗어 던진다는 것은,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드디어 사춘기로 접어들었음을 선언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청춘들은 어땠나. 사회 초년생들에게 내복은 첫 월급 타면 부모님께 선물해 드리는 ‘효의 상징’이었다. 누빔이 누꺼울수록, 색깔이 짙은 빨간색일수록, 효심은 더욱 진하게 배어나는 법이었다.

그러던 내복이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진작에. 게다가 부활한 내복은 이제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보온이라는 기본적인 기능에 충실함은 물론 몸의 실루엣을 탄탄하게 잡아주는 심미적 기능까지 갖춰 ‘온(溫)맵시’의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다. 


▶왜 지금, 다시 내복인가=내복을 입는다는 것은 매력(?)을 떨어뜨리는 일이기도 했다. 제 아무리 조인성이라도 빨간색 보온메리를 입은 모습을 상상한다면? 로맨틱한 무드에서 젊은 남녀가 서로의 내복을 보게 된다면? ‘환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테니까.

그런데 이제 내복은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없어서는 안될 겨울철 ‘잇 아이템’이 됐다. 왜인가.

일단 한반도가 너무 추워졌기 때문이다. 기상청 통계에 따르면 이달 중순까지 전국 평균 기온은 영하 0.6도. 이는 지난 2005년 이후 9년만에 가장 낮은 기온이며, 지난 30년동안 3번째로 낮은 수치라는 분석이다. 지난 18일 서울 기온은 무려 영하 12도, 체감기온은 영하 20도까지 떨어졌다. “멋 내다 얼어죽는다”는 어른들 말씀이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

결국 기본적인 ‘생존 본능’은 20~30대 층에서도 내복을 찾게 만들었다. 여기에 전세계적인 스포티즘(Sportism) 트렌드 역시 2030세대들로 하여금 옷맵시보다 실용주의를 먼저 따지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다행이 다시 돌아온 내복은 신기술을 입은 혁신적인 소재로 거듭났다.

사실 내복의 부활 조짐은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내복에 패션의 개념이 도입된 것이다. 단색 일색이던 내복의 디자인이 화려해졌다. 꽃무늬 프린트나 레이스로 화려한 디테일을 가미한 내복들이 출시되기 시작했다. 소매, 혹은 바지의 길이가 3부, 7부 등으로 다양해진 것도 이때부터다.

2000년대 들어서는 웰빙 열풍이 내복을 살려 냈다. 천연 소재로 가공한 기능성 원단이 다양하게 등장한 것. 100% 천연 소재인 실크, 오가닉 면, 항균방취 기능이 있는 숯, 피부에 좋은 해조류 가공 원단으로 만든 내복이 속속 출시됐다. 손목과 발목 부분이 늘어나지 않도록 만든 ‘조임’도 사라졌다.

최근 6~7년 동안 내복의 기능성과 디자인은 눈부시게 달라졌다. 두께가 얇으면서도 따뜻하고, 몸에 밀착돼 핏을 살려주는 디자인의 내복들을 국ㆍ내외 속옷 브랜드는 물론 패션 브랜드들도 앞다퉈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소재혁신…내복의 진화=시작은 일본 SPA브랜드 유니클로였다. 공전의 히트작인 ‘히트텍(Heattech)’은 일본섬유화학 기업인 도레이(Toray)사의 신소재 섬유를 기반으로 한 유니클로의 대표 상품으로, 국내에는 2007년에 처음 출시됐다.

피부 표면의 수증기를 흡수해 물 분자의 운동에너지를 열 에너지로 전환시킨다는 것이 유니클로 히트텍의 신개념 발열 기술의 핵심이다. 여기에 유니클로는 머리카락의 10분의 1 굵기인 극세 마이크로 아크릴 섬유를 사용해 단열효과가 높은 공기 층을 만들어내도록 했다. 또 레이온, 아크릴, 폴리우레탄, 폴리에스테르 등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닌 네가지 섬유들을 복잡한 구조로 함께 엮어 각 섬유가 가진 고유의 기능을 최대한 살렸다. 덕분에 내복은 더 이상 두꺼운 공기층을 품을 필요가 없어졌다. 얇고 가벼워진 것이다.

디자인도 다양해졌다. 보이지 않는 속옷의 개념을 넘어 ‘이너웨어’로 그 용도가 확장됐다. 터틀넥 스타일의 내복 상의는 스웨터 속에 레이어드해 입기도 하고, 여성들은 얇은 스타킹 속에 히트텍 내복바지 혹은 레깅스를 껴 입기 시작했다.

2014년 히트텍은 기능성을 더욱 강화한 새로운 라인업을 선보였다. ‘히트텍 엑스트라 웜’은 특수한 짜임의 원단과 두께감있는 소재로 더 많은 공기층을 만들어 히트텍의 보온성을 강화하고, 겉감은 기모 가공처리해 촉감을 부드럽게 했다. 특히 여성용 내복에는 동백오일을 배합해 감촉을 매끄럽게 만들었다.

국내 속옷브랜드들도 앞다퉈 발열 내의 시장에 뛰어들었다. 남영비비안(대표 김진형)의 속옷브랜드 비비안은 일본 도요보사에서 수입한 발열섬유 ‘엑스(Eks)’를 사용한 내복을 2008년말 처음 선보였다. 땀과 마찰에 의해 열을 발생시키는 원리로, 보온성은 물론 흡습성과 소취효과까지 챙겼다.

BYC(대표 김병석)는 대기 중의 적외선을 열에너지로 전환해 열을 내는 ‘솔라 터치’ 원사를 적용한 내복을, 좋은사람들(대표 윤우환)은 아웃도어 의류에서 주로 쓰이는 체열반사 소재 ‘메가히트RX’를 사용한 내복을 각각 출시했다.

2~3년전부터는 국내 기업들의 발열 섬유 기술 개발이 활발해졌다. 효성은 폴리에스터 보온소재의 ‘에어로웜(aerowarm)’을, 코오롱글로텍은 발열 스마트섬유 ‘히텍스(HeaTex)’를, 휴비스는 가염 폴리프로필렌 소재의 ‘엑센(XN)’을 선보이며 일본의 히트텍에 도전장을 던졌다.

국내 SPA 브랜드들도 잇달아 발열 내의를 선보이고 있다. 국내 SPA 브랜드의 맏형 격인 제일모직의 에잇세컨즈는 천연 목재에서 추출한 셀룰로오즈로 만든 식물성 섬유 ‘텐셀’을 적용한 원더웜 시리즈를 이번 시즌 처음 출시했다. 세탁 후 수축되거나 주름이 생기는 단점을 보완한 제품이다.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화장품 소재인 콜라겐을 특수 가공한 것도 특징이다.

이 밖에도 이랜드의 스파오, 신성통상의 탑텐 등도 토종 발열내의로 시장 공략에 가세하고 있다.

/amigo@heraldcorp.com

[도움말=남영비비안, 유니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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