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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겨울이 절망인 사람들] “애들한테 손 벌리기 싫으니 아무리 추워도...” 폐지 노인들의 고단한 겨울
일하고 싶어도 할 곳 없어 “폐지줍는 것도 경쟁이 너무 치열해”

”폐지 1㎏에 60원은 너무하지않아? 할매들 이틀 모아야 3000원도 안돼“



[헤럴드경제=배두헌 기자] 갑작스레 찾아온 강추위에 눈발까지 휘날린 지난 1일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의 한 고물상 앞. 점심때가 지나고 오후 2시가 되자 온갖 폐지와 고철, 빈 병 등이 수북이 쌓인 리어카를 끈 노인들이 하나 둘 이곳으로 모여든다. 고물상 저울에 리어카를 올려 무게를 잰 뒤 폐지와 고철을 분류하는 그들의 손이 분주하다. 노인들은 이내 1000원짜리 몇장을 손에 쥐고 다시 리어카를 끈다.

태양이 높게 뜬 한낮인데도 살을 에는듯한 바람이 인정사정 없다. 노인들의 입에서 “아이고 춥다” 소리가 탄식처럼 흘러 나온다.

그 광경을 한참동안 우두커니 바라보다 마침 계산을 끝내고 고물상을 나서는 한 노인에게 말을 붙였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저는 신문기자입니다. 추운데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폐지줍는 사람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그는 기자를 흘끗 바라보더니 이내 “아니여”라며 리어카를 끈 채 바삐 발걸음을 옮긴다. 두어명의 노인들에게도 말을 붙이며 따라갔지만 역시 시큰둥한 반응이다. 가득 찬 리어카를 털어 내자마자 다시 골목으로 향하는 노인들에게 말 몇 마디 나누는 여유조차 사치일까.

‘따뜻한 캔커피라도 드리면 마음을 좀 여실까’ 머리를 굴리던 차에 한 노인이 길을 멈췄다. 백발이 희끗한 할아버지는 김순재(76ㆍ가명) 씨다. 김 씨는 추위에 얼어붙은 입을 어렵게 뗀다. 그는 “이 동네 60~70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거의 다 나와. 경쟁이 워낙 심하니까 한 시간 돌아다녀 1000원 벌면 잘 버는 것”이라고 한다. ‘한 시간 돌아다녀 1000원.’ 가볍게 캔커피 값이, 그들에겐 강추위 속 한 시간 노동의 대가였다.

김 씨는 “하루 온종일 열심히 다니면 1만원 정도 벌고, 운 없으면 3000~4000원 정도 돼. 나라에서 지원금 나오는 거랑 해서 간신히 먹고 살어”라며 “이것 말고는 다른일 할 수 있는 게 없어. 돈을 벌 데가 있나”라고 한다.

자녀들 얘기를 꺼내자 김 씨는 “우리 애가 한달에 200 버는데 걔들도 지 애들 공부시키느라 사는게 팍팍해. 손 벌리기가…”라며 리어카를 끄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김 씨는 폐지 줍는 걸 자녀들에게 숨긴다.

근처에서 리어카를 끌고 있는 또 다른 할아버지 박항복(73ㆍ가명) 씨는 무엇이 힘드냐는 말에 “(고물상에서) 쳐주는 폐지값이 너무 적고, 경쟁도 너무 치열해. 그런데다 다들 사는게 어렵다보니 고철은 보기도 힘들어. 하루에 동전 몇개 밖에 못 벌 때도 있어”라고 했다.

박 씨 역시 일흔이 넘은 나이에 다른 일자리는 언감생심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하는거지 나이만 좀 젊었으면 노가다라도 했을텐데”라며 “이거라도 하니까 자식한테 손 안벌리고, 약이라도 사먹는다”고 했다. 자녀들은 박 씨에게 폐지 줍는 일을 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얼마라도 내 손으로 버는 게 다행이지 싶다.

