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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다림의 미학…“나무가 내게 형태를 부여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죠”
-영국 조각가 데이비드 내쉬 한국 개인전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 “이 작품은 태풍 엘니뇨에 쓰러졌던 캘리포니아산 삼나무로 만들었어요. 또 다른 작품은 홋카이도산 느릅나무로 만들었는데, 폭풍과 산사태로 쓸려나왔던 것이죠.”

영국의 대표적인 조각가 데이비드 내쉬(David Nashㆍ69)가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나무들을 간결하면서도 정교한 형태로 조각하는 작가로, 예술계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4년 대영제국 4등 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사진제공=국제갤러리]

심미적인 오브제로써 조각은 어떠한 ‘스토리’를 품고 있느냐에 따라 생명력이 달라진다. 은발의 노작가는 ‘생명’을 작품의 스토리는 물론 작품활동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

“나무는 나무 그 자체로 만들어져 있는 게 아니에요. 씨앗에서 자라나 무성하게 잎을 피우고 때가 되면 죽음을 맞이하는 생명체예요. 게다가 나무에게도 죽음은 다양한 형태로 찾아오죠. 사고를 당해 쓰러지기도 하고, 뿌리에서 질병이 생겨 잘라내지기도 하고요. 마치 사람처럼요.”

그는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나무를 잘라내지 않는다. 야생에 버려진 이미 죽은 나무들을 주워다 형태를 부여한다. 고사한 나무에 새 생명, 새 삶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완성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일단 나무가 갖고 있는 수분이 마르기까지가 2년이 걸린다. 수분이 마르고 나면 나무가 수축되고 균열이 생기면서 형태가 변형된다. 이러한 형태 변형 역시 예측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작가가 작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도대로 그 형태를 ‘조작’하기가 힘들다. 적색 유칼립투스 작품은 7년이 걸리기도 했다. 기다림의 미학이다. 

[사진제공=국제갤러리]

“너모밤나무로 만든 이 오브제는 처음에 전기톱으로 잘랐을 때에는 균열이 없었어요. 이후 수분을 증발시키고 시간이 지나면서 균열이 생겼죠.”

예측할 수 없는 질료에 대해 그는 “내가 나무의 형태를 만든 게 아니라 나무가 나에게 형태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인위적으로 형태를 조작하기보다 주어진 재료의 형태에 맞는 작품을 구현하는 것이다.

너도밤나무, 삼나무, 유칼립투스 나무 등 나무 종류마다 그 특색에 맞게 작업 방식을 달리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야생에서 자란 나무의 거친 표면과 결이 그대로 살아 숨을 쉬는 듯 하다. 피아노를 만드는 데 주로 쓰이는 호랑가시나무는 밀도가 높아 세밀하고 좁은 간격으로 작업했다. 삼나무로 만든 2개 피스 조각물은 잘라진 나무의 크기를 그대로 살린 후 모서리 부분을 그을려 작품으로 완성했다. 

[사진제공=국제갤러리]

전시를 기획한 유진상 국제갤러리 이사는 내쉬에 대해 “단순히 미술 트렌드를 쫓아간다기 보다 자신의 경험체계를 토대로 지식을 쌓아가는 작가”라고 평가했다. 그는 “내쉬의 작품을 미니멀이나 모던스트럭처와 같은 미술사적 사조로 평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의 예술행위는 작가 한 사람이 평생동안 나무를 집중적으로 연구(Study)하고 이에 대한 지식을 쌓아 전달해왔다는 것에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2015년 1월 25일까지 삼청동 국제갤러리 2관.

ami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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