폐지줍는 사람들
김명섭 기자 MSIRON@HERALDCORP.COM

눈발이 그치며 때이른 한파가 몰아친 2일 오전 11시 노원구 하계동의 한 아파트 상가 앞. 길바닥에 놓인 박스 더미를 리어카에 분주히 싣고 있는 최용식(51ㆍ가명) 씨를 만났다. 미혼인 최 씨는 장애를 가진 동생과 둘이 함께 살고 있다. 전날보다 더 떨어진 수은주와 칼같은 바람속에 돌아다니는 게 고역이지만 최 씨는 “이일이 5년째인데 오늘보다 더 추운 날도 나와서 폐지를 줍는다”면서 “취업할 곳이 없으니 이것 말고는 대책이 없다”고 한다.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나가는 봉고차를 보며 최 씨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최 씨에게 주기적으로 폐지를 내주는 교회 사람들이라고 한다. 최 씨는 오전 6시반 부터 폐지를 주우러 나왔다고 한다. 이제 겨울이라 아침에도 캄캄한데 서울시에서 지급해준 형광조끼는 하고 다니는지 묻자 “그거 다 떨어졌다더라. 부족해서 못 준다고 좀 기다리라고 했다”며 개의치 않는 표정이다.

앞서 지난 4월 서울시는 서울에 거주하는 폐지줍는 노인들을 6354명으로 추정해 총 6600여벌을 지급한 바 있다. 이에 봉주헌 자원재활용연대 의장은 “서울시의 폐지 노인 통계는 잘못된 것”이라며 “전국의 폐지 노인들을 17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관에서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하다보니 통계 오류가 나고 못 받는 사람들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7일 오후 5시 동대문구 이문동의 한 도로. 이말순(78ㆍ가명) 할머니가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끌고 있다. 말을 붙이자 “아이고 기자 양반 나 부탁좀 합시다. 좀 도와줘”라며 가던 길을 멈춘다.

“이런거는 다른 일 못하는 사람들이나 할 수 없이 하는거여. 장애인들, 나같은 노인네들이나 이거 줍지”라고 운을 뗀 이 씨는 “근데 다른 고물상들은 1㎏에 80원씩은 쳐주는데 이동네는 1㎏에 60원밖에 안 쳐줘요. 다른 것도 다 20원씩은 싸. 너무 악덕 상인 아니여?”라며 하소연한다.

이 씨는 “폐지 20㎏면 다른 데를 가면 400원을 더받는건데, 다리도 안 좋은데 너무 멀어서 거기까지 가질 못한다”라며 “하루에 50㎏ 주우면 3000원이여. 근데 우리같은 할매들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못주워. 난 길건너 과일장수가 알던 양반이라 그 사람이 (폐지를) 챙겨주니까 그나마 살지. 할매들 이틀 주워도 50㎏도 못 줍는데, 이런 사람들한테 10원 20원 깎지 말어”라고 호소한다.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지낸다는 이 씨를 자식들은 얼마나 도와줄까. 이 씨는 “용돈? 자식들이 부모한테 손 안벌리면 다행이지. 정말 다들 어려워 대학 나왔어도. 애기들 가르치랴 월세내랴. 그래서 내가 안 받는다”며 마치 자식들이 눈 앞에 있는 듯 손사레를 친다.

이 씨는 “몸이 너무 아프면 못 나오는데 그땐 나라에서 주는 20만원 갖고 그냥 사는거지. 병원에 1500원씩 주고 다니고 1200원씩 주고 약 짓고,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 어쩌겠노”라며 입을 다문다.

이튿날 예보된 눈 소식에 일요일인데도 길을 나섰다는 이 씨에게 따뜻하게 챙겨 입으셔야 겠다고 했더니 “아직 견딜만해요” 라는 답이 돌아온다. 이말순 할머니는 다시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리어카를 끈 채 도로 위로 느린 걸음을 걷는다.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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